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건국대 S단과대 쪽에서 신입생 행사를 하던 도중 일부 선배가 신입생에게 '펠라X오' 등의 다분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언어를 몸으로 표현하도록 시키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후 이 학생이 건국대학교 대나무숲에 해당 사실을 제보하면서,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된다.
2.
S단과대는 물론 큰일난 상황이고, 각종 언론에서 십중포화를 받으면서 건국대의 다른 학생 단체들도 덩달아 같이 까이고 있던 상황. 예컨대 소위 말하는 '건국대 클라스 보소'와 같은 말이다.
3.
사태가 이렇게 심각해지자 건국대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회 및 각 학과 회장들이 모여 사과문을 자필로 쓰기로 결정한다. 그러던 중 문과대의 M과 회장이 사과문을 작성하였는데, 글씨체 논란이 번지고 있다.
사과문인데 글씨체가 저게 뭐냐, 휴먼희롱체냐?는 식.
4.
애초에 S단과대와 전혀 관련 없는 문과대 M과 입장에서는 사과할 포지션이 아니기도 했다. 연대책임이 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서 표면적으로 보면 사과문이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사과문이 아니다.
"S단과대에서 신입생 행사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과는 아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로서 일종의 책임을 느낀다. 우리 과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러이러한 노력을 할테니 다같이 조심하자."
정도의 사과문보다는 재발 방지 결의문, 재발 방지 대책문 정도로 볼 수 있겠다.
5.
문제가 여기서 발생하는데, 그 사과문이 글씨체가 특이하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보통 대자보에서 볼 수 있는 반듯반듯하고 가독성이 월등한 그런 글씨체는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보면 당황스러운 생각이 들 수 있는 글씨체이기까지 하다. 대자보와 매치가 되지 않는 글씨체이기 때문에.
6.
시작은 원래 기사가 아니었다. 네티즌이 그냥 건국대 내에서 왔다갔다 하다가, 대자보가 글씨체가 특이한 형태로 부착되어 있으니 그냥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것에 불과했다.
7.
건국대 신입생 행사 성추행 논란을 취재하던 지나가던 기레기들이 이를 보고, "오 시X 좋은 떡밥!"이라고 물어서 기사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8.
최초에 어떤 매체에서 떡밥을 터트렸는지 모르겠지만, 거의 모든 온라인 매체에서 이를 보도하면서 굉장히 프레임을 이상하게 잡았는데
ㄱ.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신입생 성추행 문제를 일으킨 S단과대가 올린 사과문처럼 보인다는 점
ㄴ. '희롱체'운운하며, 반성의 기미가 안보이고 희롱하려는 의도로 대자보를 작성했다고 하는 점
ㄷ. 건국대 학생 전체의 자질 논란으로 이은 점
무튼 학부 때 언론학 수업을 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멍청멍청열매를 먹고 기사를 쓴 것 같은 추태를 보인다.
9.
해당 기사들은 당연히 페이스북 등에서 일파만파 퍼지게 되고, 댓글 상황은 직접 찾아서 보는 것을 추천.
10.
처음에 올린 사진은 대자보의 글씨체. 두번째로 올린 사진은 해당 대자보를 작성한 사람의 평소 글씨체다.
대자보를 한 번이라도 작성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자보를 자필로 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딱 봐 전지 사이즈에 글씨를 빼곡히 적어야 하는 것이니, 내용 구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작성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글씨체를 보면 주변에서 보기 흔한 글씨체는 아니지만, 한 눈에 봐도 이 사람이 정성들여 쓴 글씨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자보가 정자로 또박또박 쓰여졌다면 베스트였겠지만, 최소한 날림으로 썼다든가 일부러 희롱 목적으로 썼다든가 하는 지적은 오류.
11.
사진으로 보면 저렇게 축소되어서 나와 가독성이 급감하지만, 전지 사이즈, 실제 대자보로 보면 글씨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해당 학과 관련 건대생들이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라 조금씩 걸러들을 필요는 있지만, 최소한 온라인에서 보는 것처럼 '읽기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면 될 듯.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해당 대자보를 쓴 사람이 대자보라면 당연히 대자보의 목적에 맞게 정자로 또박또박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따라서 평소 글씨체가 저렇더라도 대자보에는 정자로 쓰려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그 사실을 간과하고 굳이 글씨를 저렇게 쓴 것은 명백한 잘못"
라는 논리로 나간다면(틀린 논리라고 볼 수는 없다.)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다만 담론을 거기까지 확장시키면 정말 복잡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12.
관련 대자보는 건대에 수십 장이 붙어있다.
모든 단과대 모든 과 회장들이 자필로 작성하기로 결의한 상황에서 컴퓨터로 출력하거나 자기 글씨체가 저렇다고 대필을 쓰기도 애매한 상황.
요컨대 주어진 조건에 충실하게 맞춰서 작성된 대자보다.
허핑턴포스트 아니면 한겨레였는데, 이 두 온라인 매체 중 하나가 페북에 관련 기사를 올리면서 부제로 "컴퓨터로 쓰는 방법도 있었다."라고 같이 올렸었다. 둘 중 어디였는지는 스크롤 한참 내려가며 찾다가 힘들어서 포기. 양해 바람.
->제보에 따르면 한겨레라고 한다.
무튼 중요한 것은
"컴퓨터로 쓰는 방법도 있었다."라는 점을 최소 수만 명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기사로 게시했다는 점은 기자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취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방증한다.
건대 학생들이 등신인가?
컴퓨터로 써서 플로터로 뽑아 출력하면 완전 편한데
그걸 모르고 자필로 써서 저런 결과를 가져오니
건대생들은 미개하군ㅉㅉ
이걸 강조하고 싶었던건가?
'각 과 회장이 직접 자필로 작성해야 했던 상황'이라는 사실에 대해 최소한의 취재조차 하지 않고 기사를 써제끼는 기자님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13.
기본적으로 미디어를 크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역시 오늘도 한 건 하고 가시는 미디어들을 보면서 조소를 머금고 간다.
위 사진은 '문제의 대자보'와
해당 대자보 작성자 페이스북에 2015년 5월에 올라와있는 글. (수정 이력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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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더 생각을 했다면 누군가 대자보를 붙이기전에 이렇지 않을까 지적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베스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