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기 5분전에
매니저님께서 부르셨다.
"민수씨 혹시 잠깐 시간 돼요? 퇴근 전에 불러서 미안하긴 한데, 좀 중요한 사항이라"
약간은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회의실로 오라며 손짓하는 매니저님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퇴근하기 5분전에 긴급히 해야 할 얘기는 뭘까...? 표정을 보니까 썩 유쾌한 얘기 같지는 않은데'
나는 회의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이런 저런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민수씨, 혹시 SAP 프로젝트 맡을수 있어요? 지금 하는 프로젝트도 버거운거 아는데, 회사에 사람이 없으니까...'
'민수씨, 이번에 연봉 협상 대상자죠? 이번년도는 연봉 동결입니다. 열심히 일한거 아는데, 회사사정이 어렵네요'
그 찰나의 순간에 떠올린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2가지 였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차가운 공기가 불안감에 싸여 있는 나를 먼저 맞이 했다.
왠지 더 오싹한 느낌.
미리와서 앉아 있던 매니저님은
나를 본인 옆에 앉으라며 의자 하나를 뒤쪽으로 빼주었다.
"민수씨, 내가 급하게 부른건 다름은 아니고, 민수씨도 1월 연봉 협상 대상자잖아...."
저만치 멀리 있던 불안한 감정이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음, 결론만 먼저 말하자면, 이번년도는 연봉 동결이야."
'아니 시발..'
겨우 타고 있던 희망의 불씨가 발로 비벼져 꺼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왜요? 작년보다 생산성도 더 높아지고, 회사 매출도 올랐는데 왜 연봉 동결이죠?"
.
"나도 알지 민수씨 열심히 일한거, 다만 이번에 새 사업 시작하면서 들어가는 돈이 예상보다 많아져서, 이번 1월 연봉 협상 대상자는 동결하자는 얘기가 나왔어'
"아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새사업은 새사업이고 연봉은 연봉이지... 하...진짜로 작년에 열심히 한 내가 전부 부정 당하는 느낌이에요. 아시잖아요 매니저님."
"단축근무랑 인센티브로 더 챙겨줄게, 너무 상심하지 마 민수씨, 민수씨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재계약하는 사람들도 다 그럴꺼야"
"일단 회사에서 통보하면 따를 수 밖에 없으니, 알겠습니다만, 상황이 개선되길 바랄게요"
불안감이 분노로 바뀌어져 회의실 문 밖을 나왔다.
작년 나는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일 했을까?
이런 불안정한 회사를 들어온 실력 없는 나를 탓해야 할까.
감히 말하건데
한국에서 본인의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전체 노예중 1%도 안될꺼다.
다 돈때문에, 그 망할놈의 돈때문에
졸린눈을 비비며, 사람으로 가득찬 지하철 속 아우성들을 견디고
그지같은 상사 비위 맞춰 가며 출근하는건데.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퇴근 준비를 마치고 회사 밖을 나왔다.
눈이와서 젖어있는 도로와
축축한 공기 때문에 더 기분나쁘게 느껴지는 추위가
내 퇴근길을 서글프게 만들었고
하늘을 찌를듯 높게 우뚝 서 있는
환하게 불켜진 종로의 대기업 빌딩들이
하찮은 나를 내려다 보며 비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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