교주 습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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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2025-07-17 22:21:53 (7시간 전) / READ : 22
1937년 어느날 밤
지금의 왕십리 어느 민가에
사람들이 모인다..
(왼쪽이 사이비종교에 빠져 전재산과 딸을 바친 아버지
오른쪽은 그 아버지가 이상했던 아들)
아들 유곤룡은 약재를 팔아 번 돈 3만원을 들고
한 남자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왔다.
당신이 교주십니까
입교하려면 돈을 줘야한다기에
제 재산 3만입니다.

흐음..약재상이면 돈이 더 있을텐데
숨기지 마시오
유곤룡 : ㅋㅋ 니가 진짜 신의 자식인데
돈타령 여자타령하는건 맞고?ㅋㅋ
무엄하구나!
교주는 칼을 빼들었으나
가족들을 사이비에 뺏긴 젊은이의 적수는 될 수 없었다.
유곤룡은 교주를 가볍게 제압하고
싸커킥을 날리며 교주를 구타했다.
다..다스케떼!
교주는 살려달라 비명을 질렀고
교주를 수행하던 자들은 교주를 들쳐업고 도망갔다
야 어디가냐ㅋ
이미 이성을 잃은 31세 남자의 눈에
등에 업혀 도망가는 늙은이는
그냥 사기꾼 그 이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뜯어말리는 수행원들과 아버지때문에 속도가 늦어져
추격이 힘들어지자
방향을 틀어 파출소로 간다.
곤방와~
저 산속으로 사이비교주와 그 추종자들이 뛰어가고 있습니다.
(1937년은 본격적인 황국신민화가 시작된 시절)

ㅇㅋ
그렇게 왜경은 산으로 파고든 교주를 추적했고
자세한 정황을 전해들은 후
무려 8개월간 전국 지부를 수색하게된다
그리고 들어난 진실..
약 350명이 피살당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살당하고
딸과 재산을 헌납하게했던 이 종교는
한국 역사상 최악의 사교인
백 백 교
1940년 공판으로 주요간부들이 처형당할 때 까지
약 3년간의 조사는 그 일제마저 혀를 내둘렀고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한 편 도망친 교주는
1937년 7월 용문산일대에서 발견되는데

산짐승에게 얼굴을 뜯겨먹혀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한다.
주머니에서 유품을 통해 추정했을 뿐..
이 교주의 이름은
전용해
아무튼 그 짐승같은 일제도
뭐 이딴새끼가 다 있지?싶었는지
얼굴을 대충 복원해 모가지째로 보관했다.
(사진이 있으나 혐오스러우니 생략)
그렇게 짤린 머리는
일부 반환요구가 있었다고는 하나
중정끌려가서 제삿밥 코로 먹는건 싫었는지
70년대 1차례 이후 별도의 기록은 없다가
2011년 한 스님이
회수하여 화장함으로서 사라졌다.
Tmi.백백교 사건은 워낙 초대형 사건이라
꼬꼬무,서프라이즈는 당연하고
각종 유튜버들도 다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도주중에 훼손된 시체만 발견된 점에서 세월호당시 유병언회장때도 언급되었고
당연하겠지만 오대양 집단 사건때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