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절 WHO가 인정한 먹는 낙태약 ‘미프진’ 합법화 길 쉽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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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
2021-10-29 14:29:13 (4년 전) / READ : 1155
식약처, 미프진 허가여부 논의 탄력…‘헌법불합치’ 결정에 합법화 기틀 마련낙태죄 폐지 결정 이후 현대약품 '엘라원정' 주목…OTC 전환 ‘유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헙치’ 선고를 내린 가운데 의약품 시장을 향해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건당국이 미프진 등 불법 낙태약의 허가를 본격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낙태 관련 의약품 시장에서 일종의 ‘대격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미프진은 프랑스 루쎌 위클라프에서 1980년도에 개발한 경구용 임신중절약으로 미페프리스톤의 브랜드명이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61개국에서는 전문의약품으로 처방된다. 임신 초기인 7~8주까지 복용할 수 있고 임신을 유지하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중지시킨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미프진을 필수의약품에 등록했다.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미프진은 유통 자체가 불법이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의약품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일부 여성들이 암암리에 온라인상에서 미프진을 구입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에 따르면 ‘의약품 온라인 불법판매 적발실적’ 중 가장 많은 증가율을 보인 의약품은 미프진과 같은 낙태약이었다. 낙태약 불법 판매 건수는 2016년 193건이었지만 2017년에는 1,144건으로 6배 가량 급증했다.하지만 ‘불법’이 ‘합법’으로 바뀔 변수가 생겼다. 헌재는 지난 11일 임신 초기의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 처벌하는 낙태죄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낙태죄가 6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직후, ‘미프진’ 도입 논의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는 까닭이다.실제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은 “정부와 국회는 헌법불합치 결정이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절권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미프진 도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제약회사는 미프진을 허가 받기 위한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호를 위해 낙태죄가 폐지된 만큼, 미프진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다.약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낙태약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된 이후 착상을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며 “호르몬으로 조절해서 실질적으로 생명체에 대한 낙태를 유도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지 않고 도의적 문제도 크다”라고 강조했다.하지만 보건당국의 분위기는 이전과 달려졌다. 12일 팜뉴스 취재 결과, 식약처는 헌재 결정 직후 미프진에 대한 허가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미프진은 자기낙태죄나 의사 낙태죄에 반해서 허가를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금지됐던 것”이라며 “이제는 다르다.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미프진에 대한 심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전했다.이는 미프진 도입으로 국내 낙태약 시장의 ‘빗장’이 풀릴 수 있다는 뜻.단순히 낙태약뿐만이 아니다. 낙태죄 폐지는 사후(응급) 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문제에 대해서도 불을 당기고 있는 모양새다. 임진형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약준모) 회장은 “현재 사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이 아니다. 그동안 여성들이 응급 피임을 위해 의사를 찾아 성관계 유무를 보고해왔던 이유다”라며 “하지만 헌재의 결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가 확인된 만큼, 일반의약품 전환 논의도 화두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밝혔다.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2년과 2016년에 걸쳐 성관계 이후 의사 처방을 받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의료계와 종교계의 반발에 부딪쳐 최종결정을 유보했다. 현행법이 낙태죄를 처벌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이들의 반대를 돌파해낼 명분이 약했다.하지만 헌재 결정 이후 보건 당국 내부에서도 변화된 분위기가 엿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위헌 판결이 아니라 다소 조심스럽다”면서도 “일단 낙태약 허가 논의가 우선이다. 하지만 복지부와 국회가 임신 기간 등 전반적인 틀을 정해주면, 장기적으로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 문제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현재 국내 사후피임약 시장의 선두주자는 현대약품의 '엘라원정'이다. 현대약품 측이 보건당국을 향해 상당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배경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일반의약품 전환을 예상한다”며 “다른 나라는 사후피임약을 OTC(일반의약품)로 판매하는데 국내는 ETC(전문의약품)로 묶어둔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반의약품으로 바뀌면 시장판도가 출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일각에서는 향후 제네릭 경쟁이 불붙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피임약 시장은 현재 규모가 크지 않다. 사전피임약 시장에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철수하고 있는 이유”라며 “하지만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얘기가 다르다. 변화가 일어나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면서 제네릭이 우후죽순 생길 수 있다. 시장 파이가 급격히 커지면서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열린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입장문 발표 간담회에서 나영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이 입장문을 읽고 있다. 위원장 오른쪽으로 문설희 공동집행위원장, 제이 공동집행위원장, 류민희 낙태죄위헌소송 공동대리인단 변호사, 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연합뉴스
◇WHO “임신 초기 가장 안전한 낙태 방법”
프랑스 제약사가 개발한 미프진은 낙태가 합법인 미국 등에서 전문의의 처방에 따라 초기 임신중절에 쓰이는 약이다. 생리통 정도의 통증과 출혈 정도를 동반하고 여타 부작용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부터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하면서 6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불법 의약품 신세다. 그렇지만 수술 대신 약을 먹기만 하면 낙태가 가능하다는 점으로 인해 지금도 온라인 등에서 수입 판매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서도 2017년 낙태 경험자 중 9.8%(74명)가 미프진 등을 통한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낙태유도약 적발건수도 2014년 176건에서 2017년 1,144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헌재에서 낙태가 가능한 기간으로 임신 22주 내외를 제시하면서 비교적 안전한 임신 초기의 낙태 방법으로 알려진 미프진 합법화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오정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산부인과 전문의는 “WHO의 ‘안전한 임신중지 가이드라인’에서 임신 초기의 가장 안전한 낙태 방법으로 권고할 정도로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됐다”며 미프진 도입을 촉구했다. 약사단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에서도 최근 논평에서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여성의 안전한 중절권으로 실현되도록 미프진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일부 의약계에서는 해당 약물을 잘못된 방법으로 복용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가짜약을 사용하는 부작용 때문이라도 합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난해 약물사용자의 72%(53명)은 유산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병원신세를 졌는데 상당수가 가짜약을 복용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 법제이사는 “피가 멈추지 않거나 고인 피가 갑작스럽게 쏟아지며 경련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도 있어 전문의의 처방과 관리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법 개정 이후에나 논의”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미프진 도입에 관한 제대로 된 논의는 첫발조차 떼지 못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기부금을 받고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에 미프진을 보내주는 네덜란드 소재 웹사이트 ‘위민온웹’이 법 위반이라며 국내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국가기관 차원에서 안전성 검사를 진행한 바도 없다. 식약처는 국내에서 해당 약품을 수입하려는 업자가 요청하거나 혹은 제조사가 의뢰를 해야 안전성 검토에 나선다. 낙태죄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있었으나 아직 관련 법 개정으로 이어진 게 아닌 만큼 미프진의 도입은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2020년 말까지 법 개정을 하도록 국회에 주문한 상태다. 김상봉 식약처 의약정책품과장은 “법 개정 전까지는 현행법이 유지되는 만큼, 불법 제품의 허가 신청을 심사할 수는 없다”면서 “법 개정 후 해당 의약품의 수입업체 또는 제조업체가 심사를 신청하면 그때야 이야기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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