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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ck here if you'd like to learn how. [스압] 박정희 친일 의혹, 그 더러운 진실 : 정치/이슈 - 와이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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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박정희 친일 의혹, 그 더러운 진실 [5]

Minerals : 66,915 / Level : 일병 일병
2014-04-19 12:33:59 (11년 전) / READ : 2593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hXD8Y

     

     

     

     

     

    세상이 썩어가고 있습니다.

     

     

     

    영웅은 개새끼로 전락했고

    개새끼는 영웅으로 둔갑했습니다.

     

     

     

    저는 항상 진실만을 말할것을 약속합니다.

     

     

     

     

     

     

     

     

     

     

     

    이 글은 우리나라에서 위인 박정희를 폄하하는 세력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실은 글입니다.

    글이 매우 길기 떄문에 시간내서 보시기를 권장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박정희를 폄하하는 것에 반박하는 방법보다

    박정희를 폄하하는 세력의 실체를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이미 박정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깔려 있으므로

    그것부터 차근차근 반박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긴글이라면 질색이신 좌좀새끼들을 위해서 시작부터 종지부를 찍어드리겠습니다.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친일파 입증 불가"

    ▲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만주군 혈서지원 기사가 실린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 사본. 해당 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밝히는 등 일제에 적극적인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붉은색 원 안의 사진의 인물이 박 전 대통령이다(자료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에 지원하며 일본제국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공개한 가운데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친일진상규명위)'가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친일진상규명위는 오는 30일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지만, 민간연구기관과 정부기관이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 전혀 상반된 평가를 내린 셈이어서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친일진상규명위의 핵심관계자는 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20일경 발간되는 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핵심관계자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를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자료가 없어서 심의를 보류한 것이지, '박 전 대통령은 영원히 친일파가 아니다'라고 못 박은 건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번에 공개한 자료를 우리는 그동안 입수하지 못했다"며 "새로운 자료가 나왔으니 후대의 역사가들이 다시 평가해주길 바란다"고 판단을 유보했다.

    관계자는 "새로운 자료가 나왔으니 다시 평가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위원회의 보고서는 벌써 인쇄가 들어갔고, 지금 와서 새롭게 연구하고 추가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결국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후대의 평가에 맡긴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린 셈이다. 

    친일진상규명위는 2004년 12월 29일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개정법률'이 국회에서 의결됨에 따라 이듬해 5월 31일 발족했다.

    친일진상규명위의 설치 목적은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 위원회의 기능은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 선정,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및 결정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국내·외 자료의 수집 및 분석 ▲조사보고서 작성·발간, 사료편찬 및 사료관 건립 등이다.

    이들의 활동기간은 "구성을 마친 날부터 4년(6개월 연장가능)"으로 규정돼 있어 오는 11월 30일 위원회는 정식 해산된다.

    친일진상규명위의 활동 근거가 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친일반민족행위'를 ▲국권을 지키기 위하여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한 행위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단체 또는 개인을 강제해산시키거나 감금·폭행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 단체 또는 개인의 활동을 방해한 행위 ▲독립운동 또는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및 그 가족을 살상·처형·학대 또는 체포하거나 이를 지시 또는 명령한 행위 등 총 20개 항으로 나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을 두고 봤을 때, 혈서로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하고 만주군에 입대한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과연 친일이냐 아니냐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54890

     

    노무현 직속 친일진상규명위 "박정희 친일 근거 없다"
    등록날짜 [ 2012년12월04일 22시52분 ]
     

    [핫뉴스=이승훈 기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의 “다카키 마사오” 발언이 화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충성 혈서를 쓰고 친일 행위를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허위 사실로 드러나 이 후보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이 후보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에서 열린 대통령 후보 1차 TV토론에 출연해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 된 다카키 마사오, 한국 이름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하고 유신독재 철권을 휘둘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뿌리는 속일 수 없지 않겠냐”며 박 후보를 공격했다.
     
    이 후보의 발언은 박 후보의 부친인 박 전 대통령이 과거 만주군에 지원하기 위해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을 했으며 혈서를 써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오랜 의혹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허위 사실이다. 2005년, 즉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기구로 발족했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친일진상규명위)’는 지난 2009년 4년 간의 조사를 마치면서 “박 전 대통령을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2009년 11월 6일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친일진상규명위의 핵심관계자는 해당 매체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은 친일파로 분류되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많은 논의를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위를 입증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종북단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관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자 <만주신문> 기사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만주군관학교 합격 발표일자(1939년 2월 24일)와 혈서 관련 기사(3월 31일)의 순서가 모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사장됐다.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또는 근거 없는 비방은 공직선거법 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및 동법 제251조(후보자비방죄)를 위반하는 행위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후보 처벌 여부에 대해 자세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핫뉴스 이승훈 기자 (cellines@hanmail.net)

     

    http://hot-news.kr/detail.php?number=10468&thread=27r01

     

     결론 : 이에 종북단체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기관 ‘민족문제연구소’가

    1939년자 <만주신문> 기사를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만주군관학교 합격 발표일자(1939년 2월 24일)와 혈서 관련 기사(3월 31일)의 순서가 모순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실상 사장됐다.

     

     

     

     

     

    근거라곤 민문연에서 들이민 만주신문 하나뿐인데 기사에도 나왔다시피

    앞뒤 내용이 하나도 맞질 않아 학계에선 이미 사료로 취급할수 없다 결론

     

     노무현 정부 시절 노무현은 박근혜를 공격하기 위해

    이미 사학적으로 끝난 사실인 박정희 친일 논란을 다시 부활시켜

    친일진상규명위라는 좌파사학자들 모임을 자신의 직속 기관으로 두어 조사하게 했습니다.

     

    당연히 결과는 "박정희 대통령은 친일이라 할수없다" 였고,

    물론 언제나 그랬듯이 그들에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지요.

     

     

     

     

     

    1. 박정희 대통령의 교사 시절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문경 심상소학교 교사였습니다.

     

    그 시절 학생들은 박정희를 어떻게 생각했는데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정순옥(鄭順玉)의 말)

     


    어느 일요일, 동무들 몇 명과 함께 새로 오신 선생님(박정희)의 하숙 집을 찾아갔다.
    호기심을 가지고 선생님의 방을 살펴봤더니 책상 위에 커다란 사진액자가 걸려 있는데
    배가 불룩 나오고 앞가슴 양편에 단추가 죽 달려 있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은"영웅 나폴레옹"이라고 하시며 나폴레옹에 대하여 자세히 이야기해 주셨다.

     

     


    4월 어느날 소풍을 가게 되어 고운 옷으로 갈아 입고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떠났다.
    선생님은 등산복 차림에 어깨엔 나팔을 메고 길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우리들이 장난을 치거나 줄이 흐트러지면 한 대씩 때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고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깊은 물에 빠져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박 선생님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참 만에 그 아이를 건져내어 인공호흡을 시키는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 동안 둑에서 발만 둥둥 구르고 계셨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박 선생님과 일본인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놀게 되었다.
    그때 일본이 선생 한 분이 조선 여성은 예의가 없다느니, 젖가슴을 다 드러내고 물동이를 이고 다니느니 하며
    우리 나라 여자의 흉을 보았다. 이에 박 선생님은 우리들에게"너희들 저 말 잘 새겨 들어라.
    가난하고 무지하면 남에게 멸시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들끼리 있을 때는 절대로 일본말을 쓰지 말고 조선말을 쓰자"고 했을 때
    우리는 철없이"조선말 쓰면 퇴학 당하는데 왜 그러세요"하고 반박한 기억이난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을 가장 존경하며 따랐다.
     

     

     

    (주영배(周永培)의 말)

     

     


    1939년, 내가 보통학교 5학년일 때 조선어 과목을 가르치며 박 선생님께서는 "이 글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었다.
    가정실습 때는 문경에서 12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산골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그 뒷모습이 산록으로 숨어들 때는 울고 싶도록 감사했다.
     

     

     


    (전경숙(全慶淑)의 말)

    박 선생님은 우리 집으로 하숙을 옮겼다. 그리하여 우리 어머니를"모친"이라고 불렀다.
    식사는 가리는 것이 없었고 복장은 단정하였으며 출근은 빨랐다.
    언제나 숙제를 내주시고 철저히 검사하여 평가를 해주셨다.
    월요일마다 공책을 점검하시고 글씨를 바르게 쓰도록 지도해 주시고 일기와 편지쓰기를 장려하였다.
    5학년 20명과 2학년40명을 한교실에서 복식수업(複式授業)을 하면서도 질서가 정연했다. 
     

     

     

    말은 간단명료하였으며 청소에 신경을 쓰고 유리창, 천정의 거미줄, 화장실 청소를 철저히 시켰다.
    그리하여 청소도구를 완비하여 가지런히 정리 정돈되도록 하였으며
    책상의 줄이 비뚤어지고 환경이 지저분한 것을 매우 싫어하셨다. 

    위인전 같은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고 "너희들도 이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셨다.
    노래와 나팔을 좋아하시는 선생님은 악대와 합창반도 조직하여 각종 행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가을운동회 때는 박 선생이 기마전, 기둥 넘기기, 공바구니 터뜨리기,텀블링을 지도하여
    관중들의 박수를 받던 기억이 생생하다.

     

     


    가을소풍 때 문경새재를 갔을 적에는 제1관문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시고 점심을 싸오지 못한 학생은
    선생님이 도시락을 나누어 주시던일, 발목을 삐어 걸음이 곤란한 학생을 업고 산길을 내려오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이영태(李永泰)의 말)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 <황성옛터><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조국이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일본인 교사들과는 자주 싸우는 광경을 보았다.
    하루는 수석교사였던 일본인 야나자와(柳澤)와 말다툼 끝에 그가 <조선놈>이라고 하자 의자를 집어던진 일도 있었다.

    그 당시 일본인 순사 중에 오가와(小川)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와 자주 논쟁을 벌였다.
    박 선생님이 만주군관학교에서 군도를 차고 문경에 왔을 때 오가와(小川)가 무어라 했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전도인(錢道寅)의 말)

    하루는 박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혼자 사무를 보고 있으면서 나를 불렀다. 그때 일본인 청부업자 한 명이 담배를 문 채 교무실 안으로 들어와 박 선생님에게 "오이! 교장 계신가?"하고 물었다. 
     

     

     

    선생님은 일본인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 아무 대꾸가 없었다. 그 사람이 재차 똑같이 묻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일본인들이 부르짖는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진실이라면 당신이 내게 그러한 언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일등 국민으로 자처하고 싶거든 우선 교양 있는 국민이 되야지,
    담배를 물고 교무실에 들어온 것만 해도 무례하기 그지없는데 언동까지 몰상식한 인간이라면
    나는 너같은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어서 나가봐!"

     

    하고 말한 적이 있다.




    (황실광의 말)

    박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 오셨을 때 나는 6학년 반장을 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역사, 시조도 가르치고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하여 위인전을 많이 읽도록 하셨다.

    박 선생님이 일제치하에서 우리글을 가르치기 위해 애쓰신 것은 분명하다.
    학생 한 사람을 복도에 세워놓고 일본인 교장이나 교사가 오지 않나 망을 보게 했다.

    그때 한 남학생이 천황의 사진에다 장난을 하고 교무실에 불려가 혼이 난 일이 있다.
    천황의 눈을 연필로 까맣게 지우는 따위의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우리들에게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것은
    박 선생님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선생님의 별명은<호랑이 선생님>이었으나 자주 부르지는 못했다.
    나는 졸업 때 앨범을 선물로 받았다.

     

     

     

    이순희의 말

     

     

    일어 상용(常用)으로 학교에서 조선말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박정희는 수업시간에 몰래 조선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한번은 둥근 원을 그려 그 속에 가로로 물결무늬를 그려 넣고는 
    “보기만 해! 이게 조선 국기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림을 찢어버렸는데 한 학생이 다른 반에 가서 자랑한 것이 
    일본인 교사 귀에 들어가 ‘불온교사’로 찍혔다는 것이다.



