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독일에서 권력을 잡을 무렵, 뮌헨에 칼 뢰비라는 장난감 공장 사장이 살고 있었다. 인간성과 질 좋은 시가와 민주주의를 믿는 쾌활한 낙관주의자인 그는 혈통상 아리안 족의 피는 별로 섞이지 않았지만 새 총통의 유태인 배척 선언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찌 됐건 사람들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어떤 생래적인 정의감과 절제와 이성이 일시적인 탈선을 바로 잡으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따라 이민을 가자는 같은 유태인들의 간곡한 충고에 "미스터" 뢰비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답하고는, 자기 집 소파에 편안히 앉아 시가를 물고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전시에 참호 속에서 맺은 확고한 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오늘날 고위직에 오른 그때의 전우 몇몇이 만약의 경우 그에게 힘이 되어주리라는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방문객들에게 그는 술을 권하고 잔을 들어올려 "인간성"에 건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성을 감싸고 있는 것이 나치 군복이든 프러시아 군복이든, 티롤 지방의 모자든 안전모든 간에 자신은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새 정부가 들어선 처음 몇년간 상황은 우리의 친구 칼에게 그렇게 위험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물론 몇 건의 모욕이나 박해는 있었다. 하지만 "참호의 전우들"이 배후에서 정말로 힘을 써주었든, 독일인다운 그의 쾌활함과 믿음직스러운 태도 덕택에 그에 대한 조사가 한동안 늦춰졌든지 간에, 출생 증명서가 불완전한 이들이 모두 유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친구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불굴의 낙관론을 꺾지 않은 채 장난감 공장과 서재, 시가와 좋은 술이 가득한 창고 사이를 오가며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
이윽고 전쟁이 일어나자 사태는 조금 험악해졌다. 어느 화창한 날 갑자기 그에게 공장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명령이 내려졌고, 다음날 정복 차림의 청년들이 달려들어 그에게 심각한 폭력을 행사했다. 칼은 여기저기에 전화를 했지만, "전우"들은 더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처음으로 그는 조금 불안해졌다. 그는 자신의 서재로 들어가 벽을 빼곡히 메운 책들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심각하게, 모여 있는 그 귀한 책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편을 들고 옹호하고 변호하면서 칼 씨에게 용기를 잃지말라고, 절망하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고 있었다. 플라톤, 에라스무스, 데카르트, 하이네... 이들 고매한 선구자들을 믿어야 했다. 인내심을 가져야 했고, 사람들이 인간성을 드러내고 혼란과 오해 가운데에서 방향을 잡고 극복할 시간을 주어야 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인들은 타고난 본성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는 훌륭한 표현까지 찾아내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관용과 정의와 이성은 이번에도 승리를 거둘 것이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믿음과 용기를 잃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어쨌든 조심하는 편이 좋을 터였다.
칼은 소파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는 살집 있는 몸매에 분홍빛 안색, 장난스러운 안경, 입에서 나온 선한 말들의 흔적이 주위에 남아 있는 듯한 얇은 입술의 소유자였다. 그는 조언이라도 구할 태세로 자신의 책들과 시가 상자, 질 좋은 술, 익숙한 물건들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 차츰 활기가 어리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재기발랄한 사람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변함없는 믿음으로 그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그는 서재의 수많은 책들을 향해 브랜디 잔을 들어올렸다.
칼에게는 15년 전부터 그를 위해 일해온 뮌헨 출신의 정직한 하인 부부가 있었다. 여자는 가사를 돌보고 부엌일을 하고 주인이 좋아하는 요리를 준비했고, 남자는 운전사이자 정원사이며 관리인이었다. 남편 슈츠가 유일하게 즐기는 것은 독서였다. 일을 마치고 나면 그는 뜨개질하는 아내 곁에서 칼이 빌려준 책에 고개를 파묻은 채 몇시간이고 보냈다. 그는 괴테, 실러, 하이네, 에라스무스 같은 작가들을 좋아했다. 정원 구석에 있는 자신들이 기거하는 건물 안에서 그는 아내에게 영감 넘치는 고상한 구절들을 읽어주기도 했다. 조금 적적함이 느껴질 때면 칼은 친구 슈츠를 서재로 불렀고, 그곳에서 그들은 시가를 물고 영혼의 불멸과 신의 존재, 휴머니즘, 자유 그리고 자신들이 감사의 눈길로 둘러보곤 하는 주위의 책들 속에 내재된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오래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그 어려운 때에 칼이 눈길을 돌린 대상은 바로 친구 슈츠와 그의 아내였다. 그는 시가 한 상자와 독일산 브랜디 한 병을 들고 정원 구석에 있는 건물로 가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다음날부터 슈츠 부부는 일에 착수했다. 서재의 양탄자가 걷어올려지고, 마룻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설치되었다. 원래 있던 지하실 출입구는 폐쇄되었다. 시가 상자들에 이어 서재에 있던 물건들 대부분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포도주와 다른 술들은 이미 거기 있었다. 슈츠 부인은 가능한 한 안락하게 은신처를 꾸몄다."게뮈틀리히(안락함)"에 대한 지극히 독일적인 감각으로 그 지하실은 며칠 만에 쾌적하고 정돈된 작은 공간으로 바뀌었다. 쪽마루의 구멍은 꼭 맞는 사각형의 나무로 교묘하게 감춰졌고, 그 위에 양탄자가 덮였다. 그리고 칼은 슈츠와 함께 마지막으로 외출해 몇 장의 서류에 서명했다.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장과 집을 그들에게 매각한 것처럼 꾸몄던 것이다.
