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현지시간으로 2007년 4월 16일 아침 7시 15분
기숙사에서 헤어진 전여자친구를 찾던 조승희는 여자친구와 심하게 다퉜다 바람피웠다고 생각하면서 다툼이 커지자 학생지도담당이 조정에 나서지만 자기방으로 돌아가서 권총 두정을 챙긴후에 (버지니아 주의 총기 규제는 느슨한 편에 속함) 헤어진 여자친구와 학생조정담당을 그자리에서 사살 학생조정담당은 그자리에서 즉사 여자친구는 병원으로 옮겨진뒤 3시간후 사망
이후 두 번째 총격이 벌어질 때까지 약 2시간의 시간 간격이 있었는데
이때 조승희는 이 사건에 대한 편지와 사진을 넣은 소포를 방송국에 부치느라 우체국에 다녀왔다
위의 사진들은 조승희 가 범행 당시 미국 NBC방송에 보낸 사진들 범행이 1차 2차로 나뉘어지는데 여자친구와 학생조정담당을 죽인 범행이 1차 이후의 범죄가 2차 범행 중간에 이런 비디오테이프를 우편으로 보낸것
테이프의 내용은 특정인물은 아니고
미국대중들을 적대시하는 내용
우체국에 다녀온 조승희는 배낭에 물건을 챙겨서 사건 현장인 노리스홀로 갔다
그가 챙긴 물건은 체인 자물쇠 망치 전투 나이프 권총 두 정, 10~15발씩 들어있는 탄창 9개와 여분의 총알 400여 발
이때 조승희가 휴대한 탄약은 500여 발이 넘는 수준으로 전쟁에 나가는 육군 병사 1명이 휴대하는 탄약 분량보다도 많은 수준
노리스 홀로 향한 그는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체인으로 칭칭 감아 자물쇠로 잠가놓고 범행을 시작했다
조승희는 여러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총을 난사했다.
총소리를 듣고 책상과 칠판 등을 이용하여 바리게이트를 쌓아놓은 강의실도 있었는데
비집고 들어가거나 문 너머로 총을 난사해서 문 근처에 있던 사람이 죽거나 다친 경우도 있었다
그는 총 174발을 난사해서 이곳에서만 30명을 죽이고 29명을 다치게 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학생들을 줄을 세운 후에 차례로 총격을 가하기도 하고
10분정도 여유를 두고 총탄을 갈아끼우는 여유도 보였다고 한다
미친놈처럼 날뛰며 난사를 한게 아니라 침착하게 아주 침착하게 사격을 한 것이다
9시 45분쯤 신고를 받고 온 경찰특공대가 잠긴 문을 부수고 진입을 시도했다
경찰은 소리를 듣고 2층으로 올라간 범인을 쫓았지만 간발의 차이로
범인은 이미 자신의 머리를 겨눈 총구의 방아쇠를 당긴 후였다
사건후
기숙사 방에서 발견된 조승희의 노트가 발견됬는데 부잣집 자식들(rich kids) 방탕(debauchery) 기만적인 협잡꾼들(deceitful charlatans)을 횡설수설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또한 사망후에 조승희의 한쪽 팔 안쪽에는 붉은색 잉크로 ‘이스마엘 액스(Ismail Ax)’라고 적혀 있었다는데 이는 복수의 도끼라는 뜻으로 종합적으로 미루어보아
이사건은 계획된 범죄였음을 짐작할수있다
미국에서는 수많은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지만
이 사건은 그 중에서도 최악의 수준으로 스케일이 큰 사건이었기때문에
전세계가 발칵 뒤집혔고 파장이 엄청나게 큰 사건이였다
저 사건일어너고나서 우리나라를 비판한게아니라
오히려 인종차별한걸 반성하는 사람들이많았다고함 베스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