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 고을에 지아비에 대한 공경이 유달리 지극한 아낙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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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아낙의 지아비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장안의 명의들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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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번엔 용하다는 무당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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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듣고 찾아간 무당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점괘를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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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이! 잡귀야 물렀거라.

인왕산 귀신이 노랬구나.

재 너머 인왕상엘 가면 커다란 나무가 바위를 가로 막고 있어.

그래서 자꾸 아픈 거야.

오늘 밤 자시에 그 나무를 잘라 놓도록 하여라.

아픈사람과 함께 가면 좋겠지만 거동을 못한다니.

피붙이라도 데려가는게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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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은 자정이 되기를 기라뎌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를 등에 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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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랗게 날을 갈아 놓은 낫을 들고 인왕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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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낙에도 호랑이가 나온다는 인왕산을 무서운 것도 잊을 채 아기를 업고 오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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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이었는 데도 바지땀이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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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무당이 말한 바위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가 보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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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산 속에서 귀신이 뛰어나와 잡아갈 듯한 공포가 갑자기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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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는 낫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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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서 겨울바람이 휘몰아쳐 비녀를 꽂은 머리카락이 하나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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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은 어서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황급히 나무를 내리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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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을 높이 쳐든 순간 무엇인가가 뒤에서 머리를 휙하고 낚아채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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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에 두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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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뒤를 향해 낫을 든 손을 휘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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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돌아볼 것도 없이 자신을 잡아 당기는 잡귀를 향해 낫을 휘둘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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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얼른 단 칼에 나무를 베어버리고 한걸음에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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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공포심이 한꺼번에 밀려 와서인지 아낙은 옷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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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업은 포대기 마저 땀에 흠뻑 젖은 듯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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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의 숨을 쉬며 집에 돌아와 아기를 내려 놓으려고 포대기를 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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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아낙의 눈에 보인 것은 목이 떨어져 나간 아기의 몸덩어리와 피로 물든 자신의 옷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