    애국자愛國者

    (인용) 우리 민족이 해방된지 1년 하고도 두어달 지난 1946년 가을이었다. 아직 대한민국 건국 이전이지만 국토 경비를 위해 미 군정청이 창설한 태능 육군사관학교(아직 4년제 육사가 시작되기 전의 단기과정)에서는 제 2기생 교육 중이었다. 사관학교장은 이치업 육군 대위였는데, 그는 명색이 국군의 간성을 교육하는 육사교장이면서도 자신은 물론 주변의 누구도 애국가를 알지 못해 답답한 끝에 아이디어를 냈다. 생도들에 애국가 가사를 쓰라는 문제를 내고 시험을 치루었던 것이다. 생도 전원이 백지 답안을 제출하였는데 딱 한 명의 생도가 애국가 4절 가사를 정확하게 써냈다. 그가 바로 박정희 생도였다. 

    이치업 교장이 박정희 생도를 불러 애국가를 어디서 알았느냐고 물었더니 박정희는 대구사범 졸업 후 교편을 잡는 동안 학생들에게 몰래 애국가를 가르쳤다고 대답했다. 가사는 현재와 같으나 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이별의 노래)'을 차용해 불렀을 때였다. 안익태 곡의 애국가는 그 뒤 일이다. 이렇게 해서 육사에서 비로소 애국가가 불려지게 됐다. (이치업.스티븐 엠.딸프 공저 '번개장군' : 2001 원민) 

    이치업 당시 교장의 이 증언은 문경의 그의 제자들의 증언으로 확증된다. 이영태(李永泰)는 스승 박정희가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와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음악시간에는<황성옛터> <심청의 노래> 등을 가르쳐 주시고 기타도 쳐주셨다"고 증언한다. 그는 이낙선(5·16군사쿠데타 직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비서관)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은사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조선어 시간에는 우리 나라의 태극기를 가르쳐주셨고 복도에 입초를 세우시고 우리 나라 역사를 가르쳐주셨으며 일본인 교사들과는 지금 생각하면 조국 없는 서러움 때문인지 자주 싸우시는 것을 목격했다’ (조갑제의 ‘박정희’ 79쪽).

     

    http://bhee639.blog.me/90188656127
      

     

     

     

     

    2. 만주군관학교의 박정희

     

    좌파들의 주장 중에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들어갔으니 친일파라고 합니다.

    지청천 장군, 백선엽 장군, 김수환 추기경 이런 사람들도 일본군 출신이었으며

    워싱턴 대통령, 장개석, 간디도 영국군 출신이었습니다.

     

    일본군에 복무했다고 다 친일파로 모는 게 타당한 걸까요?

     

     

    이건 '김백일'이라고 흥남철수작전을 지휘한 다른 분에 대한 얘기지만,

    일본군에 있었다고 친일이면

    워싱턴, 간디도 친영파인가요?

     

    국공합작 하여 항일항쟁 주도한 장개석도 여러분 말대로라면 친일파겠네요.

     

     

     

    일본을 그토록 혐오했던 이우 황자 역시 일본 육사 출신이니까 친일이네요.

     

     

     

    일본군 장교였던 김수환 추기경도 친일파였겠군요?

     

    그리고 '일본군 복무하면 닥치고 친일' 이 논리대로라면 김대중 대통령도 친일 아닌가요?

     

     

    목포상고 졸업앨범입니다.

    빨간 원 안에 있는 사람이 목포상고 학생회장이었던 김대중입니다.

     

    고등학생이 사회 유지로 여겨지던 시대에 목포상고 회장은 그 지역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바로 그때에

    김대중이 몸소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 공연을 하며 졸업 사진을 찍은 것입니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씨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습니다.

    즉, 김대중은 친일파 여운형의 추종자였으며,

    일본군복을 입고 대일본 제국을 위해 나가서 싸우자며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했던 그 행동 대장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당시 일본군복입니다. 김대중이 입고 있는 것과 100% 일치하죠.

    학도병이라도 일본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황제로부터 봉급을 받는 군인은 누구든 반드시 저 복장 차림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가 친일파라는 기준을 갖고 본다면

    김대중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한 친일파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짤 두 개만 더 첨부할게요.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서 학생 대표로 축사를 읽었다는 말이 있는데

     

     

     

    생도 대표 이름 잘 보세요.

     

    결론. 개구라.

     

     

     

     

    3. 만주국과 일본

     

    그리고 박정희는 일본 육사가 아닌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였는데,

    만주국군이 일본군이었다면

     

    이런 불온교사 경력의 박정희는 신원조회에 걸려 절대로 사관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고, 
    입학 후에도 곧 입학이 취소되었겠죠.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만주국은 일본의 신원조회망을 벗어난 제3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만주군이었던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의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만주군관학교에서 두 차례나 입학을 거부했다고 하는데,

    박정희를 일본 황국신민화 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에 보낸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전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만약 일본이 박정희가 일본군이 되기를 원했다면

    무엇하러 나이 트집을 잡아 두차례씩이나 불합격시켰을까요?

    어차피 충성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건데요.

     

    박정희는 1940년 2월 불온교사로 찍혀 문경의 교사직에서 면직되었고,

    바로 그 다음 달, 즉 1940년 4월 4일에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3수하려면 2~3년 걸리는데 어떻게 3월 한 달 사이에 3수할 수 있었을까요?
     

     

    만주국은 일본이 만든 나라 맞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만주군을 일본군으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만주국은 엄연한 독립국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무지한 사람들은 만주국에서 근무하면 친일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대 사람들에게는 행정상뿐만 아니라 정서상으로도 만주국이 일본과 혼동될 수 없음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만약 만주국이 일본 통치권 안에 있었으면 만주국 경찰로 복무했던 광복군 대장의 조카 김일련은 일본 신원조회에 걸렸을 것입니다.

     

    발해의 유민 후예들이 거주하던 간도는 우리땅임을 알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조선인이 만주국 건국에 동참하면 친일파라는 정서가 전혀 없었습니다.

     

     

    위는 일본 인명사전에 기록된 박정희의 경력입니다.

    중앙의 19-7이라는 연대 표시 바로 옆에 박정희는 "만주국군 소위"였음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국군이었디면 일본군(日本軍)이라고 명기하였겠죠. 그러나 외국군이었기에 만주국군이라고 한 겁니다.

     

    일본인들이 박정희는 일본군이 아니었다는데,
    도대체 왜 한국의 어떤 무지한 이들은 박정희가 일본군이었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나요?

    박정희는 유학생이었으며, 유학생은 일본군 장교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육사에도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유학생이 옵니다.

    만약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 육사에 유학했던 아프리카 군인을 한국군이라 부르면

    우리가 무슨 생각이 들까요? 마찬가지인 겁니다.

     

    위에 네째 줄에 보면 "일본육군사관학교 유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일본육사에 입학한 것이 아니라, 포병학교 과정을 일년간 이수한 겁니다. 
     

     

     

    1940년대의 일본 육사 유학생반을 보면 유학생들은 일본사관생도 제복도 입지 않았을 뿐더러

    수업도 유학생들끼리 따로 받았습니다.

     

    위의 박정희 학력에 57기생 상당으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 김대중이고 뭐시고... 워싱턴 장제스는 그렇다 치자. 박정희는 혈서까지 쓴 X끼잖아' 하겠죠.

     

    자, 좋아요. 그럼 이제 박정희 혈서 들어갑니다.

     

     

    4. 박정희 혈서 진위여부 논란

     

    여러분이 좋아하는 친일혈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939년 3월 31일 만주일보에 공개되었다네요.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보면

    문경 심상소학교 재직 당시 동료교사였던 유증선 씨의 증언이 나옵니다.

     

    "1938년 5월 숙직실에서 만주군관학교 입학적령 20세에 걸려 고민하는 박정희에게 유증선이 충고하길

    나이도 한 살 정도 줄이고 편지와 함께 혈서를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는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즉석에서 면도칼로 새끼 손가락을 그어

    '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는 혈서를 바쳤고 만주신문에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①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이 20세라는 부분과

    ②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말한 부분입니다.

     

    일단, 만주군관학교 입학제한 연령은 몇 살이었을까요?

    관련하여 쇼와 14년에 작성된

    『陸軍預科士官學校生徒、陸軍經理學校予科生徒及陸軍幼年學校生徒召募告示の件』이라는 일제의 공문서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보면 응시자격 연령이 16세 이상 ~ 20세 미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증선이 증언한 바 당시 1938년이면 박정희 나이가 22세일때인데,

    한 두살 낮춘다고 응시자격이 생겼을리가 없겠죠.

     

    이쯤에서 유증선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게다가 중앙일보 지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상유 선생의 지적처럼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시험을 쳤기 때문에,

    그로부터 1년 5개월 전에 혈서를 보냈다는 얘기는 여러모로 의심이 가네요.

     

    당시에는 모집여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1939년에야 만주군관학교 설립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기 때문이죠.

     

    결정적으로 유증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재학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위의 제한연령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므로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 믿으실까봐 증거자료 첨부합니다.

     

     

     

    (출처는 앞의 왜말 문서와 같습니다)

     

    두번째로 나이를 한 살 줄였다고 한 부분을 보겠습니다.

     

    1945년 일제가 작성한『임시육군군인군속계』상에 나타난 박정희의 생년월일을 보면

    대정 6년(1917년) 9월 30일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실제  음력 생일과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박정희는 나이를 고친 적이 없는 거죠.

     

     

    혈서 위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앞서 혈서가 공개된 신문이 1939년 만주일보라고 했는데

    만주일보는 1935년에 폐간되었다는 게 밝혀졌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입니다.

     

     

    이에 당황한 민족문제연구소(박정희 혈서 떡밥을 공개한 데)는

    만주일보가 아닌 만주신문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알 거면 제대로 알고 까시든가...

     

    게다가 만주신문은 만주어와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던 만주국 국민들도 전혀 안 보는 신문이었으며, 일본인들도 안 보는 신문이었습니다.

     

    더 웃기는 건 1939년 2월 24일에 이미 만주군관학교 합격자가 발표되었는데

    왜 기사는 1939년 3월 31일에 나왔을까요?

     

    여러분이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혈서 이야기는 이것만 하고 끝내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의 혈서지원설을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만주일보 사본의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
    그리고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쓴 종이와 함께
    동봉된 등기로 도착해 담당자를 감격시켰다."
     

     

    징모를 말그대로 풀이하면 징집과 모병을 뜻하는데,

    만주국이 국병법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한 것은 1941년입니다.

    징모라는 말은 상당히 어폐가 있는 것이지요.

    만주국 발행 정부공보를 아무리 뒤져봐도 징모과는 찾을 수 없었다.

     


    박정희가 혈서를 썼다는 1938년 9월 무렵 만주군관학교의 모태인 중앙육군훈련처의 군관후보생 모집공고를 보면

     

    치안부 군형과(軍衡課)에서 채용공고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제출한 신문기사의 진위가 또한번 되네요.

     

    징모과라는 부서는 있지도 않은 유령부서이며,

    징병제를 실시할 무렵에 정모과라는 부서가 존재했지만 이 또한 징모과와는 엄연히 다른 부서입니다.

     

     

    분명 '재신경칙위치안부군형과'라고 되어 있네요.

    존재하지 않는 부서에 혈서를 제출한 박정희의 정체는?

     

     

     

     

    추가내용

     

     

     

     

     

     

     

     

     

     

     

     

     

    1939년 박정희 혈서에 대한 만주일보 기사를 갖고 좌빨새끼들이 혈서 혈서 드립을 치기 시작함

    그러나, 이 만주일보라는 신문사는 1935년에 이미 폐간되어 없어진 신문.

     

     

    게다가 혈서에 대한 증거물은 이 조작기사 말고는 쥐 코딱지 만큼 없음 대충 정리해봅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만주일보에서 박정희 혈서 기사가 실렸다고 5년동안 주장.

    근데 만주일보는 1935년에 폐간 으잌ㅋㅋㅋ

    뻥카가 들통나자 민족문제연구소는 만주일보가 아니라 만주신문이라고 말을 바꿈.

    근데 만주신문은 일본에서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만주 기관지임 + 만주신문은 창간호도 없음.

    잉?? 근데 일본 국회 도서관 마이크로필름에서 기사 발견.