슈츠는 때가 되면 적법한 소유자에게 재산의 소유권을 돌려줄 수 있도록 필요한 서류들과 반대증서(공식 증서와 규정 사항을 무효화하는 증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고, 칼은 좋은 시절이 돌아올 때를 안전하게 기다리기 위해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머금고 은신처로 내려갔다.
하루 두 차례, 정오와 일곱시에 슈츠가 양탄자를 들어올리고 사각형의 나무를 빼내면, 그의 아내는 맛있는 요리와 좋은 포도주 한 병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슈츠는 매일 저녁 그곳에 와서 친구이자 고용주인 그와 더불어 인간의 권리, 관용, 영혼의 영속성, 독서와 교육의 미덕 같은 고상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럴 때면 고결하고 관대한 그런 견해들로 인해 그 작은 지하실이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칼은 처음에는 신문들도 내려보내게 했고 라디오도 곁에 두었다. 하지만 6개월 후 뉴스가 점점 더 그를 실망시키고 세상이 진짜 타락하는 것처럼 여겨지자, 인간의 본성 속에 간직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신념을 일시적인 정황의 반향으로 위협당하지 않기 위해 라디오를 치우게 했다.
팔짱을 끼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는 지하실 구석에서 장래가 불투명한 현실과의 모든 접촉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결국 그는 지나치게 사기를 꺾어놓는다는 이유로 신문을 읽는 것마저 거부하고, 서재에 꽂힌 걸작들만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영속하는 것이 일시적인 것에게 가하는 그런 반박들에서 자신의 신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힘을 길어내게 되었다.
슈츠는 기적적으로 폭격을 면한 안채로 아내와 함께 이주했다. 처음에는 공장에 몇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칼이 외국으로 도피했고, 그 사업체를 합법적으로 양도받았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었다. 신선한 공기를 쐬지 못하고 전등불 아래에서 사는 생활로 인해 칼은 더욱 뚱뚱해졌고, 몇 년이 자니자 그의 뺨에서는 분홍빛 혈색을 찾아 볼수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낙관론과 인간성에 대한 믿음은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세상에서 관용과 정의가 승리하기를 기다리며, 그는 지하실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다. 친구 슈츠가 전해준 바깥 세상의 소식이 아무리 끔찍해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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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몰락하고 몇 년후, 이민을 갔다가 돌아온 칼의 친구 하나가 실러 가에 있는 개인 저택의 문을 노크했다. 등이 구부정하고 키가 큰,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반백의 남자가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그의 손에는 괴테의 작품이 들려 있었다. 아뇨, 뢰비씨는 이제 여기 살지 않습니다. 아뇨, 우리는 그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분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모두 조사해 보았지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문이 닫혔다. 슈츠는 집 안으로 돌아와 서재로 갔다. 그의 아내가 이미 쟁반에 요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독일이 다시 풍요를 구가하게 된 지금, 그녀는 가장 맛있는 요리만을 가져다 주며 미스터 칼을 극진히 대접하고 있었다. 양탄자가 걷어올려지고 사각형의 나무가 치워졌다. 미스터 슈츠는 괴테의 책을 책상 위에 내려 놓고 쟁반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 갔다.
이제 몸이 몹시 약해진 칼은 정맥염으로 고생하고 있다. 게다가 심장도 나빠지고 있다. 의사에게 보여야 하지만 그로서는 슈츠 부부에게 그런 위험을 무릅쓰게 할수가 없다. 그들이 여러 해 동안 휴머니스트 유태인을 지하실에 숨겨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살아남지 못할게 아닌가. 인내심을 갖고, 의심을 떨쳐야 한다. 본래의 관용과 이성과 정의가 회복되리라. 무엇보다도 낙담하지 말아야 한다. 많이 꺾이긴 했지만 칼은 자신의 낙관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도 여전하다. 날마다 슈츠가 나쁜 소식 - 히틀러가 영국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특히 큰 충격이었다.- 을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올 때마다 칼은 그를 격려하고 좋은 말로 위로한다. 벽을 덮은 책들을 가리키며, 언제나 인간성은 결국 승리한다고, 그런 신념과 믿음 속에서 위대한 걸작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슈츠는 언제나 한결 밝아진 모습으로 지하실에서 나온다.
장난감 공장은 순조롭게 가동되고 있다. 1950년 슈츠는 공장의 규모를 키우고 매출액을 두 배로 늘렸다. 그는 유능하게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아침 슈츠 부인은 싱그러운 꽃을 한다발 들고 내려가 미스터 칼의 침대 머리맡에 놓는다. 그녀는 칼의 베개를 다독여 주고 그를 도와 자세를 바꿔주고, 이제 스스로 숟가락질을 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그에게 음식을 먹여준다. 이제 칼은 겨우 몇마디 말만 할 수 있을 정도다. 때때로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차오르고, 두 부부와 인류 전체에게 품어온 자신의 믿음을 그토록 충실히 지켜준 선량한 이들의 얼굴을 감사에 찬 눈길로 바라본다. 자신의 신념이 옳았다는 만족감 속에서 그는 양손에 충직한 친구들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죽어가리라.
- 로맹가리, 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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