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일본이 본격 한국을 만만하게 보기 시작해서 임진왜란이 터졌다 생각하는 인식이 광범위 하며, 메이지 유신으로 정치적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급기야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었던 탓에, 일반 대중들은 조선을 흔히 '그 전까지는 한반도 국가들이 앞서 있었는데 조선 때 뒤쳐졌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한국에선 소수의 국수주의 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일본이 단지 산업혁명을 먼저 도입하게 되어 조선 식민화를 위한 군사력을 얻은 것일 뿐이다"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있는데, 이 또한 신빙성이 높은 주장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이걸 다르게 말하면 일본은 원래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나라였는데 산업혁명 도입 이후에 조선을 강제 점령하여 그 자양분을 갈취하는 것으로 성장했다는 믿음이 된다. 물론 일본이 조선과 대만, 특히 조선을 통해 식민적 제국주의를 실현한 것은 맞지만 이 주장은 그런 수준을 뛰어넘는 비약이다.
1800년대 중반,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집권해 내정을 개혁하고 있던 시기였던 반면 대조적으로 일본은 에도 막부가 개혁에 실패하면서 막부의 무능함에 대해 내부 불만이 쌓이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서양세력이 흥선대원군은 서구의 공격을 내부를 결속시켜 자신의 정치적 권력을 강화, 개혁을 속행하는 발판으로 삼았고, 에도 막부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으로 인해 반막부파에게 빌미를 잡히며, 반막부파는 서구의 힘을 빌려 막부를 타도하는데 이용한 것이다. 즉, 한국은 서양세력의 침입을 계기로 더욱 폐쇄적으로 바뀌었고, 일본은 서양세력의 침입을 개방의 계기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이 두 나라의 운명을 갈라버리게 된다.
| 국가 | 0 | 1000 | 1500 | 1600 | 1700 | 1820 | 1870 |
| 중국 | 5,960 | 5,900 | 10,300 | 16,000 | 13,800 | 38,100 | 35,800 |
| 인도(Maddison) | 7,500 | 7,500 | 11,000 | 13,500 | 16,500 | 20,900 | 25,300 |
| 인도(Clark,1967) | 7,000 | 7,000 | 7,900 | 10,000 | 20,000 | 19,000 | |
| 인도(MaEvedy & Jones,1978) | 3,400 | 7,700 | 10,000 | 13,000 | 16,000 | 20,000 | |
| 인도(Biraben,1979) | 4,600 | 4,000 | 9,500 | 14,500 | 17,500 | 19,400 | |
| 인도(Durand,1974) | 7,500 | 7,500 | 11,250 | ||||
| 일본(Maddison) | 300 | 750 | 1,540 | 1,850 | 2,700 | 3,100 | 3,450 |
| 일본(Hayami) | 1,000 | 1,200 | 3,000 | 3,100 | |||
| 한국 | 160 | 390 | 800 | 1,000 | 1,220 | 1,380 | |
| 인도네시아 | 280 | 520 | 1,070 | 1,170 | 1,310 | 1,790 | |
| 인도차이나 | 110 | 220 | 450 | 500 | 590 | 890 | |
| 기타 동아시아 | 590 | 980 | 1,440 | 1,690 | 1,980 | 2,360 | |
| 프랑스 | 500 | 650 | 1,500 | 1,850 | 2,147 | 3,124 | 3,844 |
| 독일 | 300 | 350 | 1,200 | 1,600 | 1,500 | 2,490 | 3,923 |
| 이탈리아 | 700 | 500 | 1,050 | 1,310 | 1,330 | 2,017 | 2,788 |
| 영국 | 80 | 200 | 394 | 617 | 856 | 2,122 | 3,139 |
| 스페인 | 450 | 400 | 680 | 824 | 877 | 1,220 | 1,620 |
| 국가 | 0 | 1000 | 1500 | 1600 | 1700 | 1820 | 1870 |
| 한국 | 250 | 450 | 950 | 1,150 | 1,450 | 1,600 | 1,700 |
출처 : from the 2007 monograph 'Contours of the World Economy, 1–2030 AD' by the British economist Angus Maddison. (China, India, Japan, Korea, Indonesia, Indochina, Other East Asia)
【부흥】네이버 대표 역사 카페 (한국; 삼국, 고려) 인구를 조선에 비해 다소 낮게 추정해 본 표에는 더 높게 수정하여 기록함. 기타 카페 내의 여러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함.
