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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oss] 유일무이 세계최강 기욤 패트리. 주소복사

  • Minerals : 91,155 / Level : 마왕
2008-07-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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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공식적인 세계최강으로 등극한 이후 2001년 6월까지 2년 6개월동안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플레이어. 전설의 시대라고 일컬어지는 칼리와 오리지널 시대부터 시작하여 브루드 워, 그리고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각 시대별 최강자로 등극하였고 또한 아마추어. 베틀넷, 오프라인 프로게이머 리그까지 유일하게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선 사나이. 그렇다. 바로 '세계최강'이라는 닉네임을 가졌고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던 프로게이머. '기욤 패트리'가 이번 글의 주인공이다. 

 

역사상 유일한 세계최강 - 기욤 패트리

 

 

스타판에 최초로 여성팬을 끌어들인 프로게이머

 

이름 : 기욤 패트리

생년월일 : 1982년 6월 19일

국적 : 캐나다

ID :  X~ds-Grrrr... (99년 악몽이라고 까지 불리우던 그 아이디 -_-)

 

- 주요 커리어

 

★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 쉽 우승

★ 스타크래프트 PGL 4시즌  우승

★ l2e2 초청 월드 토너먼트 우승

★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우승

★ 스타크래프트 유럽오픈 우승

★ FINAL 2000 온게임넷 왕중왕전 우승

★ SBS PKO 월드 토너먼트 우승

 

☆ 1999 스포츠 서울배 개인전 스타리그 준우승

☆ 겜TV 스타리그 준우승

☆ 스타키배 크레지오 스타리그 준우승

☆ 한빛소프트배 스타리그 3위

☆ 스타크래프트 PGL 3시즌 3위

☆ 슬기방 초청배 우승

☆ 크레지오 스타 8인 올스타전 우승

 

# 우승경력에 대한 검증


일단 우승경력부터 검증해보자. 보통 최강자의 계보를 들면 임요환 선수부터 드는 경우는 많은데 사실 임요환선수 이전에 자타공인 세계최강이라고 인정받은 프로게이머가 바로 '기욤 패트리'다. (임요환 선수가 본좌대우를 받은것도 2001년 6월에 열린 기욤과의 LAST 1.07 에서 기욤을 이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진정한 임요환의 시대가 열림.)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시 메이저 대회 중 하나였다.

 

우선 메이저 대회? 지금이야 온게임넷 스타리그 / MSL 양강구도의 영향으로 철저히 기욤패트리를 메이저대회 우승 1회로 치부하면서 스타리그 / MSL의 구도로 과거를 재평가하는데 이건 솔직히 미친짓이나 다름없다. 쉽게말해 피타고라스를 지금의 기준으로 적용해서 중딩보다 못한 수학자다! 라고 까는것과 별 반 다르지 않다. (이런식으로 축구든 뭐던 폄하하는 시각이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 학교다닐때 혹은 학교 다니면서 공부는 하냐? 라고 반문하고 싶다. 과거를 평가하는데 있어 현재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짓을 누가 하던? -_-?)

 

 

역사상 최고의 권위와 열기를 자랑했던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 쉽'

 

일단 기욤 패트리의 커리어에 있어 단연 빛나는 부분은 '블리자드 월드 챔피언쉽' 우승이다. 이 대회는 기존에 열렸던 '블리자드 레더 토너먼트'와도 비교를 거부하며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온 게임넷 대회건 MBC MSL 등 어떠한 대회도 대적 할 수 없는 최고의 대회다. 쉽게말해 이 대회는 레더 토너먼트에서 온갖 말이 오고가자 블리자드가 작정하고 '그래! 쉐이들아. 어디 한번 공인 세계최강을 공식으로 가려보자!' 취지로 블리자드가 내건 최후의 스타 크래프트 대회였다. 그때까지 당시 '기욤 패트리'는 세계최강으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블리자드 공인 대회이던 '레더 토너먼트'에서는 유난히 약했다. (물론 장기 페넌트 레이스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었다.) 그 이유야 그 유명한 어뷰저 파동부터 시작해서 특정 팀에서 몰아주기등 여러이유가 있었지만 이유 불문하고 기욤 패트리 입장에서는 정말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기욤 패트리'는 이 대회에서는 순항을 거듭하고 결승에서 '김창선' (현 온게임넷 해설자) 에게 3:0이라는 일방적인 스코어로 1시간여만에 우승 확정지으면서 블리자드가 인증한 공인 세계최강 으로 자리잡게 된다.