    좌좀들은 만주신문이 찌라시면 일본 국회 도서관에 찌라시도 있냐면서 극딜 시전



     여기서 저 신문의 이상한 점을 찾자면??

     

     

     

    1. 신문 원본이 없음.

     

    2. 조작된 복사본 한장만 있음.

     

    3. 박정의 친일혈서 기사 부분만 어떻게 딱 하나만 있을수 있을까?

     

    4. 그 당시엔 쓰지 않던 현대 일본어 표현으로 적혀있는걸로 보아

    일본어를 완벽하게 통달하지 않은 사람이 쓴것이라고 확인이 되고 있음.

     

    5. 아까도 말했듯이 애초부터 날짜가 맞지가 않음.

     

    혈서를 썻다고 한 날짜는 3월 29일..

     

    근데 실제로

     

    학교의 합격자 발표는 2월 24일..

     

     

     

     

    박정희가 친일 혈서를 썻다는 진실된 근거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혈서 사진도 혈서 목격자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박정희가 입학한 학교는 만주육군 사관학교였는데

    만주국군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습니다.

    (2년후에 일본육군사관학교로 편입)

     

    박정희 혈서의 진실 여부를 가지고 논쟁하는 자체가 악질 좌파들의 박정희 죽이기 프레임에 갇히는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황국 신민으로 길러졌고 고등교육을 받으려면 충성스런 황국 신민 행세를 해야 가능한 시대인데,

    그 이후 실질적인 친일행적이 있나 없나를 가지고 판단해야지

    안그러면 지 청천, 백 선엽 장군 등등 모두 친일파가 됩니다.

     

    일단 만주군은 일왕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곳입니다.

    그곳에 들어갈때 일왕한테 뭐 충성이니 뭐니 이딴게 없어 만주국의 군대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조선인은 그당시 일본군에 입대할수 없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일본군의 장교로 안 뽑았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박정희가 교환학생 방식으로 일본육사로 건너간뒤 졸업하고도,

    졸업자 명단에 일본군 장교 소위 박정희가 아니라,

    만주군 장교 소위 박정희라고 나와있었지요.

    그리고 저 신문자체가 조작입니다. 

     

    혈서신문은 원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이크로필로으로 복사한 사본만이 존재 합니다.

    사본은 법적증거력이 매우 현저히 떨어집니다.

    조작가능성 때문이지요.

    원본은 없고, 사본이라는것도 현대식 일본어가 쓰여진 엉터리이고,

    글을 쓴사람 행적은 오리무중입니다.

     

    일본 국회도서관에서 나온 저것을 원본이라고 생각하는 좌파가 태반입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그 짧은 기사안에 중대한 오류가 3가지 이상 밝혀졌기때문에

    학계에선 신빙성을 담보할수 없다는 이유로 완전히 사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이고 자시고 일본 국서인 일본서기 내용이 다 진실이라면 신라와 백제는 3세기부터 4세기까지 일본 식민지였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좌좀들 말대로 박정희가 혈서를 쓰고 입학했다고 해도

    입학하기 위해 호소 형식으로 쓴 것일 뿐입니다.

    그것으로 박정희를 친일파로 둔갑시키기에는 여러 증언들로 인해 명함하나 내밀 수 없지요.

     

    혈서가 진짜든 아니든 문제는 우리의 인식입니다.
    좌파들 역겨운 것 중의 하나가, 혈서 들먹일때 '조갑제도 혈서 썼다고 하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좌파들은 조갑제 주장에서 혈서 대목은 수긍하면서 그것이 첩보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행했던 일이라는 것과 비밀 광복군을 했다는건 부정합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것만 보는 전형적인 진영논리지요.

    ‘만주신보’ 사본을 공개한(그래서 아직 진부 논란이 없지 않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혈서 자체를 소신파 친일의 명백한 증거로 보지만, 그 자체가 억측입니다.
    당시 나이 많은 시골 교사 박정희로서는 입학을 위한 편법으로 대일 충성의 수사(修辭)를 발휘했다고 보는 게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즉 제스처에 불과했지요. 교사 시절의 유다른 반일성향을 염두에 두자면, 면종복배(面從腹背)의 트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 앞에 복종하는 척하며 다른 꿈을 품었던 경우입니다.

    앞으로 혈서 때문에 박정희 친일파 프레임에 갇히지 마세요.

    혈서를 썼든 안 썼든 그것이 박정희 친일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5. 창씨개명 했다?

     

    창씨개명 하면 친일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일본명 도요타 다이쥬)을 포함한 국민의 80%가 창씨개명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국민의 80%가 친일파겠네요.

     

    김대중은 일왕이 죽었을 때 머리까지 조아린 골수 종자 인데, 왜 박정희만 물고 넘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중이 도요타 다이쥬 라는 창씨개명을 했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요.

     

    혹자는

    "창씨개명 한 게 죄가 아니라, 두 번 한 게 죄다"라고 합니다.

     

    박정희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했었는데

    그 이름이 조선인의 냄새가 난다 하여

    나중에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다시 바꿨다는 소문이 있는데,

     

     

    여기서 잠깐, 오카모토 미노루는?
    1929년의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공(?)을 세운 
    사이비교육자인 한 왜놈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입니다.

     

     

    이를 반박하고자,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동창으로서

    인하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에 거주하시며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김병희 옹의 말을 퍼왔습니다.

     

    김병기 옹의 홈페이지인 http://home.megapass.co.kr/~gimbyngh/ 들어가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필자(김병희)는 홈페이지[http://home.megapass.co.kr/~gimbyngh/]를 가지고 있어서,

    지구촌 사람이면 누구든지 마음대로 와서 구경도 하고 글도 쓸 수 있게 하고 있는데,

     

    오늘 새벽에는 "이상유"라는 분이 오셔서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았다["…"은 수십 자씩 생략했음을 뜻함]:

     

     

    "저는 서울에서 근무하는 교사 이상유입니다. … 
    저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박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가 많았지만,  …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다른 창씨 명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악질적입니다. …

     

     

    그러다가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정말 우연치 않게 
    박사님과 고민철 씨가 게시판에서 주고 받은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곳에는 제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다니던 오카모토 미노루의 비밀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

    순간 박대통령을 음해에 앞장서던 김삼웅이 떠올라 치를 떨었습니다.

     

     

    김삼웅은 독립기념관장을 하던 중에도 신촌의 서점에서 가끔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 
    이제 박대통령이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음해가 사실이 아니라는 확실한 근거를 가지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박사님의 소중한 증언 덕분입니다. …

    홈페이지 어딘가에 오카모토 미노루의 사진을 올려놓았다는 글이 있던데 찾을 수가 없군요.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위의 이상유님 글을 요약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 명이 타카키 마사오(독립군을 비밀리에 도와준 사람으로 독립군사이에 유명) 와

    오카모토 미노루(김상웅이 주장)라는 설이 있는데 있는데,

    오카모토 미노루는 노무현 정권때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김삼웅이 박정희를 음해하려고 조작한 것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다. 사이비사학자에게 독립기념관장이란 중책을 누가 천거해서 누가 임명(김대중)했는지는 모르지만, 
    꼴두기가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이군. 필자는 다음과 같은 회답을 보냈다:

     

    "이상유님 보세요

     

    혜서 잘 읽었습니다. 교육 동지를 만났군, 반갑습니다.

     

     

    더욱 박정희 대통령의 참모습을 아시려고 주야 분투하신다니, 
    전교조 무리들이 많다는 곳이라 진흙 속에서 구슬을 만난 느낌입니다.

     

     

     

    박정희군은 저의 죽마고우인지라, 
    그가 오카모토(岡本) 운운의 일본식 이름을 가진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어느 엉터리 사학도가 그런 발설을 한 모양입니다.

     

     

     

    오카모토라는 대구사범 교유는 광주학생사건 때 우리 조선인학생들을 때려잡아 수훈 갑인 자로서, 
    당시의 조선총독이 대구사범 학생감으로 특진시켰기에, 
    박군(박정희)이나 저를 포함한 우리 대구사범 조선인 학생들은 전원이 그를 개나 돼지처럼 악종으로 보았답니다.

     

     

    그 사학자(김상웅-김대중 추종자), 그 자는 틀림없이 친북정권의 수하로서 박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의도로, 
    그 악종의 성을 박군의 일본식 성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말살 내지는 희석시키려는 음모의 발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자서전을 쓰면서 그 오카모토 학생감에 관해서 여러 번 언급은 했지만, 
    모두가 교육자다운 모습은 없고, 시종일관 조선인 학생의 사상동향에서 민족정신을 뽑아,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그의 더러운 수작을 폭로했을 뿐이었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그의 사진을 올린 기억은 없습니다.

     

    여불비례

     

    2008. 11. 13        울산 일산진에서          김병희""

     

    실제로 병적과 서류를 모두 뒤져보면

    박정희는 광복 때까지 '다카키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오카모토 미노루가 절대 아니라는 거죠.

     

     

    박정희군은 저의 죽마고우인지라, 그가 오카모토(岡本) 운운의 일본식 이름을 가진 일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데, 어느 엉터리 사학도가 그런 발설을 한 모양입니다. 오카모토라는 대구사범 교유는 광주학생사건 때 우리 조선인학생들을 때려잡아 수훈 갑인 자로서, 당시의 조선총독이 대구사범 학생감으로 특진시켰기에, 박군이나 저를 포함한 우리 대구사범 조선인 학생들은 전원이 그를 개나 돼지처럼 악종으로 보았답니다.

    그 사학자, 그 자는 틀림없이 친북정권의 수하로서 박 대통령을 음해하려는 의도로, 그 악종의 성을 박군의 일본식 성으로 둔갑시킴으로써, 국민들의 박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을 말살 내지는 희석시키려는 음모의 발로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자서전을 쓰면서 그 오카모토 학생감에 관해서 여러 번 언급은 했지만, 모두가 교육자다운 모습은 없고, 시종일관 조선인 학생의 사상동향에서 민족정신을 뽑아, 독립운동의 씨를 말리려는 그의 더러운 수작을 폭로했을 뿐이었고, 귀하께서 말씀하신 그의 사진을 올린 기억은 없습니다.

    여불비례

    2008. 11. 13        울산 일산진에서          김병희

     

     
    김병희 옹은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기동창으로서 인하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울산에 거주하시며 온라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졸업사진

     

     

    왼쪽이 오카모토. 오른쪽 박정희.

     

     

     

     

     

     

     

     박정희의 제2창씨명으로 알려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의 실제 이름은 오카모토 히로시(岡本寬)이다.

    實자와 寬자가 워낙 비슷해, 옮겨쓰면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실제로 국사편찬위원회의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의하면 1935년에는 實로 표기가 되어 있고 1936~1943년까지는 寬로 표기가 되어있다.
    히로시가 미노루로 둔갑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오카모토는 1930년 조선공립고보에서 시작하여 1932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광주제일고보의 교유(敎諭)로 있었는데,
    물의를 일으킨 조선학생들을 일망타진한 수훈갑의 공로가 있어 1등급 특진하고,1935년,
    그러니까 박정희가 3학년이었을 때 대구사범학교로 영전하게 되었다. 

    당시 대구사범학교는 현준혁의「교유 및 생도의 비밀결사사건」이 발생한지 얼마되지 않아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불온사상을 특별히 감독하고 단속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여 오카모토를 대구사범학교로 발령시킨 것이다.
    과연 오카모토는 당국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카모토가 부임한 이후 많은 조선인 학생들이 퇴학과 정학을 밥먹듯이 당했던 것이다. 게다가 워낙 학생들을 개패듯이 팼기 때문에, 학생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오카모토는 이렇게 조선인 학생들을 짓밟고 일어선 덕에 그 뒤로도 승승장구하여,
    1940년에는 6등 授瑞寶章이라는 서훈을 받고 함경남도 道視學官을 거쳐 1944년에는 청주사범학교장을 지냈다.
    평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직위까지 오른 것이다.

     


     

     

     

     

    결론 : 박정희 ≠ 오카모토 미노루

     

    2번 개명 안함 .

     

    오카모토와 박정희는 다른사람입니다.

     

     

     

     

     

     

     

    군속계만 봐도 1945년까지 高木正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교사의원면직 발령원부나 보고 날조를 하던가.