인구대사전 <표 3-4> 연도별 조선시대 인구 추정치, 1392-1910 (한국; 조선) 1600년은 임진왜란 직후, 1700년은 을병대기근 직후, 1820년은 홍경래의 난 직후로 세 경우 모두 직전보다 약 200만명 정도의 인구 손실이 있었음을 밝힘.
| 국가 | 1500년 경 | 1600년 경 | 1700년 경 | 1800년 경 |
| 영국, 아일랜드 | 440 | 680 | 930 | |
| 프랑스 | 1,640 | 1,850 | 2,000 | |
| 이탈리아 | 1,050 | 1,330 | 1,330 | |
| 폴란드 | 350 | 500 | 600 | |
| 중국 | 15,000 | 20,000 | 30,000 | |
| 일본 | 1,200 | 2,770 | 3,070 | |
| 한국 | 900 | 1,100 | 1,350 | 1,600 |
[53]
참고로 전근대시절 자료들은 교회나 신사, 사찰을 털면 되는 유럽, 일본같은 경우를 제하면 거의 전부 추계라 봐도 무방하다. 그냥 대충 이 정도 되나 하고 여기면 된다.
근대 이전 일본과 한반도 국가들의 국력을 비교해보면, 일본이 오히려 한반도의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능가한 적이 비일비재하다. 삼국시대 당시 삼국의 총인구를 다 합쳐도 일본[54]을 능가한다는 보장이 없을 뿐더러[55] 이 때 당시 한반도는 삼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다만, 한반도가 문명의 발전 수준이 당시로서는 넘사벽이라 그것으로 커버를 한 셈이다. 그랬다가 조선의 경우는 15, 16세기 들어 인구가 2배 이상 점프해 왜란 때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왜란 전에는 1400만이 넘어선 인구가 1050만~1200만으로 감소한다. 그리고 이 시기 일본은 전국시대의 상막장을 겪느라 인구가 왜란 직전의 조선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1300년에 1100만명 정도였고 1500년에 1500만명을 넘었다. 그랬다가 왜란 후 양국에 평화가 찾아오자 조선은 17세기 후반에 다시 성장을 시작하여 1600만까지 증가하고 을병대기근으로 1450만~1500만으로 다시 줄었다가 또 다시 성장하여 18세기 중후반에 1750~1850만 명의 인구를 보유했고 같은 시기 일본은 2500만~3000만을 넘겼다고 한다. 조선은 대체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인구가 증감을 반복하며 성장하여 18세기 중후반에 안정세였다가 19세기 홍경래의 난 이후에 1650만~1700만까지 감소하고 정체된다. 일본은 17세기 들어 인구가 1.5배 이상 뛰었고 그 이후에도 이전에 비하면 증가율은 훨씬 줄었지만 여하튼 완만하게 성장했다.
사실 전근대 사회는 지형과 기후가 비슷하다면 영토와 국력이 대체로 비례하는데, 애시당초 일본의 지리와 기후가 더 유리한데다[56] 영토도 일본이 더 크다. 이를테면 일본 열도의 산지의 비율은 일본 67%, 한반도 약 70%로, 일단 한반도의 산지가 일본의 산지에 비해 평균적으로 낮아 농지로의 가치가 많이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대동소이 하며, 또 한반도 전체 면적은 일본의 혼슈보다 약간 작다. 그리고 큐슈와 시코쿠도, 면적으로만 보면 작은 섬이 아니다. 기후도 일본 열도가 한반도보다 대체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 쌀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농업에 유리하다. 한반도에선 꿈도 못 꿨을 3모작이 일본 열도에선 무로마치 시대의 큐슈에서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전국시대 당시 관동 지방의 본격적인 개발과 함께 일본 열도의 전체적인 생산력은 확실히 한반도보다 앞서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축적된 잠재력이 개화된 에도 막부를 기점으로 일본의 국력은 크게 성장하여 조선을 확실히 앞지르게 된다. 조선 통신사의 기행문을 통해서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일본의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에도 막부에서 보여주기식으로 펼친 바 있지만.참관수업
조선이 일본보다 더 유리하면서 동시에 불리한 것은 지리적인 점[57]이었는데, 만약 조선이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명과의 통상을 더 확대했더라면[58] 일본 열도에 대한 지리, 기후적 열세 정도는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일본과 조선의 지리적 특성상, 일본이 조선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일본보다 조선이 근대적 개항이 늦었고 그 결과는 두 나라가 식민국가와 피식민국가로 갈리게 되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59] 다만, 조선 극 후기 멸망 직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의 책임을 500년이나 이어온 조선 역사 전체에 지우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긴 어렵다.