 

 

유럽제패, 아메리카 대륙 제페, 그리고 한국까지 접수하면서 세계정복 달성

 

그리고 PGL. 일치감치 프로게이머라는 것을 탄생시킨 북미에서는 협회까지 있었는데 여기서 주관한 북미 프로게이머 대회. 즉 지금으로 치면 온게임넷 스타리그 혹은 MSL 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서 기욤 패트리는 우승하면서 아메리카 대륙 제패. 그리고 유럽의 최정상의 플레이어들이 참가했었고 역시 전 세계의 상위랭커들이 모조리 참가한 '유럽 오픈' 우승으로 유럽대륙 제패. 그리고 역시 전 세계 상위랭커들을 초청하여 벌인 세계대전 l2e2 세계대회 우승. 그리고 한국에 와서 이룬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우승으로 한국제패. 딱 여기서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세계정복' 혹은 세계제패. 그렇다. 최초의 그랜드 슬래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당시 전 세계적으로 스타 크래프트가 인기를 끌고있던 그 시절. 각 대륙을 접수한것이다. 이런 큰 대회 말고도 99년 당시 기욤 패트리는 전 세계 각지의 대회를 모조리 쓸어담으면서 최악의 상금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친바가 있다. -0- (당시에는 세계각지에서 스타 크래프트가 열렸다.)

 

자 그리고 기욤 패트리의 발자취를 한번 살펴보고 당시 스타 크래프트의 분위기를 한번 살펴보자.

 

스타 크래프트 오리지널 시즌 3 -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대전

 

1,2 시즌에서 북미와 유럽이 지배하던 스타 크래프트. 하지만 3 시즌에 와서 본격적으로 제 3세계의 도전이 시작된다. 바로 대한민국! 현 온게임넷 해설자인 김태형씨가 오리지널 3시즌 우승을 차지하면서 부터다. 하지만 동시에 북미나 다른 지역에서도 강자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누가 우위다. 라고 주장 할 수 없는 정도로 막강한 세계대전을 치루고 있었는데 여기서 극강의 유저들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바로 슈팅셔틀의 창시자이자 폭탄드랍의 창시자! 초창기 프로토스의 영웅 'Zealias'의 등장이다. 섬전에서는 프로토스가 최강이라는 진리를 10년이 경과한 현재까지  심어준 장본인인 'Zealias'. 스타 크래프트의 과학화를 이룬 선구자로 알려져있으며 MIT 공대생으로 자원채취량등을 함수화시키는등 초창기 배틀넷의 최강자로 떠오른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Zealias'의 최고의 적수이자 또 하나의 극강의 최강자가 등장했다. 바로 16세라는 어린나이에 순식간에 'Zealias'의 아성을 흔들면서 등장한유저. 바로 '기욤 패트리'였다. 이 16세의 어린 미소년는 극강의 저그 유저로서 악명을 떨쳤고 당시 국민맵 '리버스틱스'에서 무패 (쉽게말해 이후 국민맵으로까지 불리웠던 '로스트 템플'에서 무패를 기록했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리라 본다. -_-;;) 행진을 거듭하며 'Zealias'를 압박해오면서 최강의 자리를 놓고 결전을 준비하게 된다.

 

 

사실 기욤패트리는 프로토스가 아니라 저그의 계보, 첫 머리를 장식하는 유저였다. -0-

 

사실 'Zealias'는 이래저래 비판을 많이 받아왔었다. 'Zealias'는 당시 칼리의 유저들에게 집중적으로 포화를 받았다. 초창기 스타 크래프트는 베틀넷이 없어 유료 매치 서비스인 칼리에서 많은 플레이가 이루어는데 덕분에 이후 배틀넷이 서비스가 시작된 이후로 칼리VS배틀넷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배틀넷의 최강자로 대접받은 'Zealias'는 전략이 섬전에 한정되어있고 너무 교과서처럼 휙일화되다시피 하여 칼리의 고수들에게 비판을 받아왔었던것이다. 하지만 칼리에서 전폭적으로 인정받은 배틀넷 유저는 앞서 설명한 라이벌로 떠오른 '기욤 패트리'였다. 기욤 패트리는 지금도 프로게이머에서 쓰이고 있는 '히드라 웨이브'를 창시하면서 리버스틱스에서 상위 랭커들을 박살내며 그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태양은 두개 일 수 없듯이 이 두명의 유저는 피 할수 없는 운명의 대결을 준비하게된다. 'Zealias' vs Grrrr의 대결은 결코 피 할수 없는 매치였던것이다. 

