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5년 전, 대학을 휴학하고 일어난 일이다.
당시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구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는 형의 소개로 노래방에서 일하기로 했었다.
월급은 150에 테이블 수당 10%.
아무리 못벌어도 300은 버는 구조였다.
일 자체는 사실 너무 쉬웠다.
손님이 요청할 때마다 술과 안주만 넣으면 나머지는 실장님이 다 하는 시스템이었다.
물론 그것도 몇번 보다보면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사장님은 애초에 가게에 잘 안나오는 분이었고,
난 평소에 실장님과 둘이서만 일을 했다.
비가 많이 오는 어느 날이었다.
딱 봐도 손님이 거의 안 올 것 같은 그런 날.
실장님은 나에게 사장님 몰래 일찍 퇴근한다고 말했다.
조금 당황한 나는 그래도 되냐고 물었고, 실장님은 어차피 손님도 안 올거고 만약 온다 하더라도 너가 받을 수 있으니 안 될 거 없다고 말했다.
떨떠름한 나에게 실장님이 말했다. "사실 오늘 동창회가 있는데 밤일을 하면 그런 행사를 갈 수가 없어. 마침 오늘 비도 많이 오고 밖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없으니깐 몰래라도 갔다올려고."
그러고선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나에게 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사장님한텐 비밀로 할테니깐 잘 다녀오시라고 말했고, 실장님은 가방을 챙기고선 곧바로 나갔다.
가게에 혼자 있는 건 처음이었다.
원하는 tv채널을 틀고, 눈치 안보며 핸드폰을 하니
너무 편했다.
그렇게 편함이 졸음으로 바뀌었을 무렵에..
실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30분 정도 있다가 여자 손님 한명 갈건데, 몇번 왔던 사람이고 노래만 부르다 갈거니깐 특별히 할 건 없을거야. 만약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혼자 쉬는 것도 지루해지던 찰나에 손님이 온다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그렇게 5분,10분,20분이 지나던 때에 가게에 어떤 여자가 한명 들어왔다.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좀 빨리 왔네."
이 짧은 혼자만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방에 들어갔고, 나는 맥주 몇병과 마른안주를 챙기고 뒤이어 들어갔다.
여자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주 조용히 정자세로.
맥주와 마른안주를 놓으면서 나도 괜히 조심스레 물어봤다.
"노래는 일단 1시간만 부르시는 걸까요?"
내 질문에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그런 사람들이 가끔씩 있다.
취했지만 행동이나 자세에선 티가 안나는 사람들.
하지만 눈빛이나 말 하는걸 보면 술에 취한 걸 금방 알 수가 있다.
그 여자도 그런 케이스라 생각하고 카운터로 가서 노래방 기계에 1시간을 넣고 마저 보던 tv를 봤다.
그때였다.
실장님에게 문자가 왔다.
"OO아 아까 온다고 했던 사람 비가 너무 와서 그냥 다른 날에 오겠대. 3시까지 사람 안 오면 너도 빨리 퇴근해."
순간 난 무서움보단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곤 천천히 생각해봤다.
예약손님만 오라는 법은 없으니깐 저 여자는 있을 수 있다.
근데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은? 우리 가게는 우산꽂이가 안에 있는데 왜 거기엔 내 우산만 있는걸까?
그리고 들어간지 꽤 됐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노래 소리도 안나오고 있었다.
cctv를 확인해보자. 저 여자는 지금 취해서 내 말도 제대로 못 듣고 노래도 안 부르고 있으니깐 분명 입구나 복도에서 비틀거렸을 거다.
cctv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가게 입구와 엘리베이터 앞까진 계속 아무도 없다가 복도 계단에서 그 여자가 갑자기 나와서 바로 우리 가게로 들어온 것이다.
가게는 6층이었고 4층과 5층은 창고로만 쓰이는 시설이었다. 3층에서 굳이 계단으로 올 필요가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나는 계속 그럴 수 있다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 여자가 있는 방을 봤다.
카운터 바로 앞에 있는 방.
노래가 안나올 땐 미러볼이 작동을 안해서 조명이 일정하다.
방문은 어둡지만 반투명이어서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형상이 보인다.
그 여자는 문 바로 너머로 내가 하는 말과 행동들을
알려고 하는 것 마냥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재빨리 가게 밖으로 뛰쳐나와 편의점으로 갔다.
울다시피 실장님에게 전화를 건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 여자에 대해 말했고 실장님도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택시를 타고 가게 앞에로 왔다.
실장님은 기가 세고 무서움이 없는 사람이었다.
뒤에 바짝 붙어서 같이 가게로 들어간 우리는 동시에 얼어버렸다.
밖에는 그 여자의 발자국이 검게 남아있었고, 방 안에는 한 사람에게 나올 수 없는 양의 머리카락이 사방팔방 흩뿌려져있었다.
그 뒤로 실장님은 내가 일을 그만두기 전까진 나를 절대 혼자 두고 가게를 나가지 않으셨다.
덕분에 같은 일을 또 겪진 않았지만 일을 그만둔 지금도 나는 그 동네엔 놀러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