     

    1940년.

     

     

     

     

     

    충격적인 사실은,

    박정희 = 오카모토 미노루’ 는

    북한에서 시작된 네거티브라는 점입니다.

     

     

    대선토론회에 등장한 박정희 대통령의 창씨개명 문제

    이시완 자유기고가, leeshiwan@gmail.com

     

    등록일: 2012-12-05 오후 6:23:29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다가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갑자기 뜬금없는 ‘다카키 마사오’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인터넷 포털에서는 갑자기 ‘다카키 마사오’라는 검색어 순위가 급등하고,
    덩달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또하나의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알려진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이름까지 검색 랭킹에 등장했다.

    이것을 본 많은 네티즌들은 무책임하게 트위터, 인터넷 댓글을 양산하며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들리지 않았던 이름인
    ‘오카모토 미노루’를 들고 나와 박정희와 박근혜 후보를 공격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소동을 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 트위터의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 선동들  

    대한민국의 자칭 진보세력들

     

     

     

     

    나는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말을 퍼뜨리고 있는 그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박정희의 창씨개명이 ‘오카모토 미노루’ 라는 얘기를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느냐고 말이다.
    그들의 대답은 뻔하다.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2001),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그리고 재미 언론인 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1999), ‘김형욱 회고록’(1985),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의 칼럼 및 저서 등이 바로 그들의 ‘근거’다. 

    하지만, 그 어떤 자료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카더라’ 라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볼 점이 있다. 바로 위 인물들의 공통점에 대해서다.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와 대립했던 사람이거나,
    김대중 전대통령의 측근, 혹은 친북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티 박정희’의 요소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들의 주장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안티박정희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근거라며 늘 가져오는 근거는 일본 측에서 발간한 ‘일본육해군 총합사전’이다.
    실제 이 사전의 2판(2005)에 보면 박정희의 일본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 '일본육해군 총합사전' 2판 (2005)  


    하지만,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이 사전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이 아니라,
    도쿄대학 출판부에서 출판한 ‘개인출판물’이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사전의 초판(1991)에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없는데,
    2005년 발간된 2판에 갑자기 이 이름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도쿄대학 출판부를 통해 이 사전의 저자에게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의 근거를 확인해 본 결과,
    “근거 확인이 안되니 3판을 출판할 때는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을 삭제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한국의 ‘안티 박정희’ 세력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오던 ‘일본측 자료’ 의 설득력도 이것으로 없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대체 이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주장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현재까지 언급되고 있는 자료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1985년에 나온 ‘김형욱 회고록’인데,
    필자가 발견한 그 보다 더 오래된 기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놀랍게도 ‘북한’ 에서 시작되었다.

    1973년 8월11일자 북한의 로동신문을 보면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에 박정희에 대한 비판을 집중적으로 쏟아놓는데,

    그때부터 ‘오카모토’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남조선의 한 집권자는 우리 인민이 일제 침략자들에 항거하여 싸울 때 혈서를 써서

    ‘천황’의 ‘적자’가 될 것을 맹세맹세한 후 ‘특등 일본인으로’,

    ‘돌격대장’으로 ‘오까모도중위’로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애국적 인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이른바 ‘토벌’에 110여회나 참가하였으며 조선동포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속에서 기여나오는 동포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을 총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고 생매장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손가락 하나 떨지않고 감행한 자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73년 8월11일 로동신문)

    여기서 ‘오까모도’가 박정희를 지칭한다는 것은 1987년 북한의 금성청년출판사에서 나온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라는 책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인용한다.

    일본 군국주의 우두머리 한놈인 구모놈은 박정희 역적놈을 ‘가즈오료리점’에 특별히 불러내다 먹자판을 벌려놓았는데

    이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오갔다.

    “자네 퍽 몰라보게 됐네”

    “각하, 절 알아보시겠습니까? 사랑 받던 오까모도입니다”

    “아무렴 알아보고 말구”

    “그떄 선생님은 저를 돌격대장이라고 불렀지요”

    “그랬지.암 돌격대장이야.

    오까모도군이 지금 남조선의 실권자로 나타났지만

    내 눈에는 옛날 자주빛깔 만주국군의 군관생으로밖엔 보이지 않네”

    “고맙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저 역시 그 때를 자주 추억하곤 합니다”

    (「원쑤는 재침을 노린다」금성청년출판사1987)

    한일회담을 비판하기 위해 일본을 찾은 박정희를 악의적으로 ‘오까모도’ 라고 설정하여,

    일본인에게 저자세로 일관하는 인물로 그려놓은 것이다.

    단지 북한과 한국의 일본어 표기법이 달라 ‘오카모토’가 북에서는 ‘오까모도’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1973년 이전에 박정희를 ‘오카모토 미노루’ 라고 주장한 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 사회에 퍼진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설은 북한의 주장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정적비판을 위해 퍼뜨렸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주체가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안티박정희’ 진영이다.

    문명자씨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와 직접 면담을 할 정도로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으며,

    김형욱씨 역시 박정희의 미움을 사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정희 정권 비판의 선봉에 섰고,

    김삼웅씨는 박정희의 정적 김대중씨가 만든 평민당 당보의 주간을 맡을 정도로 친DJ의 성향이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전형적인 ‘안티 박정희’ 성향의 인물들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름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이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본 ‘박정희=오카모토’라는 근거는 어디에서 보았느냐고.

    북한자료가 아니라면 당당히 밝힐 수가 있을 것 아닌가. 

    지금까지 박정희 친일설, 혈서설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에 대한 제대로 된 근거제시는 단 한번도 없었다.

    만약 근거가 있다면 진작에 나오고도 남았어야 한다. 

    만약 그 출처가 차마 북한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카더라’ 라고 말을 하고 싶다면

    한국 사회에 무분별하게 퍼진 그 ‘설’에 대한 책임을 과연 누가져야할까?

    정적 비판도 좋지만 도를 넘어서는 인신공격은 정파,

    시대를 떠나 어느쪽이건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6. 박정희는 왜 만주군관학교에 갔을까

    고산 고정일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정희는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발, 초등학교 교사직을 버렸습니다.

    그에겐 무엇보다도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이란 근대적인 선진문화였습니다.

    그즈음 선진문화 중 하나가 일본군사체제였기에 만주군관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적진 소굴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불을 훔치러 간 '프로메테우스 행보'입니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일본육군사관학교에서 일제대륙침략선봉 황야의 늑대 이시하라 간지,

    천황의 여우 기시 노부스케 두 걸물의 만주국건설 산업경제개발방략과 근대적 국가통략을 공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죠. 박정희는 당시 만주군으로 위장한 광복군 첩자였습니다.

    뭔 헛소리냐고요? 잘 보세요.

     

     

    7. 백강 조경한 선생이 말하는 박정희

     

    자세한 설명은 이 짤로 대체합니다.

    (아... 여기 오타가 났습니다. 조경환이 아니고 조경한입니다. 조경한 조경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2&aid=0000043430&viewType=pc

     

    이래도 친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경한 선생은 실제로 박통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41700209207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4-17&officeId=00020&pageNo=7&printNo=18626&publishType=00020

    박정희가 친일파라고 생각했더라면 친일파를 더럽게 싫어했던 조경한 선생이 그를 가까이했을 리가 없습니다.

     

     

     

     

     

    좌파들은 조경한 선생님 일대기를 부정하기까지 합니다.

    박정희가 친일파였다면 김학규 장군을 깍듯이 대해줬을 거 같습니까?

     

    아무리 조작드립 치면서 역사를 왜곡해봤자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정작 친일파 집단을 신봉하는 새끼들이 애국자를 친일파로 덮어씌우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8. 백범 김구 선생이 말하는 박정희

     

    박정희의 비밀요원 활동을 기록한, 육군본부의 창군전사 기록을 공개합니다.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no=379335&s_work=view&tcode=01001

    원문의 일부를 밑에서 언급합니다.

    이곳에 가시면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스압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링크를 걸었습니다.)

     

    김구 선생님과 조경한 선생님의 말이 구라라면

    박정희는 광복 후 반민특위에 이름이 올라갔겠죠.

     

    어떤 분이 백범 선생은 저런 글 쓴 적 없다고 하시던데,

    글쎄요, 사실 저게 진위여부 논란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신 이걸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학규 장군 얘깁니다.

     

     

    http://cafe.naver.com/bohunstar/14551

     

     

     

    9. 박정희 독립군 토벌했나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 시절 팔로군을 공격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팔로군은 어디까지나 중국 공산당의 군대일 뿐, 독립군이 아니죠.

     

    사실, 일제 말에 독립군은 만주를 떠나

    중국 내륙으로 다 이동한 상태였다고요.

     

    실제로 류연산이라는 작자가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을 제시했다가

     

     

    그렇다 합니다 ㅇㅇ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에서 모든 성적이 아주 우수했지만  전체 성적이 바닥이었습니다.

    이유는 황국신민과목을 백지로 냈거든요.

     

    박정희가 모든 과목에서 최우수 성적을 얻으면서도

    늘 전체 성적이 바닥을 헤메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던 아리카와 당시 중좌는

    박정희가 윤리 등 황국신민 과목에는 백지 답안을 제출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맺어졌으며 오래 지속된 사제지간의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군관학교에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요?

    백범김구의 백범일지에는 박정희와의 만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하려던 박정희대통령은 김정균을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났습니다.

    김정균은 상해임정에서 비밀첩보원을 하던 김구 선생님의 수족과도 같은 분이었습니다.

     

    남의사 소속의 왕정국, 산서성 총사령관 염석산과 더불어 독립 운동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그 김정균의 일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 김구 선생은 1939년 3월 어느날 청년 박정희를 만났다.

     

    그때 박정희는 20대 초반으로 아주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때 처음 박정희 청년을 김구 선생에게 소개해준 사람이 김정균의 친한 친구인 신영학 이라는 친구다. 

    신영학을 통해 소개받은 김정균은 박정희 청년의 뚜렷한 역사 의식과

     

    조국 광복의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것을 보고는 김구 선생에게 소개를 하였다.

    그때 박정희를 처음본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1시간동안 부동자세로 세워 두었다.

    김구 선생이 본 박정희는 키는 크지 않았지만 부럽뜬 두 눈을 보고는

     

    멈칫 놀랐다고 박정희가 나간후에 김정균이한테 말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 청년은 1시간 부동자세로 서 있었지만 자세하나 흐트러 지지 않았다.

     

    김구 선생이 박정희 청년을 세워두고 외출을 하여 40여분만에 돌아 왔으나

    박정희는 그때까지 부동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 김구 선생은 박정희가 서 있는 자리에 비밀 표시를 해 두었다.

     

    그랬는데 박정희는 그자리에서 1cm도 움직이지 않고 1시간을 서 있었다. 
    그기에 감탄한 김구 선생은 박정희 청년이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후에 그곳에 모인 광복군 동지들께 말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김구 선생은 박정희를 예의 주시 하고 있었다. 

    아마 1945년에 광복이 못되고 했더라면 박정희는

     

    김구 선생을 도와 일을 했을것이다 라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김구 선생이 박정희를 만주 군관 학교를 보낼려고 하였으나

     

     

    박정희 청년이 적을 알아야 한다며 굳이 일본군 사관학교에 입학을 하였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박정희가 일본군 사관학교에 다니면서도 일본군의 무기정보

     

     

    일본군의 전술공부등 많은 정보를 김정균이에게 알려 주었다. 

    박정희 소좌가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선양으로 떠날때도 김정균이한테 알려 주었다.

     

     

    김구 선생은 박정희 소좌가 선양으로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김정균이와 박정희 소좌는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일본군의 동태 작전능력 병력이동 계획,

     

     

    일본군의 동태를 알려 주었다고 김정균이는 기록하고 있다. 

    ★ 이를 뒷받침 할 근거로서는 백범일지에서 나와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 아.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 하였습니다. 

