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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죽음을 추모하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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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04:02:47 (7년 전) / READ : 730
    걔는 철이 없었다. 아니, 순수했던가. 걔는 아주 작은 동산 같은 눈을 가졌고, 시원하게 퍼져있는 코를 가지고 있었다. 미남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쉬는 시간 종이 칠 때면 복도 끝에서 복도 끝까지 달려가곤 했다. 왜 그렇게 복도에서 뛰어다니냐고 물으면, 시원하단다. 운동장에서 뛰는 거보다 복도에서 뛰는 게 시원해서. 그리고 친구들이 자기를 쳐다봐주는 게 좋았단다. 다분히 정열적인 아이였다. 나이가 들자 걔는 오토바이를 몰았다. 매일 같이 대로를 풀 액셀로 달렸다. 그 아찔한 곡예를 사람들은 혀를 차며 관람했다. 걔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만, 매운 칼바람이 살점을 꼬집어도 티셔츠 한 장만 입고 오토바이를 탔다. 대로를 시속 160km로 달려도 시원하지 않았나 보다.
    ⠀⠀⠀⠀⠀⠀⠀⠀⠀⠀⠀⠀⠀⠀⠀⠀⠀
    걔는 몸이 허약했다. 연약한 목울대가 매일 같이 흔들릴 정도로 기침을 했다. 걔의 기침에 어떤 감정이 실려있었을까. 적어도 괴로움은 아니었겠지. 항상 기침을 할 때마다 해맑게 웃었으니까. 그 웃음을 괴로움이라 하기엔 너무도 천진했다. 아마 너는 괜찮았을 거야. 하지만 그 웃음은 담배연기와 함께 잔상이 되었다. 담배를 피울 때 목이 따가운지 계속 기침을 토해냈다. 토해낸 기침은 건조했다. 어떤 감정도 실려있지 않아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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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걔는 착했다. 여자아이들의 뒷목을 세게 때리고 도망치는 장난을 할 때도, 어른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산의 수화라 우기는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할 때도, 착한 애였다. 그 눈망울 뒤에는 무어라 핀잔 줄 수 없는 순진함이 있었다. 다들 걔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럴 때마다 이런 행동을 잘못되었다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다들 그렇게 걔를 보듬어주었다. 어느 날부터 인가 경찰서를 들락거리자, 걔 눈망울 뒤의 순진함이 탁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고 깽판을 부려 끌려갔고, 남자 친구 있는 여자를 희롱하여 그 남자 친구한테 코뼈가 부러질 정도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
    그런 걔가 죽었단다. 사인은 아무도 모른대. 오토바이를 타다가 달리던 차에 들이박아 뒈진 건지, 담배를 하도 많이 펴서 폐암에 걸려 뒈진 건지, 처맞던 찰나에 어디 한 군데를 잘못 맞아 재수 없게 뒈진 건지. 같이 간 친구가 그랬다. 장례식장은 소박했다. 상주라고 있는 동생은 차갑게 서있었다. 조문객이라고 해봐야 열댓 명이 전부였다. 나는 걔의 웃는 얼굴에 절을 두 번 하고 상주에게 절을 했다. 상주는 어서 가서 밥이나 먹으라며 나를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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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포함한 열댓 명은 수육이라 되어있는 편육과 약간의 육개장, 그리고 심심한 건어물과 함께 소주를 마셨다. 술이 들어가자 애들은 떠들었고 난 조용히 술잔만 채웠다. 잘 죽었지 뭐. 야 암만 그래도 잘 죽었다는 좀 그렇다. 에이, 그래도 계속 양아치 짓 하고 다녔던 거 생각해봐. 맨날 툭하면 돈이나 빌려달라 하고. 근데 왜 죽은 거래? 아, 아까 상주한테 물어봤는데 인도에 있는 어떤 노인네 쪽으로 차 한 대가 달려와서 노인네 밀고 대신 치였대. 뭐 그 자리에서 바로 죽었대. 근데 노인네를 또 잘못 밀쳤는지 연석에 머리 박고 노인네도 죽었다더라. 어차피 죽을 운명인 노인네 살리겠다고 개죽음당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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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은 동의하는 듯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렇게 걔의 이야기는 서서히 사라지고 우리는 술을 진탕 마셨다. 나는 거나하게 취하고 나서 집에 가는 택시를 잡았다. 기사는 룸미러를 나를 힐끗 보더니 장례식에 다녀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죽을 만한 사람이 죽었나 보네요. 술을 그렇게 마신 걸 보니까. 아, 죽을만한 사람이라. 나는 울먹거리며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당황해하며, 화제를 돌리려 했다. 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차를 세워달라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꺽꺽 거리며 울었다. 엉엉 울기에는 내가 자격이 없는 거 같아서, 꺽꺽 거리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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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3시, 가을과 겨울의 경계쯤의 어느 날, 말라비틀어진 잎의 시체를 휘날리는 가로수를 붙잡고, 나는 그 사소한 죽음을 추모했다. 아주 사소한 생각들로. 아주 사소한 기분들로. 아주 사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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