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의 무슬림 역사가 이븐 알 아시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지의 주민들은 그들의 칼날아래 쓰러졌다. 프랑크인들은 일주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알 아크사 사원에서 그들은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였다.' 또 다른 기록은 이렇게 전합니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프랑크인들은 유태인들을 그들의 교회당에 몰아놓고 산 채로 태워 죽였다. 그들은 또한 성스런 유적들과 아브라함의 무덤을 파괴 하였다.'
한 십자군 병사도 '예루살렘의 큰 광장이나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머리나 팔다리가 산처럼 쌓여있고, 그들이 흘린 피가 온 시내에 발목 높이까지 차 흘러 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1365년까지 9차례의 대규모 출병으로 이어졌고 약 250년 동안 소아시아와 오리엔트 일대를 피로 물들였습니다. 십자군은 원정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현지에서 조달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원정로 주변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에는 약탈과 방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같은 신을 섬기는 그리스도교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었죠. 교황은 십자군의 모든 병사들에게 죄의 사면을 약속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 그는 1532년에 168명의 병력을 이끌고 잉카 제국에 도착했다. 엄청난 인파가 황제 아타우알파를 호위하며 광장을 메웠다. 스페인 선교사는 아타우알파에게 성서를 내밀며“예수 그리스도의 율법에 복종하고 스페인 왕의 지배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잉카 황제는 황당한 농담을 들었다는 듯 성서를 바닥에 던졌고, 이 순간 스페인 병사들이 일제히 총을 쏘며 닥치는 대로 학살을 시작했다.
비무장의 잉카 사람 7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황제 알타우알파는 포로로 잡혔다.
피사로의 잉카 정복. 그는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은 뒤 황금을 주면 풀어준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그를 살해했다.
아타우알파는 자기를 풀어주는 대가로 방 하나 - 가로 6.7미터, 세로 5.2미터, 높이 2.4미터 - 를 황금으로 가득 채워주겠다고 했다. 잉카 전 지역에서 5톤의 황금이 모였는데, 이는 유럽 전체의 1년 생산량보다 많은 분량이었다. 피사로는 금을 모두 챙긴 뒤 자기 손으로 아타우알파를 목 졸라 죽였다. 잉카 사람들의 저항은 계속됐지만 잔인한 진압으로 서서히 몰락했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상징인 마추피추의 유적은 아무 말이 없다.
천연두가 창궐하여 잉카 주민들이 죽어가자, 스페인 정복자들은 ‘신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마녀사냥, 과학 발목잡기 등등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2. 아인슈타인도 신을 인정했다?
다음은 아인슈타인이 인격신에 대해 한 말들입니다.
자기 창조물에게 상이나 벌을 내리고,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의지를 지닌 신을 상상하기란, 나에겐 불가능하다. 사람이 육체적인 죽음 뒤에도 계속 산다는 것 또한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나약한 사람이 두려움과 터무니없는 이기심에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내가 믿는 것', <포럼과 센추리>, 1930년)
나는 개인의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인격 신 같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종교심은, 실재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적은 일 속에 나타나는, 무한하게 뛰어난 정신에 대해 겸손하게 경탄하는 마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 우월한 이성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감정에 깊게 뿌리내린 이 신념이 나의 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콜로라도의 한 은행가에게 보낸 편지, 1927년 8월)
보시다시피 아인슈타인은 인격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즉, 그는 개독교인 또는 유대교인이 아니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이 생각하는 신이란 무엇일가요?
신에 대한 내 이해는, 알 수 있는 세계에 본성을 나타내는 우월한 지성이 존재한다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평범한 말로 하면 이것은 '범신론'(스피노자)이라 할 수 있다.
('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여, 1922년 12월 14일)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이해하자면 칼 세이건이 남긴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될 수 있겠군요.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을 말한다면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정서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3. 찰스 다윈이 창조론을 인정했다?
다음과 같은 주장은 레이디 호프라는 구라쟁이 여성의 증언에서 나온 말입니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은 인생의 말년을 매우 우울하게 보냈다. 다윈이 운명하기 몇 달 전 호프 부인이 병실에 누워 있는 그를 방문했다. 성경을 펼쳐 들고 있던 다윈에게 호프 부인이 물었다.
“지금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다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성경입니다. 아주 고귀한 생명의 책이지요.” 호프 부인은 창세기를 펼쳐 보이며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허구를 설명했다. 그러자 다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며 놀라운 고백을 했다.
“나는 참 미숙한 젊은이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접근했습니다. 진화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을 학문이 아닌 창조론과 적대되는 종교처럼 신봉하게 되었지요. 제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해 주십시오.”
진리는 죽음 앞에서 진위가 가려진다. 다윈은 죽음을 앞에 두고 창조론을 진리로 고백했다.
그런데 다윈의 자서전에서는 다르게 말을 합니다.
"... 그러나 나는 내 상상력이 억압되지 않는 여유를 주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설득할만큼 충분한 증거를 생각해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불신은 느리지만 완전하게 나를 집어삼켰다. 그 속도는 내가 고통을 느끼지 않을만큼 충분히 느렸고 또한 그 뒤 단 일초도 내 결론이 맞다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해서 누군가 기독교를 사실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 참으로 알기 어렵다 ; 만약 경전의 문구 그대로 불신자들(내 아버지와 형제들, 거의 모든 내 절친한 친구들을 포함하여)이 영원히 처벌 받는다면 말이다. 이것은 참으로 지독한 교리이다..."
그리고 찰스 다윈의 아내인 엠마 다윈 의 증언에 의하면, 찰스 다윈은 이미 60대때부터 여러 병에 시달려 자주 요양과 같이 누워서 안정을 취하고 70대가 넘으면서 혼수상태가 되는 일이 잦았는데 죽기 며칠전, 자신의 손을 잡으면서 단호하게 하던 말은 "나는 죽는 게 두렵지 않아"였습니다. 그녀는 죽을때까지 다윈이 자신의 연구를 부정하는 건 일절 없었고 당당하게 여겼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다윈이 유언으로 진화론을 부정했다는 이들은 고인을 모독하는 엉터리 주장이라고 분노했죠.
4. 무신론자들이 더 공격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지옥에 가라네요;;)
(지옥에서 평생 고통받으라는 말보다 더 심한 말이 이 세상에 있을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심한 험담을 하면서 무신론자들에게 덜 무례하게, 덜 폭력적으로 종교를 바라봐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모습을 요약한 만화입니다.
정말 예의바르죠?
5. 무신론이 사이비 단체(종교)다?
이 두 짤방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6.결론
여러분, 이렇듯 개독들은 자신들을 변호하기 위해 온갖 구라와 터무니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놈들입니다.
생각이 있다면 어느 쪽의 입장이 옳은지는 자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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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줄요약
1. 개독들은 구라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신념을 옹호한다.
2. 개독
3. 개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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