     

     

     

    박정희 까기로 유명했던 송남헌이 쓴 책에 박정희가 광복군 쁘락치한 기록이 나옵니다.

     http://bookstore21.net/korean/815/park-oss.htm)

     

    골수 좌파 지식인의 증언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송남헌>이라는 사람을 두들겨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송남헌[宋南憲, 1914.4.11~2001.2.20]  한국의 독립운동가, 현대사 연구가. (중략) 광복 후 군사정부에 의해 좌익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에는 통일운동을 사회운동으로 확산하는 데 힘을 기울이며 현대사 연구가로 여생을 보냈다.> 이 정도면 극우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완벽한 '좌빨' 아니면 거의 '빨갱이' 수준이다.

     

    특히 5.16군사혁명 직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2년 간의 옥살이를 하였으니 그가 어떤 입장인지 알만하다. 그런 그가 <해방 3년사>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의 26페이지를 그대로 복사해 옮긴다. 이 글에는 <만주군 박정희 중위가 광복군 비밀요원이 되는 과정>을 스스로 증언하고 있다. 

     



    (위에서 다섯번째, 아래에서 세번째 줄 주목. 이 씨는 다음 날 (2월 10일) 저녁 부대간부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박정희 중위, 신현준 대위와 만나는 데 성공했다. 이씨는 자기 신변을 밝힌 뒤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 장군의 직인이 찍힌 광복군 임명장을 박중위와 신대위에게 주었다. 이래서 그들은 광복군 비밀요원이 됐다.)

     

     

    (아래에서 네번째 줄 주목 : 이 국내 진공에 관한 비밀 거사에 참여한 바가 있었던 조선출신 군인 가운데는 朴正熙(박정희) 전 대통령도 있었으며....)

     

     http://blog.daum.net/lawrenceeb/7065239 

     

     

     

    몇몇 사람들은 독립군을 때려잡았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자세히 알아보면 진짜 개병신같은 소리입니다.

    http://www.bookstore21.net/korean/815/faked-article.htm

     

    이글만 봐도 알겠지만,

    당시 진짜 독립군은 거의 궤멸되서 만주쪽엔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싸운건 중국 만주 지역을 철권통치하던 무장한족(군벌)이었습니다.

    당시 삶이 힘들어 만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받아준건 만주국이었거든요.

    한족들은 조선인이 땅을 소유하는걸 엄격하게 막고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무장한족은 자기들이 점령하던 지역을 빼았겼으니 만주국과 싸우려 들겠지요?

    그들의 기치가 '조선인과 일본인을 쫓아보내자'였고 그게 항일부대라고 불린 이유입니다.

    그들에게는 항일 독립군이였을지 몰라도 우리 조선인 입장에선 적군이였지요.

    그러니 박정희는 그곳에서 그들과 싸우는걸 즐거워 했을 겁니다.

     

    이후 박정희는 광복되기전 광복군으로 들어갔고

    OSS 지금은 CIA로 불리는 조직으로 들어가서 활동을 했습니다.

    http://www.bookstore21.net/korean/815/park-oss.htm

    http://systemclub.net/bbs/zb4pl5/zboard.php?id=president_park&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8

     

    이래도 박정희가 친일파인가요?

     

     

     

     

    어쨌건, 박정희를 못 까서 안달인 악마같은 좌파새끼들의 필살기라고 주장하는 친일파 증거니까,
    까는건 제대로 반박해줘야겠지요.

     

     

     

    박정희가 독립군에 협조 한것은 백범 김구선생님이 인정 했고
    백범 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일입니다.

     

     

     

     

     

    10. 독도 팔아넘겼나?

     

    대한민국에 귀화한 일본인으로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계신 호사카 유지 교수의 말을 빌려 왔습니다.

     

     

    “박정희 때문에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
    한국인으로 귀화한 일본인, 안티 박정희 세력에 일갈

     

     

    독도 수호운동가

    세종대 교수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

    호사카 유지

     

     귀화한 일본계 한국인으로 ‘독도사수’ 운동을 벌여온 호사카 유지(사진. ほさかゆうじ) 세종대 교수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부 세력의 ‘왜곡’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14일 중앙일보 기고문에서, 지난달 말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는

    ‘한일협정’ 관련 심포지엄에서의 자신의 발표문을 어느 인터넷신문이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전했다.

     

    발표문 내용은 <한일협정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를 한·일회담의 의제에서 제외하라”고

    도쿄에 있던 이동원 외무부 장관에게 지시하면서 “본건은 한국 정부의 안정과 운명이 걸린 중대한 문제이므로

    만약에 한국 측이 수락할 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일회담을 중지해도 좋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 정부의 이런 단호한 방침에 일본 정부가 양보해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하겠다는 안을 거두어들였고,

    독도 명칭을 교환공문에서 삭제했으며, 한국 측이 제시한 구속력이 없는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는 내용의 최종안이 마련되었다”며 “내 발표문의 취지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만큼은 처리를 잘했고

    이 협상 과정에서 일본이 사실상 독도를 포기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심포지엄 내용을 보도한 어느 인터넷신문이 내 발표문을 크게 왜곡해서 보도했다”는 것.

    그는 “박정희 정권이 독도문제를 심하게 망가뜨렸다는 취지로 내 발표문을 소개한 것”이라며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내 발표문과는 완전히 반대인 내용을 사실인 양 써서 보도했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심한 왜곡은 그동안 내 의견에 악성 댓글을 썼던 일본인들도 하지 않은 처사”라며

    “그런데 대한민국 내에서 자신들의 취지나 노선에 맞지 않는다 해서 주제발표자의 발표내용을 심하게 왜곡해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키다니 기가 막혔다”고 했다. 

     

    특히 “한·일협정 협상 당시 독도문제가 한국 측 잘못이라는 왜곡된 결론을 내면,

    국제법상 독도의 위치가 위태롭게 된다”며 “그런 중대한 상황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왜곡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은 나라를 망하게 할 가능성을 내포한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이 짧은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나’라는 한 개인이 화가 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왜곡해서 쓴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개인이 사회에서 신뢰를 잃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오로지 자신들의 주장이 부정당하는 것이 두려울 뿐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같이 밝힌 그는, “이번 사태의 관건은 바로 ‘박정희’였다”며

    “아마도 ‘박정희’가 잘한 일이 하나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독도문제에서 박정희가 뭔가 잘했다는 주장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리라”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1965년도의 환경 속에서 박정희는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를 포기하게 만든 게 사실”이라며

    “‘박정희’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진실은 제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그리고 그와 같은 신념을 관철시키고 싶다”며 “나는 한 정치가를 두둔한 것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를 판단해서 알렸고 내 신념대로 움직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요약

     

    박정희의 외교 덕분에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는 발표문을 발표함.

    근데 그걸 한국 좌파들이 반대로 왜곡해서 보도.

     

    "박정희가 독도를 팔았다" 라고 생각하는 놈들은 전부 속은것.

     

    실제로 독도 영유권이 훼손된 때는

    김대중 정부 때 체결한

    독도를 중간수역에 넣은 신한일어업협정. (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

     

    http://rightnews.kr/sub_read.html?uid=3258&section=sc3

    http://www.wbkn.tv/?m=bbs&bid=news&uid=3115

     

    [인터뷰] 호사카 유지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연합국의 합의 없이 통보된 미국무성 '러스크 서한'은 무효

     

    2011년 04월 18일 (월) 10:09:38 이석호 기자 dolko@hanmail.net

     

     

    <편집자주> 지난달 일본에는 강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일 양국의 응어리진 역사를 잊고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도 일본에 온정의 손길을 보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일본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사용될 중학교 지리 및 사회교과서를 검정하면서 독도를 일본 영토로 기술한 교과서 검정본을 모두 승인했다. 다시 일본에 대한 비판여론이 뜨겁게 일고 있다. 최근 독도문제에 있어 가장 주목받는 인물인 호사카 유지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를 찾았다. 

     

    - 한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미온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독도문제에 있어 일관되게 강조해온 ‘조용한 외교’라는 틀을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일본은 독도가 분쟁지역화 되는 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 외교’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실제로는 평소 조용한 외교를 펼치는 한국정부가 일본 측에서 사건을 일으키면 매우 강경한 외교로 돌변한다는 데 있습니다. 현재까지 하지 않았던 실효지배 법안을 갑자기 부활시키려는 것을 보면 오히려 일본의 공세에 말려들어간 것이 아닐까 걱정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독도지배의 정당성 논리를 확실하게 밝히는 일입니다. 지금 한국 정부의 독도공식 사이트는 외교통상부에 있는 ‘대한민국정부의 독도에 대한 기본입장’이고 이 문서만을 보면 잘 작성되었지만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올라와있는 일본 측 독도주장과 비교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공식견해가 일본 측 주장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면 독도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법입니다. 외교통상부의 사이트뿐만이 아니라 외교부에 링크된 준 공식사이트도 문제가 많습니다.” 

     

    -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논리적 근거로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거론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사이트에 올려 져 있는 독도 팸플릿 등의 내용을 보면 1951년 8월10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초안 작성과정 마지막 단계에서 미국 국무성이 미국주재 한국대사관으로 ‘사실상 독도는 일본영토’라는 내용이 포함된 소위 ‘러스크 서한’을 보냈습니다. 일본 측은 이 공식서한이야말로 독도가 일본영토로 남았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미국 국무성 비밀자료에 의하면 이 ‘러스크 서한’은 한국정부에게만 비밀리에 송부되었고 다른 연합국들에게 공표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연합국간의 합의가 없었던 문서로 밝혀졌습니다.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주장은 당시 미국 일국만의 견해이지 연합국들의 합의를 얻어야 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규칙을 어긴 서한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연합국들이 합의한 내용이 아닌 서한이 아무리 공식문서의 형식으로 한국정부로 송부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원천적으로 무효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연합국대표 10개 국가들은 모두가 독도를 한국영토로 보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서한을 공표하면 다른 연합국들이 미국에게 항의할까 우려해 비밀문서로 한국에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정부는 ‘러스크 서한’이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증거라고 10개 국어로 세계에 발신하고 있는데 한국 측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 문제가 큽니다.” 

     

    - ‘러스크 서한’이 무효라고 처음 밝힌 것은 언제인가? 외통부도 사실을 알고 있나. 

    “지난해 9월 제가 펴낸 <대한민국 독도>(2010, 책문)를 통해 처음 공개했습니다. 올해는 곧 논문으로 발표할 것입니다. 외통부가 ‘러스크 서한’에 대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공식 사이트를 통해 상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우리나라가 독도에 대한 불리한 빌미를 준 것이 아닌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한일기본조약에는 독도문제뿐만 아니라,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 문화재 반환협정, 어업협정 등이 포함됐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도문제가 한국에 불리하게 돌아간다면 다른 모든 협정문서에 서명하지 말고 귀국하라고 이동원 외무부장관에게 강하게 명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당시 일본 사토내각은 양보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일양국이 ‘분쟁해결을 위한 교환공문’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본 측은 국제사법제판소로 독도를 회부하자고 되풀이해온 제안을 철회했고 분쟁해결방식을 ‘중재’로 바꿨습니다. 그 단계에서는 독도명칭이 문안 속에 있었습니다.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규정해 놓고 싶어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중재라는 일본 측 제안도 한국 측이 승낙하지 않자 일본정부는 독도명칭을 완전히 공문에서 삭제했습니다. 타결된 교환공문은 양국 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해결을 모색하고 그것이 안 될 경우에는 제3국을 통한 조정으로 해결하자는 문구로 정해졌습니다. 결국 독도는 한일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한국 측 주장은 독도명칭을 교환공문 초안에서 삭제함으로 인해 관철됐습니다. 이후 일본 외무성은 ‘이것은 한일양국이 장래 매우 평화스러운 관계를 구축했을 때 독도문제도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하면서 사실상 일본이 독도를 포기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되풀이했습니다.” 

     

    - 논리 대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독도문제에 있어 가장 확실한 논리적 증거는 무엇인가. 

    일본이 역사적으로 적어도 세 번에 걸쳐서 ‘독도가 일본영토가 아니다, 조선의 부속이다’라는 공문서를 남겼습니다. 1696년, 1870년, 1877년의 세 번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본 측 독도논리의 핵심적 주장인 ‘고유 영토론’이 무너집니다. 그리고 1905년 이전의 일본의 공식지도가 독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하거나 조선의 소유라고 명기까지 했습니다. 1905년의 일본에 의한 독도강제편입도 국제법으로 보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무효가 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한일협정에서도 지금까지 언급한 대로 독도는 한국영토로 인정받았다고 판단됩니다. 