 

 

'Zealias'는 결국 기욤의 히드라 웨이브에 당하고 말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둘의 운명적인 대결의 결과는 기욤 패트리의 전매특허인 히드라 웨이브로 인해 기욤패트리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기욤 패트리는 오리지널 시즌 최강자로 이름을 날리게된다. 정작 토너먼트에서는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페넌트 레이스 시즌과 같은 장기 레이스에서 전 세계의 각지의 탑 랭커들에게 무수히 승리를 하여 사실상 최강자로 공인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운명의 1999년. 이때부터 '기욤 패트리'의 이름은 한국에도 알려지면서 그 유명한 상금사냥을 하기 시작한다.

 

브루드 워 레더 토너먼트 1 시즌 - 대한민국의 급성장

 

1999년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이미 전 시즌에서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 신주영의 레더 토너먼트 우승. 같은 시즌에서 페넌트 레이스에서 김태형 (현 온게임넷 해설위원)의 우승등으로 대한민국은 스타 크래프트 계의 거대한 한축으로서 담당하게 이르렀다. 그리고 시작된 '블리자드 브루드 워 레더 토너먼트 1시즌' 이 시기부터 기욤 패트리는 전 세계의 각지의 대회를 하나씩 접수하기 시작하면서 상금 사냥꾼으로 악명(?)을 널리 알리게 된다. 일단 '브루드 워 레더 토너먼트 1 시즌'에서는  기욤 패트리는 초반부터 페넌트 레이스에서 1위를 치고나가면서 약 4개월동안 1위자리를 고수하는 괴력을 발휘한다. (1999년 배틀넷을 한 유저라면 잘 알 것이다. 늘 언제나 1위 자리에 박혀있던 그 아이디. 바로 X~ds-Grrrr...당시 공포 그 자체였다.)

 

 

당시 PC통신상에의 이미지는 신비로웠다.

 

하지만 우습게도 정작 토너먼트에서는 16강에서 탈락하였다. 전 세계 각지의 주요대회는 우승을 휩쓰는 괴력을 발휘하였고 레더 시즌에서도 그 괴물같은 위력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지만 레더 토너먼트에서만큼은 약한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할까? 어쨌건 16강에서 탈락하였다. 참고로 브루드워 레더 1시즌은 Soso라는 아이디를 쓰던 중국계 미국인인 웨인 창이다. 당시 한국에 방문하기도 하였으며 모 pc게임잡지 인터뷰에서 당시 인기를 끌던 SES 유진의 열렬한 팬임을 (-_-;;;;;;) 알렸다. (실제로 못봐서 매우 아쉽다는 요지의 인터뷰 -_-;)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유저들의 러시가 시작되었다. 랭킹의 거의 대부분 한국유저들이 장악하기 시작한것이다.

 

브루드 워 레더 토너먼트 2 시즌 - 숱한 논란이 야기되는 문제의 시즌

 

Soso가 우승을 지으며 마무리된 1 시즌. 그리고 다시 시작된 2 시즌. 그런데 2 시즌은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즌이며 온갖 비리와 음모가 나도는 시즌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배틀넷 상에서는 '어뷰져'가 많아졌다. 그 주축은 다름아닌 한국유저들이었다. (-_-;) 한국을 탓하는것이 아니라 워냑 한국유저가 많았기에 그 비율도 높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존의 강자들이 어처구니없에 순위권 밖으로 튕겨나가고 실력도 없는 유저가 어뷰저를 통해 순위를 장악하기 시작한 문제는 점차 지속되었고 그리고 문제의 '기욤 패트리' 순위탈락. 이것 덕분에 더더욱 논쟁이 가열되었다. 전 시즌이나 그동안의 시즌에서 늘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던 유저가 한순간에 순위권 밖으로 튕긴 사실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특히 '기욤 패트리'는 어뷰저를 하지않고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대표적인 유저였다. 이런 '기욤 패트리'에서 조차 상위권은 커녕 저 멀리 밖으로 튕겨나가자 '레더 토너먼트'의 문제점을 피력하거나 실력도 없는 유저들이 상위권에 있다는 등의 지속된 논란을 가져왔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한국에서 직격탄이 하나 날라오는데 바로 문제의 2시즌에서의 우승자. '이기석' 선수였다. 바로 이 '이기석'선수가 어뷰저를 통해 토너먼트에 진출하였던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 덕분에 이기석 선수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여기서 이기석 선수에 대해 말해두자면 결코 어뷰저 사건으로 폄하될 선수는 아니다. 어뷰저 역시 당시 어뷰저를 하지 않고는 올라 갈 수 없는 상황이었고 (당시 한국이든 외국이든 어뷰져가 득세하던 시절이긴 했다.) 토너먼트 상에서는 실력으로 확실하게 우승하였다. 한국에서 열렸던 KPGL 1,2회 연속우승. 싱크로 마스터즈배 우승등. 분명히 한국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선수였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어쨌든 숱한 파문으로 종료된 레더 2시즌. 여기서 블리자드는 더이상 레더 토너먼트를 개최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동시에 그동안의 논쟁을 의식한듯 최후의 대회를 열게된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역대 최고의 권위를 지닌 대회이자 블리자드 공인 세계최강을 추려내는 대회. '브루드워 월드 챔피언쉽'을 말이다. 블리자드는 그동안의 상위랭커를 참여시켜 말 그대로 최후의 세계대전을 준비하였던 것이다.

