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공화국(Republic of Pirates)은 1706년부터 1718년까지 약 11년간 바하마의 뉴프로비던스섬 나소(New Providence, Nassau 현 바하마 수도)를 중심으로 잉글랜드계 사략선 출신 해적들이 형성한 느슨한 연맹을 일컫는 용어이다.
1696년, 사략선 출신 헨리 에브리(Henry Every)가 바하마 총독에게 엄청난 뇌물을 먹이고 약탈한 인도 무역선의 전리품을 물과 과일이 풍부하면서 사람이 적은 나소로 가져오면서 나소는 해적들의 안전한 기지로 자리 잡았다.
1703년과 1706년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의 공격 이후, 나소는 영국 사략선 출신 해적들에 의해 점령되며 완전한 무법지대가 되었다. 1713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나며 실업자가 된 많은 사략선원들이 나소로 몰려들어 해적 공화국을 더더욱 강화했다.
유명한 해적 벤자민 호르니골드(Benjamin Hornigold)와 헨리 제닝스(Henry Jennings)가 주요 지도자였으며, "검은수염" 에드워드 티치(Edward Teach)는 나중에 총독으로 선출되어 공화국을 이끌었다.
해적 공화국의 특징은 매우 민주적인 요소를 가진 사회였다는 것이다. 해적들은 그들의 일을 이른바 해적법(Pirate Code)에 따라 운영했으며, 이는 일종의 공화국을 구성했다는 주장의 근거였다.
이 법에 따라 해적들은 배를 민주적으로 운영하여 약탈품을 평등하게 나누고, 대중 투표로 선장을 선출하거나 해임했다. 아프리카인들도 선원으로서 평등한 일원이 될 수 있었으며, 혼혈인 몇몇이 해적 선장이 되기도 했다. 앤 보니(Anne Bonny)와 메리 리드(Mary Read)와 같은 소수의 여성 해적들도 존재했다.
1717년, 영국 국왕 조지 1세는 해적 소탕을 위해 우즈 로저스(Woodes Rogers)를 바하마 총독으로 임명하고 사면령을 내렸다. 1718년, 로저스가 영국 해군과 함께 나소에 도착해 사면을 제안하자, 호르니골드와 많은 해적들이 항복했다.
하지만 검은 수염과 찰스 베인(Charles Vane) 같은 일부 해적들은 저항을 이어갔고 결국 소탕되어 해적 공화국은 붕괴되고 다시 영국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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