     

    호사카 소장은 또한 1883년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발행한 공식문서인 ‘수로지(水路誌)’에서 독도를 ‘리안코르토 열암’으로 기록한 것을 강조했다. 이 명칭은 독도의 프랑스 명 ‘리앙쿠르 락스’에서 딴 것. 그리고 각종 수로지에는 독도가 ‘리앙쿠르 호’에 의해 184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다’고 명기되어 있다. 이것은 당시 일본정부가 역사적으로 독도를 송도(松島=마쓰시마)로 불러왔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잊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독도가 일본고유영토라는 논리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호사카 소장은 주장한다. 

     

    - 한국정부가 걱정하는 것은 독도가 분쟁지역화 되어 국제사법재판소로 회부된다는 점이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한국정부에 대해 한 번도 공식적으로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65년에 양국 간에서 교환공문을 맺는 과정에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한 한일 간의 분쟁 해결방식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 문제로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습니다. 일본은 교환공문의 진실을 알면서도 마치 현재까지 계속 한국정부에게 국제사법재판소 행을 제안하고 있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지요. 물론 독도에서 한일 양국 간에 국지전이 일어나면 독도문제는 UN안보리를 거쳐서 국제사법재판소로 갈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그 부분은 잘 다스려야 합니다.” 

     

    - 제 3국과 함께 독도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할 필요는 없는지.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이므로 다른 나라들과 독도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일본은 앞으로 한국 측이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협상테이블에 앉는 것을 내심 바라고 있지요. 그런 일본의 전략에 말려 들어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확실한 논리와 자료를 내면 조용하게 독도문제를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와 대립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작업이야말로 독도 조용한 외교의 핵심이어야 합니다.” 

     

    한편 전 세계 지도 정보 서비스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구글어스’에서 독도를 확인해 보면 독도의 이름은 리앙쿠르 록스(Liancourt Rocks)라고 표기돼 있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도 ‘독도’라는 주제어가 ‘리앙쿠르 암석’으로 뒤바뀌어 있다.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내세워 다른 국가들을 설득시키는 동안 한국은 조용한 외교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8년 전 한국인으로 귀화해 독도문제에 전념하고 있는 호사카 소장의 조언을 되새겨 봐야할 시점이다.

     

    <호사카 소장은?> 

    일본에서 ‘렌즈’ 개발 사업을 해오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동경대 공학부를 수학했다. 어려서부터 서양사 등 세계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전공과 상관없이 독학으로 한일역사에 대한 공부를 했고, 재일동포사회를 알게 됐다. 

    88년 고려대어학당에서 9개월간 한국어공부를 했던 그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다녔다. 이후 ‘45년 이전 한일역사’에 파고든 그가 가장 궁금해 했던 역사적 명제는 “왜 일본은 아시아를 침략했는가”였다. 그가 독도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후반부터. 세종대학교 교수인 그는 2008년 12월에 세종대에 독도종합연구소를 만들었고 소장으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렀다.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146900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호사카 교수의 '대한민국 독도'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외교문서 보니까 사실이 아니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박정희는 1965.6.22. 소위 구-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돈을 주는 대가로 일본이 또 독도를 거론했다는데요,

    1965년 5월 17일, 미국 존슨 대통령은 방미중인 박정희를 만나

    한일협정 진척을 축하하면서 독도를 일본과 공유하라, 공동등대를 설치하라 종용했습니다.

     

    박정희는 이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미국이 힘으로 밀어붙이려 했지만(1965.6.15, 국무부문건 364호) 박정희는 장관급 회담을 거절하겠다며 맞섰습니다.

    미국대사는 박정희는 그 무엇으로도 독도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며 밀어붙이기의 불가능성을 본국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독도는 1998년의 신한일어업협정에 의거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바다가 국제법상 일본에게 영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당시에 이뤄 졌습니다.

     

     

     


    그리고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한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문재인은 이런 박정희를 친일독재정권이라고 매도하며

    일본이 자꾸 독도를 탐내자 박정희가 화나서 한 말인

    "네놈들한테 줄 바에(다른나라에 독도를) 차라리 폭파시켜 버리는 게 낫다."라고 한 말을

    독도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고 왜곡하여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몇몇 좌파들은 박정희가 일본과 독도 밀약을 했다고 어거지를 부리는데,

    참고할 것은, 독도 밀약을 해도 한국이 이득이고, 안 해도 이득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독도밀약의 내용입니다.

     

    1. 한.일 모두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 가능. 이의제기 하지마.

    2. 장래에 어업구역 설정할 때 중복이면 공동 수역으로 지정.

    3. 현재 한국이 점거 현상 유지. 경비원 증강 시설 증축 불가능.

    4. 합의를 계속 지켜나간다.

     

    이 4가지입니다.

    3번을 자세히보면 한국이 점거한 현상을 유지합니다.

    누가 지랄하고 뭐고 실효지배권은 한국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밀약을 했는데 일본이 독도 자기땅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실효지배권이 우리에게 있는데 궤변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 밀약을 통해서 멍청한 쪽국이 돈을 쥐어줬지요. 경제발전하라고.

    또한 일본정부에서는 독도밀약을 부정하고 있으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은 독도밀약 주장을 부인하네요.

    독도밀약이 일본에 유리한 조약이었으면 일본이 독도밀약을 표면에 끄집어 냈어야지 왜 부정하고 있을까요?

     

     

     


     

     

    11. 한일국교정상화

     

    이제 좌파들은

    '아 닥쳐 광복 후에 친일했잖아 굴욕외교 한일국교정상화 모르냐?' 할 겁니다.

     

    글쎄요, 일단 이건 박정희 대통령이 잘못한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굴욕외교라고 할 수 있는 측면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국'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달러중
    무상으로 3억 달러,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한일국교정상화를 타결합니다.
     

     

     

    물론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 주는 쪽이 일본인데

    국교정상화를 위해 돈을 많이 달라고 하면 일본이 해 줄까요?

    (사실 저것도 그 당시로는 거금이었습니다만)

     

    또한 위 금액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대일청구권? 저 돈이 적다고요?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를 받아내야 '잘 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배상액이 아무리 많은들 일본이 우리를 유린한 댓가에 턱없이 적은 것이겠죠.

    일본이 갖고 있는 돈을 다 줘도 모자랄 지도 모릅니다.

     

    또한, 배상액 금액 과소 여부를 떠나 
    일본과의 악연을 일단 떨어버리고

     

    국교정상화를 통해 일본과 보다 더 자유로운 경제교류를 가능하게 해서
    대한민국은 결국 실질적 과실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명심할 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괴롭혔든 안 괴롭혔든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줄 의무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빌려달라 해봤자 안빌려주면 그만인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한국에 돈을 빌려줘봤자 일본이 돈을 돌려받을 수나 있었을까요?

     

     

     

    법정 스님도 수필 '광복절에 생각한다'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일본은 일단 우리의 이웃이고,

    또 우리보다 더 앞서 있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일본과 가깝게 지내서 나쁠 게 없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과거사에 너무 집착해서

    일본이라는 나라와 화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하셨고요.

     

    그러면 법정 스님도 친일파겠네요.

     

    그리고 대일청구권을 받은 나라가 있는지요?

    수십억달러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청구권 때문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당시 대일청구권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요?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으며,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즉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만약 '위안부 문제 보상 못 받게 한 사람이 친일파'라면

    김영삼 대통령이 친일파겠네요.

     

     

     

    그리고 일본이랑 수교할 때 받은 돈 갖고 뭐했습니까?

     

     

     

    미얀마, 태국 같은 나라들은 호텔이나 보트 짓고 놀고 있을 때

    박정희 대통령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소 등을 만들어

    대한민국 산업발전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그 돈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쓴 거죠.

     

    김대중은 그 돈으로 도로 짓고 제철소 지으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차라리 그 돈으로 옥수수를 사 먹자고 하였지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장면 정부도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나라 안에 그걸 할 만한 돈이 없어서 실패했죠.

     

    스타크래프트 하시는 분들만 이해하시겠지만,

    'SCV가 다 죽었는데 미네랄이 40밖에 없다'

    뭐 이런 상황이었단 말입니다.

     

    결국 외자의 도입이 필요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 외자의 도입을 위해

    '민족의 미래를 위한 슬픈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마지막 할 말은 이 짤로 대체합니다.

     

     

     

    자, 이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모두 끝났습니다.

     

    제가 제시한 증거들을 보고도

    아직도 박정희가 친일파라고 생각하신다면

    반박해 보시죠.

     

    1. 박정희 대통령의 교사 시절 이야기는 전부 허구이며,

    박정희 대통령의 제자들은 모두 박근혜한테 돈 먹은 알바라는 걸 증명하세요.

     

    2. 어떠한 방식으로든 식민 정부에 조금이라도 협조하면 무조건 친일파이며,

    그러니까 장제스 총통은 친일파, 이우 황자도 친일파, 나폴레옹은 친불파, 워싱턴 대통령은 친영파라는 것을 증명하세요.

     

    3.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만주국을 제3국이 아닌 일본의 속국이라고 생각했고,

    만주군도 일본 황군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하세요.

     

    4.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시한 박정희 친일 혈서가 진짜라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제가 제시한 증거 다 반박해야 합니다.

     

    5. 박정희가 오카모토 미노루로 창씨개명을 또 한 번 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6.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동기는

    오로지 순수한 '대일본제국을 향한 충성심'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7. 백강 조경한 선생이 거짓말쟁이거나,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8. 백범 김구 선생과 김학규 장군이 거짓말쟁이거나,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세요.

     

    백범 김구 선생님의 『 아. 그리운 조국 산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김구 선생님과 오른팔 조경한 선생님의 박정희가 비밀 광복군이었다는 증언도 못믿겠으면

    김구선생님도 친일파라 지껄여 보시던가요.

     

    아, 김구선생님 아들인 김신이 박정희 유신정우회 소속이었고

    손녀인 김미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부인이라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http://blog.naver.com/teraness/60177926841

     

    9.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 주세요.

     

    10. 박정희가 독도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호사카 유지 교수가 거짓말쟁이이고,

    박정희는 독도를 팔아넘겼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세요.

     

    11. 한일국교정상화는 어떠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을사조약에 버금가는 국치라는 것을 설명해 보세요.

     

     

     

     

     

     

     

    박정희에 대한 음해 관련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반박자료.

     

     

     

     

     

    1.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했으니 빨갱이다?

     

     

     

     

     

    좌파 쓰레기들은 박정희를 어떻게든 인간쓰레기급의 인간으로 낙인을 찍기 위해

    친일파니 빨갱이니 온갖 악질적인 타이틀은 다 갖다붙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박정희가 해방 당시 공산당이던 남로당의 당원이었던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무슨 빨갱이인것처럼 날조를 해대는데요,
    당시 남한에서 공산주의는 합법 사상이고 남로당 같은 공산당 또한 합법정당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것도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진짜 빨갱이 였던 형 박상희가 대구 좌익 폭동때 죽자
    그와 친분이 있던 좌익세력들이 박정희를 동향선후배 관계를 이용해 끌어들였습니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이름이 올랐다해도 실제로 행동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있다면 증거자료 부탁드립니다.

    박정희는 남로당 당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장교로서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군내 남로당 좌익 군인들에 의해 발생한 대한민국 전복 반역 폭동인 여수 순천 반란사건에
    좌익폭도를 진압하는 작전장교로 참여했지요.
    만약 박정희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면 진압군이 아니라 오히려 반란에 동참했을 겁니다.