반대로 일본과의 격차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교과서에서 강조되는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자생적 근대화의 징후들 즉 화폐 경제의 활성화, 시비법의 발전과 이앙법의 보급 등 농업 생산력의 발전, 상업의 성장, 서민 문화의 발전 등에 대해서 가마쿠라 시대 후기에 일어난 사건들이라 별거 아니다라는 논리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초급적인 비교론을 답습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러한 징후가 일본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에도시대에 와서다. 각론으로 따져보자.
그리고 그 일본에서도 회계적 단위로 쌀이 널리 쓰였다. 단적으로 석고제가 그러하다.
이처럼 단순 대입식 역사 발전법은 많은 편견을 낳을 수 있다. 흔히 알려진 조선과 주변 동아시아 왕조와의 비교로는 고려-당(귀족정치) - 조선-송(문치붕당정치)라는 비교나, 조선은헤이안 시대와 같아 무사(기사)의 봉건사회를 치르지 않아 고대사회와 다를바가 없다는 일제 학자들의 견해 등이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중국은 봉건사회를 춘추전국시대에 치른 셈이 된다(...)
즉, 일본과 한국의 국력 격차는메이지 유신 때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연대적으로 조선 왕조 초기를 제외한 수백년을 통틀어 벌어진 장기적인 현상이다. 다만, 이전 글에서 서양과 중국, 인도를 비교한 글은 문제가 있는데 동아시아 삼국은 맬서스 트랩 때문에 1인당 소득은 대체로 그게 그거라 보이지만 19세기 서양은 맬서스 트랩은 진작에 벗어나 1인당 소득이 넘사벽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조선 통신사의 수필이나 보고에 "오랑캐들 주제에 사치를 엄청나게 부린다", "오랑캐들이 의외로 많이 번영해서 쫄았다," "오랑캐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름 문명국이다. 본받을 것도 많은 것 같다" 등 일본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기록이 많으니 당대 조선인 본인들부터 후진성에 대한 인식이나 일본에 대한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나 한문에 능통한 원로 학자가 번역한 《일동장유가》를 본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다. #
오히려 《일동장유가》의 내용은 일본보다 발달한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애초에 이게 통신사라는 게 생긴 이유다.) 일본 도심가의 사치를 비판하는 것으로, 매우 일관적인 어조로 쓰여있다. 이에 대해 사치를 비판하는 거 자체가 경제 논리를 모르는 꼰대짓이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당시 일본 열도의 전반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이를 마냥 근거없는 비난이라고 매도하기 힘들다. 에도 막부의 번영은 에도나, 도시 지역에 집중되었지 시골에 가면 조선 농민들은 부르주아로 보일 정도로 가혹한 일본 농민들의 삶이 있었다. 일본의 농민들은 4~50%의 수확량을 착취당하는 것은 예사고 많게는 7~90%를 착취당하기도 했으며 다이묘들에게 혹사당했다. 텐메이 대기근과 경신대기근의 양국 대처만 봐도 조선은 국가 시스템을 총동원해서 구휼에 나섰지만 일본은 유력자들의 기부에 의존하는 등 사실상 방치했다. 이런 번영은 정상적인 경제나 시장의 발전이 아니라 막대한 재정규모로 뒷받침되는 정부의 지원에 따른 것인바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디씨 역갤 등지에서는 도시화 떡밥과 관해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일단 도시화가 "좋은 국가"를 정의하는 척도가 되어준다는 생각부터가 근거없는 생각이다. 상술했듯 에도의 도시화는 일본의 농민들을 대상으로 한 가혹한 착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러한 도시화도 무조건 화려하기만 하다면 그 이면의 희생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국가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화라면 의미가 있겠지만, 역으로 주민 다수의 삶의 질을 격하시켜가며 이루는 도시화라면 그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런 식으로 따지면 북쪽의 김씨 왕조도 평양은 제법 크고 화려한 도시다. 또 도시 인구 규모를 드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가령, 도시 인구 랭킹을 따지면 중국, 남미의 도시들이 선진국 도시들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한다.
