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의회에서 UFO 증거 자료를 공개한 일이
내 생에 가장 미스테리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4일, 혹은 5일 이었지만
아마도 6일 이후는 아닐 것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정확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건
그 일은, 아니 그 사건은
우리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때 벌어졌기 때문이다.
2001년 3월 4일, 혹은 5일.
무엇인지 모를 그 빛의 무리가
우리 눈 앞에 보였던 건 바로 그날이었다.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는
경기 남부권 꽤 유명한 기숙학교였다.
신입생의 1/3 정도는 기숙사에 살 정도로
기숙이 보편화돼 있었다.
나도 기숙사에 배정된 학생이었고,
이제 막 입학식을 치른 우리들은
아직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기숙사에 남겨졌다.
책더미와 이불 따위를, 또는 노트북 같은 수업용 도구를
기숙사까지 차로 옮겨다 준 우리 각자의 부모님들은 모두 떠난 늦은 오후.
우리는 별 말 없이 학교 운동장과 기숙사를 서성일 뿐이었다.
“농구할래?”
공을 들고 있던 누군가 침묵을 깼다.
그 제안을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교복 자켓을 벗어던지고
기숙사 건물 바로 앞 농구장으로 하나 둘 모였다.
누가 몇 점을 냈는지.
내가 몇 번의 슛을 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늘의 그것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분명 나였다.
“야 저거 뭐냐”
공을 튀기며 림만 바라보던 우리들은
나의 한 마디에 경기를 멈췄다.
가건물로 지은 보잘것 없는 기숙사 건물 지붕 위,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운 저 멀리 하늘에서
주황색 불빛이 나타났다.
처음부터 두 개가 나타난 건 아니라는 걸
세 번째 불빛이 나타난 뒤에야 알았다.
그 불빛은 마치 새끼를 까듯
곧이에 네 번째 불빛을 대동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불빛이 켜졌다.
3월 차가운 초저녁의 파란 하늘에
별안간 불빛 5개가 나타난 것은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사건이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저 불빛의 근본에 대해 한 마디씩 내뱉었다
누군가는 비행기라고 했다.
그 주장은 바로 기각됐다.
약간의 떨림이 있을 뿐
불빛은 마치 하늘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인공위성 불빛일거라 추측했다.
역시 합리적인 추론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하늘 위 떠 있는 그것들은
비행이라기 보다는 그저 떠 있는 것처럼
아니, 떠 있다는 설명 보다는
그저 그 자리에 나타났다는 설명이 더 적합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토의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졌고
그보다 더 빠르게 사건은 끝이 났다.
불빛은 생성된 순서대로,
1번부터 5번 순서로
차례대로 사라졌다.
1번이 사라지고 몇 초 뒤 2번이 사라졌고
2번이 사라진 잠시 뒤 3번이 사라졌다.
이동하거나 날아간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라졌다.
마치 전등을 끄듯
불빛 다섯 개는 차례대로 하늘에서 모습을 감췄다.
사건의 시작과 끝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5번 불빛이 사라진 뒤에야 소리쳤다.
오징어배 불빛이 구름에 반사될 수도 있다는데
우리 학교는 경기남부 내륙에 있었다.
반사를 일으킬만한 구름도 없는 쾌청한 하늘에
배를 띄울 호수나 강도 없었다.
거리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보였던 그건
그러나 뚜렷한 주황색 불빛을 명확히 드러냈다 이내 없어졌다.
그러니까 그건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이거나,
아니면 우리 모두가 동시에 헛것을 봤거나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었다.
이밖의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우리는 아직도 이따금 모일 때마다
그때 우리가 본 것을 각자 정확하게 묘사한다.
마치 여럿이 하나의 꿈을 꾼 듯
그때 우리가 본 것의 근본을 추적한다.
누구도 우리가 그날 그 불빛을 본 경험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 경험은 우리 모두가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으로.
그 명백하고 단순한 사건에는
누군가의 기억이 왜곡될 틈 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건 대체 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