    박정희가 잡힌것은 그가 공산 반란행위를 해서가 아니라 여순반란사건으로 인해
    군내 좌익 공산주의를 색출하기위해 모든 남로당 출신 군인들을 잡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잡힌 남로당 군인들은 거의 사형을 당하지만
    박정희의 성향을 잘 알던 동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변호하여 살아남았지요.
    가까운 사람들은 박정희가 공산주의나 국가 반란과는 전혀 상관없는
    유능한 국군장교라는것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정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남로당 좌익 조직을 실토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입니다.
    군인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전복하는 반역자들을 보호해줘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동료'를 배신했다고 박정희를 비난하는 자들은 빨갱이가 자신의 '동료'라는것을 인정하는 소리밖에 안됩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장교 박정희가 국가 반란을 획책한 빨갱이 동료를 보호하기위해 대한민국을 '배신'했어야 했나요?
    박정희 동료 고발 배신 운운은 북조선을 조국으로 생각하는 좌익 빨갱이들이
    원한에 사무쳐 울부짓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박정희는 대한민국 군인으로써 자신의 책임과 소임을 다해서
    군내 좌익 색출과 처단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당시 남로당은 빨갱이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진 합법정당이었으며

    박정희 형 박상희가 남로당에 있다가 죽자 남로당원들이 혈연관계를 이용해 꼬드겨 박정희를 가입시켰고

    박정희는 명목상으로만 남로당원이었지 활동한 경력은 전혀 없으며 자신도 그 곳에 대해 알아볼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 아버지 친구분이 우리 아버지를 추천해서 새누리당원으로 가입시키셨지만

    아버지는 정치에 아무 관심 없으셔서 명목상으로만 새누리당 당원이지

    활동한 경력, 새누리당이 어떤 당인지 전혀 모르는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저의 친아버지는 새누리당 당원이시지만 정치에 관심 없으시며 활동한 경력조차 전혀 없습니다.

     

     

     

     

     

    2.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다?

    4.19 혁명이 일어나서 이승만 독재정부 타도를 외치며 결국 대통령은 망명가고
    이런 혁명이 오랜시간 유지되면 국가 붕괴가 이어지고,
    한국전쟁 이후였는데도 군사력은 여전히 전쟁 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마음먹고 또 쳐들어오면 적화통일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이미 북한공작원들이 남한에 넘쳐났었고 국지도발급 도발은 지금보다 훠얼씬 많았으니까요.

    이런시기에 박정희가 필두로 나선 군사쿠데타는 필수였고,
    군사정부가 치안을 다잡고 그 뒤에 대통령선거에 당선됩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기 전에 한국은 140개국중 120권의 최하위 빈민국이었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식량지원 없이는 국민들의 생존조차 어려운 국가였지요.
    국민소득 70달러의 최빈민국에서 민주주의를 하면 과연 얼마나 멋진 민주주의가 나올까요?
    자유당 정권이 독재로 무너졌다지만 독재보다는 무능하고 부패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이어서 들어선 장면정권은 국가를 제대로 이끌만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은 하루하루 끔찍한 고통 속에서 지내야만 했지요.
    이때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거고요.

    당시 국민들중 40%는 쿠데타를 원했고 20%는 찬성하나 시기가 빠르다고 했고
    40%가 쿠데타를 반대했습니다.
    쿠데타도 좋으니 현 상황이 변화해줬으면 했던것이 당시 분위기입니다.

    미국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쿠데타를 진압할 명분이 없으므로
    한국내정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박정희가 총칼을 들이대고 권력을 장악했다고는 하지만
    박정희같은 무혈 쿠데타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욱이 국민들은 박수를 치고 환대했지요.

    쿠데타는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신의 권력을 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청렴했고 죽었을때 남긴거 하나 없었지요.



    가끔 박정희가 쿠데타로 집권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병신들이 있습니다만,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비어있는 자리에 스스로 올라간 것이 아닌 쿠데타 이후 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뜻으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또한 선거도 반강제적으로 했다고 들먹이는데,
    박정희의 모든 선거는 유엔이 감시했기 때문에 반강제고 뭐고 불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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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학생들은 72년 10월유신 헌법이 국민투표에서 97% 투표율에 91.5%라는 찬성률로 통과됐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더구나 1975년 2월 12일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도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로 재신임된 사실을 모른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처음 접하는 대학생들의 반응은 당시 투표가 강압적이고 불공정하게 이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유엔 산하 한국 전담기구인 언커크(UNCURK:유엔한국부흥단)가 서울 부산 및 7개도와 서울, 부산에서 10월 유신헌법 국민투.개표에 관찰단을 조직해 감시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당시 투표마감 후에 언커크는 23일 관찰 결과를 종합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관찰인들은 법령에 정해진 투개표 절차에서 별다른 이탈이 없었음을 주목했으며 이번 국민투표가 평화적 분위기 속에서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높은 투표율로 실시됐음을 확인했다."

    당시 언커크가 채택한 11.21국민투표에 대한 보고서는 투표에 대한 유엔기구의 첫 반응이어서 외신들의 주목을 받았다. 언커크의 이러한 보고서는 유엔 사무총장에게 보고됐고 10월유신에 대해 유엔에서 한국의 입지를 강화시켜 주는 계기로 작동했다.

    당시 어느 나라 외신도 10월유신 투표를 부정이나 불공정, 억압투표였다고 보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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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렇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이었는데

    좌빨들 주장대로 오로지 국민의 근면성만으로도 경제성장이 당연했다고요?
















    진짜로...?






    그럼 625전쟁 끝나고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보다 잘살던 나라들은 왜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지요?






    국가발전 단계상 누가 대통령 했어도 그 만큼 발전 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력의 3배인 필리핀, 태국 등은 발전단계가 없었나요?

    그 나라들이 우리보다 지금 더 잘살고있나요?

      

    1960년대 초,  전쟁직후인 우리나라는,

    자원,기술,자본,시장 경험 없는 , 전혀 가망이 없는 나라라고 판명되어

    전세계 국가들중에서 꼴찌에서 2등이었습니다.

     

    좌빨들 주장중의 하나가 18년 장기 집권하면 그정도 경제개발은 아무나 할 수있다고 하는데

    전세계 장기집권 독재 국가들은 모두 한국보다 더 경제가 발전했겠네요?

    그러면 60년 집권한 북한은 선진국 되야하겠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머리가 좋은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 이전에 국민들의 문맹률이 90%였던 것은 알고나 있습니까?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때 당시 무지했는데 도데체 무슨 수로 근성만으로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소립니까?

    그리고, 그렇게 똑똑한 민족이 병신같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됩니까?

    물론 당시 조정이 병신이었으니 이 말에 태클건다면 별로 할말은 없습니다만,
    좌좀들의 주장처럼 윗대가리가 병신인데 어떻게 이러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역으로 물어보고 싶군요.



    한국사람들이 워낙 뛰어나서?
    좌파들은 박정희와 김일성을 동급 취급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는데 북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닌 병신이라서 저렇게 못사나요?



    미국이 한국 원조해줘서?
    그럼 미국의 원조를 받았던 국가중 하나인 필리핀은 왜 한국정도의 경제력이 안됬지요?
    미국이 한국만 도와줬나요? 미국은 한국 말고도 수십 개국을 도와줬는데요?
    왜 미국이 도와준 나라중 한국만 선진국 대열이 됬지요?
    한국을 제일 많이 도와줬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길 바랍니다.

    박정희 덕분이 아닌 국민의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의 산업화가 이루어 졌다는 개소리는
    진짜 기가 차서 반박할 힘마저 빠지게 만듭니다.
    개중에는 박정희가 한국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고 하는 미친놈들도 있었는데
    이건 그냥 인터넷으로 정보 주워담아 들은 애들이 왜 자기말이 진실인 줄 알고 설치는지 모르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 신의 한수는 故박태준 회장님께 포철 즉, 현재의 포스코를 설립 시킨 겁니다.
    우선 대한민국의 산업 중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게 철입니다.
    철이 없으면 결국 이런 산업은 발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이 외화를 빌려서 까지 만든게 포항 제철입니다.
    결국엔 철이 있어서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에 영향을 끼치고 국민의 노력이 붙어서 대한민국 산업화가 이루어 진 건데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부분을 간과 합니다.
    결국엔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이 없었더라면 국민의 노력은 필요가 없었지요.
    그리고 그 당시 야당에서는 농업 정책을 장려했지 산업화를 장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한일국교 정상화때 받은 그 돈으로 포항제철만든겁니다.
    그때당시 포항제철관계자들은 이돈은 우리조상들의혼이담긴 돈이니
    성공하지못하면 모두저 한강물에 빠져죽자고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1위의 철강 기업이 되었지요.

    당시 포항제철 만들때 모두들 반대했습니다.
    천연자원도 별로 없는 땅덩어리에서 제철소라니, 리스크가 매우 큰 계획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계획이 실패하면 국가로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박정희가 단지 북한 김정은 처럼 지 혼자 잘살려고 했다면 이런 리스크가 큰 모험같은 행동은 아예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럼 농업 정책에 국민의 노력이 붙으면 뭐가 될까요? 예상 해봤자 필리핀이 가장 적합한 나라입니다.
    결국엔 박정희의 혜안이 없으면 국민의 노력도 물거품이었을 거라는 부분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아니, 그냥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삼국지나 사기 손자병법등의 역사서나 병법서를 보면 군대의 요소중 가장 중요한것이 그들을 이끄는 장군입니다.

    한명의 장군이 옳은방향으로 군대를 이끌고 사기를 올리고 배수진을 쳐서 승리를 해도 모두 그 리더의 덕이고

    수많은 병사에 사기가 드높다 한들 무능한 장군이 그 병사들을 모두 포로로 사로잡히게 할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사람들의 이중성은 바로 이 '시대적 상황성'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그시대에 옳은 방향으로 이끌었다면 우리는 후대에 그것에대해서 감사해야 하지요.

     

    그당시의 독재가 현재에 이르러 아무런 가치가없는것이었다면 그것은 본인을 위한 독재였겠지만,(카다피나 김일성등)

    그것이 아닌 장기간 계획을 짜고 그것을 일관성있게 밀기에는 독재또한 필요합니다.(박대통령이나 리콴유처럼)

    신이 아니기에 누구나 실수는할수있지만 박대통령처럼 놀라운 성과에 현재의 비판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어떤이들은 그당시엔 누구나 대통령을 하면 당연스레 경제발전이 그정도 가능했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필리핀보다 못살았던 나라가 현재 몇배나 더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필리핀은 과연 놀았습니까?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사람보다 지능이 떨어집니까?

    625 전쟁 직후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살다가 지금 한국에 추월당한 모든 나라들은 전부 한국보다 게으르고 지능이 낮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올바른 리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링컨도 당시에는 비판받고 법조인들 뺨을때리고 모든 언론을 탄압했지만

    그당시의 시대성을 따지고보면 남북전쟁을 막았고 혼란한 미국을 하나로 이끌었기에 존중받고 존경받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있는 가난한 국가들을 떠올려 봅시다.
    가난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남아시아 국가, 남미도 떠올려 봅시다.
    그런 나라들 중 우리나라처럼 순식간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나라가 있습니까?

    그런 국가들보다 더 병신상태였던 국가였는데 정말로 그게 가능하리라 생각하십니까?

    다 필요없고 60년대와 80년대 비교했을때 세계에서 가장많이 성장한 국가가 어디입니까? 대한민국입니다.
    그 대통령이 박정희입니다.
    이걸 인정 못해서 좌좀들은 우리나라가 5000년 역사중 가장 고속성장한 기간을 미국이 다 해준거라고
    앞선 정부계획대로 한거뿐이라고 온갖 지랄을 하는데
    5명 프로젝트를해도 리더가 병신이면 아작이 나는데 국가의 리더가 하는일이 없었다니 그건 무슨 개소리입니까?
    그러면서 반미는 존나게 하고 좌파 정치인들은 자기 자식들은 미국 유학 보내고 미국 시민권 따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박정희를 친일파로 알고 있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광우병 괴담도 종북 세력들이 진실인 마냥 꾸며대니까 수백 수천명이 소요사태를 일으켰는데
    이런 거짓말에도 넘어가는 사람들이 천지인 국가에서,

    휴전 상태이며 항상 대남선전을 하는 북한의 간첩들 때문에
    정신적인 무장을 하지 않으면 선동당하는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간첩들을 때려잡는 철권 통치와 엄청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았더라면

    이나라는 북한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다 적화통일이 되었을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미국에서 보급받는 밀가루 포대나 옥수수 가루를 물에 풀어먹고
    겨우 입에 풀칠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어떤수로 경제재건 자금을 마련해서 건물짓고 공장만들고 했을까요?
    미국이 해줬을까요?