전술했듯 "국가"로서의 일본과 조선의 문제를 떠나 "국토"로서의 일본 열도와 한반도는 전자가 한 체급 더 크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생산의 절대량에서 따라잡혔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을 못난 왕조, 무능한 왕조로 몰아가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17세기에 일본의 생산량이 크게 성장하여 조선을 앞지른 것은 사실이나 이것은 포텐의 차이다. 물론 개화기의 대응 차이로 조선이 일본에 먹히는 신세가 된 것은 사실이나 단지 그 이유로 500년이나 되는 조선 왕조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말해도 무리수라 봐야 할 것이다.
고구려에 비교되거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경험 때문에 만날 앉아서 글만 읽고 군사력은 안 기른 나라라는 인식도 아주 흔하다.
하지만 군사력은 결국 에 대비하기 위한 비용이고,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낭비가 되어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삼국시대와 달리 전쟁 수행으로 생기는전리품을 통해 군사력을 유지하는 방법도, 마땅히 정복할 곳이 없이 그냥 국방만을 위해 군사를 유지했던 조선에게는 불가능했기에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따라서 필요한 만큼만을 투자하는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전기 조선의 입장에서 본다면 군사력 필요는 정말 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도 막 고려에서 왕조가 교체된 초창기에는 명나라를 정벌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는 등, 상당히 군사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애초에 조선 자체가 무관이었던 이성계가 쿠데타를 통해 고려의 권력을 장악한 뒤 기반을 건설한 나라니만큼, 조선의 상층부는 그 누구보다도 칼 쥔 무관세력의 힘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60] 더욱이 왕자의 난으로 큰 혼란을 겪은 후에는 군사력(특히 사병)의 과도한 증가를 억제하고 남는 여력을 문치에 쓰게 된 것이 조선이다. [61] 또, 전반기 조선은 함경도 일대 및 남쪽 해안 지역 등 일부 위험한 국경지역을 제외하면 외적인 방위 부담이 상장히 적었다. 아니, 국경지역이라 해도 방위력 필요가 적은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임진왜란의 경우 대비가 너무 열악했다고 디스당하는데, 당시 선조 정권도 일본의 침공 예정을 파악은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예상한 것 이상의 대규모였을 뿐. 왜란 이전 최대규모의 왜구였던 고려말 왜구들을 가정한다 해도 수만여 정도이지 임란처럼 20만에 육박하는 규모는 아니었다. 명나라 북로남왜의 화를 기준으로 삼아도 마찬가지였다. 임란때 일본군의 규모는 그 이전의 경험으로 예측한 것의 몇배에 달했던 것. 거기다 진포 해전, 황산 대첩과 대마도 원정 이후 왜구들은 한반도보다는 중국 해안선을 주요 타겟으로 삼았고[62] 그나마도 무로마치 막부의 안정화로 더더욱 감소하였기에 조선이 체감하는 일본의 위협은 크게 줄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거기다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을 공언한 건 아직 일본 내 정리도 되지 않았던 시점... 이런 상황에서 히데요시가 그런 미친 짓을 할거라고 예측해낸다면 그 사람은 제갈량에 준하는 인재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할 것이다' 라는 정보를 소련에 넘겼을 때 당시 소련 서기장 스탈린이 현실적으로 독일은 이미 영국과 전쟁 중이기에 그런 미친짓은 벌이지 않을 것이라 보고 많이 대비하지 않았다가 독소전쟁이 터진 것처럼 이런 사례는 역사속에 많다.
임란과 호란의 전란을 겪은 후인 조선 후기에는 군사력 증대와 관련된 실록 기사가 급증하며,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대부분의 조선시대 군사 시설 유적들은 대부분 이때 완비된 것이다. 대표적인게 남한산성(광해군 대에 축조, 인조 대에 대대적으로 보강), 북한산성(숙종 때 축조), 강화도 일대의 수많은 포대들[63]이 있다.