 

월드 챔피언 쉽 - 최후의 세계대전 한국 VS 반 한국

 

당시 참여하는 선수들은 전부 세계에서 손 꼽히는 유저들이 포함되어있어 사실상 세계최강을 가려내는데 결코 무리가 없었다. 게임의 구도 자체는 한국 VS 반 한국의 체제였는데 (한국이 유저도 많았고 잘하는 사람도 많았음) 결국 결승전에도 이러한 구도가 완성되었다.

 

 

 

실제 당시 결승전 게임화면. 저그(기욤) - 프로트스 (김창선)

 

당시 세계최강으로 불리우던 '기욤 패트리' 그리고 한국유저로서 결승에 오른 김창선. (현 온게임넷 해설) 블리자드 공인 타이틀을 두고 벌어지는 결승전은 3: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기욤 패트리'는 여타 대회에서는 우승을 하면서도 정작 블리자드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한을 푼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자타공인 명백한 '세계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거뭐지게 된다. 그리고 이 후에 각종 대회를 우승하면서 99년을 자신의 해로 마무리하며 그렇게 2000년은 다가오고 있었다.

 

2000년 세계최강의 강림 - 기욤 패트리 한국 정복기

 

2000년 초에 열린 <하나로 통신배 스타리그>. 공식적으로 기욤패트리가 참여한 첫 대회다. (그 이전에 한국에 초청되어 준우승을 차지한적은 있었다.) 기욤 패트리가 한국에 오게된 사정은 레더 토너먼트의 종료. 그리고 북미 프로게임리그 PGL의 종료등 세계각지에서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가 식어간 탓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인기를 끌고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싸들고 한국에 정착할 목적으로 강림을 하였던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 베일에 쌓여있던 '기욤 패트리'의 플레이가 공개되기 시작하였는데 엄재경 해설위원이 평가하는대로 하나의 컬쳐쇼크 수준이었다고 말 할수 있었다.

 

한국에 강림한 기욤 패트리

 

당시 한국 프로게이머들의 플레이는 전형적인 빌드싸움. 교과서적인 플레이. 틀에 박혀있는 모습등으로 평가하는데 (이기석 선수가 초창기에 전술의 기초를 보여주긴 했었다.) 기욤 패트리는 현재의 스타 크래프트처럼 실시간으로 변하는 플레이. 심리전. 전략.전술, 그리고 컨트롤 부분에서 지금의 스타 크래프트 경기체제를 보여주면서 순식간에 한국을 장악하였다. 즉 당시 기욤의 플레이는 신 문명의 혜택을 받지못한 한국 유저들에게 신 문물을 전도하는듯한 모습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쉽게말해 스타 크래프트는 고정된 게임이 아니라 언제든지 변 할수 있고 전술과 지형에 활용에 따라 판도가 달라지는 전략게임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가르쳐준 모습이라고 할까? 그렇기에 현재 전략가의 계보를 따질때 '기욤 패트리'가 최초의 전략,전술가로 지칭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당시 같은 시대의 프로게이머이자 전 KTF 매직엔스의 코치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보면 더욱 쉽게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현준님의 언급 -

 

 다른건 몰라도 기욤선수는 정말 대단했죠.  그 어느시대의 최고의 게이머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보여줬었습니다. 지금 프로게이머 랭킹 1위와 2위는 비슷한 실력이라고 보면 되지만 그 당시 기욤과 열판해서 두세판 이길 선수는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름대로 그 누구보다 잘한다고 생각했던 저도, 기욤에게 대부분의 스킬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는 일꾼으로 미네랄 찍기 등 기본적인것들을 국내게이머들은 몰랐으니까요.

 

 

당시 분명히 세계적인 한축을 담당했던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결국 '기욤 패트리'의 벽을 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것이다. 그렇기에 숱한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세계최강'으로 올라섰던것이다. 당시 국내 프로게이머와의 역량은 정말 너무도 크게 차이가 났던 것이다.

