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였음
개인적인 사정으로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해있던, 한마디로 여유가 없던 그런 시절.
학교를 다녀와서 다른 하숙생들과 저녁을 대충 먹고,
나는 샤워를 하러 화장실로, 다른 애들은 각자 자기 방으로, 하숙집 주인 부부는 2층으로 올라가셨음.
워낙 물줄기를 맞고 있는걸 좋아해서 기본 샤워 시간이 2,30분 정도씩 걸렸었는데
화장실 안에서 노래를 부를 때 그 에코같은 소리를 참 좋아했음. 괜히 노래도 더 잘 부르는 것 같이 느껴지고.
김범수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뜻한 물에 노곤노곤한 기분을 즐기고 있었는데
왜 그럴 때 있지 않음? 아무 이유도 없이 음산하다거나ㅏ 소름 돋는 느낌이 들 때.
누군가 날 보고 있다거나 내 뒤에 있는 것 같다거나 하는 느낌도 아니고
그 당시엔 나도 정확히 무슨 느낌이었는지를 모르겠어서 몇 초 정도 잠깐 곱씹어본 정도지
별 상관을 하지 않고 천천히 샤워를 끝마치고, 샤워부스에서 나와 흥얼거리며 수건으로 몸을 닦았음.
머리를 말리고, 몸에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데 내가 느꼈던 이질감이 라디오 볼륨 올리듯이
갑자기 확 커지면서 정말 온몸에 닭살이 쫙 돋는거임.
화장실 밖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수건만 두른 채 뛰어나와 바로 가장 가까운 동생방으로 달려갔음.
같이 하숙하던 동생놈도 놀래서 뭐냐고 물어보는데 그제서야 확실하게 상황이 기억남.
화장실에서 샤워 물소리와 내 흥얼대던 소리 사이를 뚫고 들렸던 건
내가 부르던 노래완 미묘하지만 분명 다른 노래였던걸.
그리고 아무리 화장실이라 소리가 울렸다 할지라도 내가 흥얼거림을 멈춘 후
그 다른 노래가 1초 정도 더 들린 후 멈췄다는 것을.
바로 집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한테 다 내가 샤워하는 동안 화장실 들어오거나 앞에 있었던 사람이 있었냐고 다 물어봤지만
아무도 각자 방에서 나온 적이 없다는 대답. 거기다 라디오나 다른 음악 등 어떤 것도 튼 적 없다는 얘기를 들었음..
힘든 일이 연달아 터지면서 많이 지쳐있던 때인지라 기가 약해져있었던게 아닌가 싶으면서 '기'라는게 진짜 있지 않나 싶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