또한 인조~숙종시절 이어진 5군영의 설치는 조선의 재정을 압박하였다. 최대의 군영이었던 훈련도감의 경우[64] 1년에 5~8만석 정도의 경비가 들어갈 때도 있었는데, 호조의 재정규모가 11~12만석 내외라는 점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 물론 조선은 재정의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국가고[65] 호조의 재정은 조선 후기 전체 국가재정의 약 1/5 정도에 불과했으나, 어찌되었든 이러한 군사비는 무시할 수 없는 국가 재정의 부담으로 다가왔다. 비변사로 대표되는 군부의 세력 강화도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
삼정의 문란의 군포 부분도 이러한 군사비의 증가가 어느정도 한몫을 했다. 물론 삼정의 문란이 국가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은 세도정치때문이지만.
군사력은 또한 내부 치안도 담당한다. 그런데 조선은 이 점에 있어서 제법 우수한 편이었다. 물론 무뢰배, 검계 등 폭력집단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도적떼가 사라졌던 적도 없는 것은 사실이나, 애초에 이런 집단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근대 이전엔 어디에서든 무리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실록상 나타나는 이런 집단들은 그 규모가 잘해야 수십여 명 선을 넘지 않는데, 이는 인구 규모와 면적, 산이 많은 한반도 지형을 고려할때 상당히 안정된 편이다. 대신 그 자리를 호환이 차지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66]
도적떼, 해적떼의 존재에 대해 조선을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비교하여 좋지 못했느니 흉흉했다느니 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일 것이다. 시대적인 평균치를 놓고 따진다면 조선은 한반도 역대 왕조 중 가장 평화로웠던 국가가 맞을 것이다.
신라는 장보고가 하도 신라인들이 노예로 팔리다 보니 당에서 벼슬하다 돌아올 정도고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초창기부터 왜구의 대규모 공격을 받는다. 중국 대륙과 맞닿은 고구려는 말할 것도 없고 백제도 뭐... 고려는 거란, 몽골, 홍건적, 왜구 등이 정말 미친 듯이 날뛴다
일본, 중국 등을 동시대 조선과 비교했을 때 전자의 경제적인 발달은 상당한 정도이나, 그걸 민생으로 끌고 가면 과연 백성들이 조선보다 무조건 잘살았는지로 곧바로 알 수는 없다. 일본 같은 경우는 상당한 세금량 등으로 인한 민란이 많이 일어난 지역이다. 에도 시기 발달된 도시도 알고보면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주변 지역(주로 피지배 계급들)의 착취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결국 저런 자료는 백성들의 삶을 비교하는 데 있어 증거론 쓰기 힘들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인 이영훈[67]에 따르면 1인당 GDP는 40달러 수준. 일제강점기의 통계 자료를 봐도 비슷하다. 앵거스 매디슨 통계를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앵거스 매디슨의 경우 통계학적으로 봤을 때 추론의 오류(Error of Extrapolation)를 저지르고 있는데, "각국의 경제는 급작스런 변화상 없이 일정한 패턴 하에 전개되어 왔다"라는 전제를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령 이 사람 자료를 받아들이자면 남한의 경제도 한강의 기적으로 고속성장한 게 아니라 대한제국 시기와 그 이전부터 꾸준히 발달했다는 결론이 나와버린다.그리고 그 결론이 맞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불태워지거나 파괴 혹은 여러가지 일을 당한 도시들이 이탈리아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로 로마제국 버프를 받아 GDP가 상당히 높으며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각 시대의 통계 자료하고는 당연히 맞지 않은 편이다. 특히 앵거스 매디슨이 역사적으로 잘 모르거나 관심이 적은 지역들은 더욱 그렇다.본격 "자세한 것들은 모두 무시해도 된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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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년 초졸이랍니다 , 그냥 무시해주세요 (2) | 헌법재판소 | 435 | 15.05.13 | - |
| 대학에 간 적이 있는지부터가 불투명한 새끼가 말은 조또 많아욬ㅋㅋ | 헌법재판소 | 394 | 15.05.1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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