 

2001년 세대교체의 시작 -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온 '기욤 패트리'

 

하지만 천부적인 센스와 천재적인 감각. 뛰어난 재능을 보여준 기욤 패트리에게도 몰락은 찾아왔다. 여타 이유보다 당시 기욤 패트리의 시대를 경험한 유저였다면 공감할 이유. 바로 '극도의 게으름' 덕분이다. 당시 모든 부분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기욤패트리 였지만 연습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게으른 천재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하루 연습시간이 많아야 1~2시간에 불과하며 결승전같이 중요한 날에도 연습은 커녕 나이트에서 놀다가 와서 하는등 (우승은 늘 하더라 -_-) 극도의 게으름이 뭔지 잘 보여주는 일화다. 여러이유가 있지만 본인 스스로 자초했다고 할까? 물론 이 같은 게으름을 보인 이유도 있다. 역시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박현준님의 언급을 한번 들어보자.

 

 

 박현준님의 언급 -

 

  기욤이 한국에 와서 보여준 모습들 대부분의 경기들은 거의 준비가 되지 않은것들이었습니다. 한국생활에 재미를 느끼면서, 2년여를 거의 연습하지 않았죠.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 잡은것은 기욤이 스타에 손을  놓은 약 1~2년 후입니다.

 

 

자 여기서 알 수 있는것. 실질적으로 기욤 패트리는 스타를 하긴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재능은 너무나 아쉬웠지 않는가? 박현준님의 언급에서조차 한국게이머들이 기욤을 따라잡았던것은 스타 크래프트를 사실상 거의 그만두다시피한 시기부터였다고 한다. 기욤패트리 역시 2년전쯤의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한적이 있다.

 

 

 그때는 스타 크래프트가 이토록 오래가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갈 줄 알았다면 열심히 했었을것이다.

  기욤 패트리의 인터뷰 내용 中

 

 

하지만 여기서 필자는 아무리 이유가 그렇다고 하더라고 이런 부분에서는 옹호해줄 생각은 없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프로의 세계에서 치열한 승부근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즐기면서 했다고는 하지만 -_-) 노력 역시 반드시 따라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자초한것은 기욤 패트리의 명백한 잘못이다. 그리고 2001년 6월 대망의 LAST 1.07이 열린다.

 

 

E-스포츠의 영원한 별. 임요환이 최강자 자리에 등극

 

이 대회는 온게임넷 역사상 유일하게 유료입장을 받았으며 동시에 슈퍼 파이트 형식으로 연 최초이자 마지막 매치였다. 매치는 기욤 패트리 VS 임요환. 이 대회가 있기전에 한빛 소프트배 스타리그에서 초 대박 결승매치로 기대되었던 기욤 VS 임요환의 매치가 (장진남의 저글링. 당시 팬들과 관계자들에게는 진정 악마로 보였을것이다. -_-;) 좌절되자 마련한 매치였다. 이 대회에서 임요환은 기욤패트리에게 3:0의 압승을 거두면서 공식적으로 자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다. 이렇게 LAST 1.07을 끝으로 2년 6개월간의 기욤패트리의 시대는 마무리되었으며 임요환이 또다른 전설의 행보를 시작한다. 하지만 처참하게 기욤 패트리의 왕조는 그렇게 끝이 났지만 당시에 세계를 석권한 유일한 프로게이머였고 아마추어, 오프라인, 배틀넷, 프로게이머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일하게 최강자를 증명하였고 세계최강이라는 타이틀 달 수 있는 유일한 프로게이머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프로게이머의 수준을 확실하게 올려둔 공로는 정말 무시 할 수 없다. 지금이야 온 게임넷 / MBC로 양강구도로 되어버린 탓에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시각이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은 그 시대에 맞게 평하는게 옮다. 지금은 올드 팬이 아니고서야 이런 사실들은 잘 알려지 있지 않지만 당시의 시대를 격어온 유저라면 기억 할 것이다. '세계최강'이자 푸른눈의 마법사라고까지 불리우던 그의 경이적인 모습을....

 

 

 

X~ds-Grrrr... forever

 

 

* 본 글의 일부는 PGR21의 베스트글에 올려져있는 모옹님의 글을 인용.

* 세계지도의 이미지는 팬시공유카페의 fresh_sol님이 작업하신 이미지입니다.

 

- 네이버 오픈백과 사전에 검색해보니, 기욤에 관한 글이 있길래 한번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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