    미국은 단지 못쓰는 무기 팔고 식량지원 해준게 다입니다.
    만약에 김대중이나 좌파정치가가 정권을 잡았다면 어땠을까요?
    그나마 한일협정의 댓가로 받은 배상금도 못 받았을 것이고
    공산당의 대남작전에 속아서 평화평화 거리다가 북한이 쳐들어와서 베트남꼴 났겠지요.





    박정희는 해외각지를 돌아다니며 눈물로 호소해서 자금을 받아
    경제 여건기반을 세울 자금을 공수해왔습니다.
    물론 그 자금을 빌리기위해서 희생된 그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있었지요.
    기름한방울 안나오고 자원이라고는 노동력밖에 없던 국가에서
    복지나 독재정치 평화를 따지기전에 일단 한끼식사라도 굶지않으며 잘살아보자는 것이 
    그때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를 한번 보지요.
    그때당시 우리나라보다도 잘살았던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국가들을 한번 봅시다.
    그런국가들이 지금 한국만큼의 경제발전이 있었나요?
    100달러 미만에서 지금 20000달러나 경제발전 했는데 그런 나라가 있었습니까?

    박정희 리더십이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었고
    그 리더십을 국가를 사랑하고 후세에 가난을 물려주기 싫었던, 가난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그 시대 국민들이 잘 따라와줬기 때문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겁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나라를 좌지 우지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장기 집권가 치고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박정희, 리콴유, 케코넨 등이 있습니다.



    윗 그림중에 오른쪽 사진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입니다.

    박통 집권기때 같이 집권한 독재자입니다.

    당시 1960년대 만 하더라도 필리핀이 일본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2번째로 잘사는 나라였습니다.

    필리핀도 당시 미국에 원조를 받았는데 전부 이새끼가 꿀꺽했지요.

     

    한 일화로 마르코스의 마누라(영부인) 이멜다는 취미가 구두와 코트 모으기 였는데,

    구두 수천켤레를 컬렉션하고 지가 모은 컬렉션 자랑하려고 체육관 5개정도 되는 공간에 냉동기를 돌려서 패션쇼를 여는 미친짓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거 때문에 필리핀 제일 큰섬인 루존섬이 5일동안 정전되기도 했습니다.

     

    마르코스 이새끼는 변호사 출신에 말빨하나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면 맨날 원조해달라고 귀찮게 한다면서 박통을 무시했습니다.

    어느정도나면 같이 입국한 미국 장관에게는 최고급호텔, 박통에게는 그 옆에 모텔급 숙소를 배치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기 때문에 이따위 대접은 분하지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박정희는 이를 갈면서 내가 반드시 필리핀보다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금 우리들한테 있어서 필리핀은 어떤 나라입니까?

    삼류 국가로 한국에서 개무시 당하는 나라중 하나입니다.

     

    필리핀은 지도자를 잘못 만나서 한국에 추월당하고 이 꼴이 난 겁니다. 





     


    이렇게 박정희가 국가 발전을 하고 있을때, 좌파 세력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나라의 발전은 모조리 반대하며 북한이 원하는것은 모두 찬성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반대(도로공사할때 땅에 드러누우며 반대를 했으며 그 돈으로 옥수수 사먹자고 함)
    제철 반대(사실상 우리나라가 공업국으로 전환하는걸 반대)
    KTX 반대(자연파괴를 빌미로)
    인천국제공항 반대(지반이 위험하다는 것을 빌미로. 하지만 아직도 안전함)
    한미 FTA 반대(노무현때는 찬성함. 노무현때와 거의 차이가 없게 체결했으며 오히려 미국이 징징거림)
    4대강 반대(자연파괴를 빌미로. 하지만 99.9% 날조로 선동질)
    제주해군기지 반대(노무현때는 찬성함)

    국가보안법 폐지 원함(북한도 원함)
    미군철수 원함(북한도 원함)
    연방제 통일을 원함(북한도 원함)

    박정희가 없었어도 대한민국이 눈부신 경제발전을 했을 거라구요?

    세종대왕이 없었어도 한글은 만들어졌을 것이고
    이순신이 없었어도 조선수군은 일본수군을 이겼을 것입니다.

     

     

     

     

     

     푸틴의 '박정희식 개발모델' - 러시아를 폭풍 성장시키다

    http://cafe.naver.com/rightofkorea/21101

     

    세계위인들이 평한 박정희 대통령

    http://cafe.naver.com/rightofkorea/397

     

    일본 대학생들의 박정희 대통령 평가-일본대학생은 우리 대학생을 비웃는다.

    http://cafe.naver.com/rightofkorea/398

     

     

     

     

    아래 박정희대통령과 야당 후보의 선거 공약

     

    야당 후보공약을 보세요.

    야당이 되었으면 우리나라 완전히 거덜났을 겁니다.

     

    상단은 기사내용

    하단은 설명추가

     

    출처 : 경향신문 1967.04.22일 기사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67042200329201007&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67-04-22&officeId=00032&pageNo=1&printNo=6622&publishType=00020

     

     

    좌파들은 사실상 우리나라가 산업국으로 발전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무조건 포퓰리즘의 복지정책을 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5위 권에 들던 경제 대국이었으나

    좌빨들이 좋아하는 포퓰리즘 복지 정책으로 빈곤한 땅으로 추락하였습니다.

    분배, 복지의 포퓰리즘이 아르헨티나의 서민과 저소득층을 절대 빈곤층으로 추락시켜버렸습니다.

    5위권의 경제 대국도 포퓰리즘으로 무너졌는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복지 정책을 편다고요?

    미친 소리입니다.

     

    김대중 노무현 10년동안 집권하면서 입으로 후리는 고놈의 복지 복지 제대로 지켜서 길거리에 노숙자 한명도 없었나요?

    오히려 늘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상류층 욕하던 새끼들이 언제부턴가 상류층 자제들 걱정해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외치고 있습니다.

     

     

     

     

     

     

    3. 유신 헌법이 과연 박정희 개인의 영리를 위한 독재였을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쳐 좌익세력으로 위장한 수많은 종북세력 및 간첩들이 대한민국 정부기관, 헌법기관, 교육기관, 문화, 언론, 인권단체에 깊게 뿌리내리고

    그 세를 확장시켜왔고, 지금에 와서 대다수의 여론은 박정희 = 독재자로 매도하며 그 정통성을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절대악으로 프레이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386세대를 필두로 민주화 투쟁이라는 명목하에 반정부 시위에 선동된 인물들에게 교육받고 자란 10~30대들은

    종북세력이 국가의 치명적인 위해집단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박정희 = 독재자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있지요.

     

    이러한 배경에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행한 유신헌법이 독재를 위한 개정헌법이라는 점을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 그 주된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유신 헌법이 뭔지 한번 알아봅시다.

     

    유신헌법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제7차 개정헌법이며 전반적으로 전문(前文)과 12장 126조 및 부칙 11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신헌법(維新憲法)의 배경

      

    1.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세력균형관계에 큰 변화가 일고 있어서 한국의 안보에 

       위험스러운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된다.

    2. 남북한간 사태 진전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3.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의 재발을 막고 이산가족의 재결함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

       을 위하여 남북대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

    4.우리의 주변은 무질서와 비능률이 활개를 치고 있고 대의기구는 파쟁과 정략의 

       희생이 되었다.

    5.현행 법령과 체제는 냉전 시대의 산물이므로 오늘날의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

    6.부득이 비상조치로서 체제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유신헌법의 진행과정

     

    1.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등의 정치활동을 중단시키

       는 등 헌법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

    2.효력이 상실된 일부 헌법 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가 수행하여 비상국무회의

       는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

    3.비상국무회의는 72년 10월 27일까지 헌법개정안을 공고하여 이 개정안은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로써 확정한다.

    4.헌법개정안이 확정되면 개정된 헌법의 절차에 따라 72년 말 이전에 헌법질서를 

       정상화 시킨다.

     

     

     

    요약하자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안보에 위험스러운 상황이므로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활동을 중단시키며,

    헌법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 이는 열흘 뒤 인 1972년 10월 27일까지 헌법 개정안을 공고하여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로 확정됩니다.

    그러나 이는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개정된 헌법 절차에 따라 72년 말 이전에 헌법질서를 정상화 시킨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 정치활동과 헌법 일부조항을 정지시키고 국민투표로써 개정안을 확정.

    72년 말 이전까지 헌법 질서를 정상화 시키는 것이 목적인 개정 헌법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당시 세계 정세가 얼마나 불안정 했길래 이런 극단적인 조치까지 취해가며 대한민국 안보를 지켜야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75년 공산주의국가인 월맹에 의해 패망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월남에 대해서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월맹과 월남은 1884년부터 시행된 프랑스의 전면적인 지배. 즉 식민지 상태였고, 중일전쟁(1937~1945)을 거치면서 사실상 일본군의 지배하에 있다가 

    다시 프랑스에서 베트남에 대한 지배권을 찾기 위해 파병한 군대를 기점으로, 호치민 세력(월맹)과 월남으로 나뉘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공산주의 세력과 자본주의 세력은 지속적으로 전쟁해왔으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들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음에도 별 진전이 없던 월남전은 미국이 수많은 미군 전사자로 인한 반전 여론에 밀려

    당시 미국 대통령인 리처드 닉슨은 1969년 7월 25일 괌에서 아시아 방위의 1차적 책임은 자국이 스스로 져야한다는 소위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습니다.

    1971년 미국은 베트남의 주둔 병력 50만 가운데 30만을 철수했으며, 이 때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3만 가운데 제 7사단 병력 2만이 함께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973년 프랑스 평화 협정이 맺어지면서 월남과 월맹간에 휴전협정이 맺어지고, 미국은 월남에 주둔했던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 년 후인 1974년 월맹은 기습적으로 월남을 공격해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월남의 수도인 사이공을 점령.

    이후 일 년간의 지속적인 국지전과 항쟁을 제압하고 1975년 베트남은 공산화되었습니다.

     

    당시 월남은 미국이 철수할 때 주둔하던 장비를 그대로 두고 철수하므로서 월남은 110만의 병력에 세계 공군력 4위로 평가될 정도의 국방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45만에 구식장비로 무장한 월맹에 의해 1년 만에 공산화된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1. 월남의 문화, 언론은 좌익세력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문화 평론가, 언론인등을 위시한 간첩으로 인해 반미, 반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았음.

    2. 월남과 월맹간의 경제력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에 월맹을 얕잡아보는 안보의식으로 인해 월맹의 기습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했음.

    3. 지속적인 반정부 시위와 여야의 정쟁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어, 월맹이 휴전협정을 어기고 처들어 왔음에도 내분이 지속되어 망했음.

    4. 당시 정치인, 경찰간부,군간부 등에 상당한 좌익세력이 침투되어 있었으며, 전쟁이 터지자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방위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음.

     

     

     

    유신 헌법은 1971년 미군 7사단이 철수할 당시 이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단행된 조치였으며,

    당시 민주화세력을 위시한 야권 정치인의 주도로 인한 반정부시위와 소요사태를 통제하여

    결과적으로 매우 비슷한 상황이었던 대한민국과 월남의 운명을 가르는 판단이었습니다.

     

    베트남전의 연이은 희생에 따라 미국 내 반전여론이 거세게 일면서 아시아 방위의 1차적 책임은 자국이 져야한다는 닉슨 독트린이 1971년 발표되었고

    그로 인해서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 7사단이 빠져나가며 당시 대한민국의 거의 유일한 전쟁 억제력이라고 볼 수 있던 주한미군병력 3만 가운데 2/3인 2만이 빠져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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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슨 독트린과 괌 독트린의 주요 내용

    - 미국은 더 이상 '세계경찰'이 아니다.
    - 베트남에서 철군해야 한다.
    - 미군의 아시아 개입은 축소하고, 아시아 국가들 스스로 스스로 방위하여야 한다.
    - 한국 전쟁 이후 4개 사단이 있었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1960년대부터 1971년에 걸쳐 2개 사단은 철수하였다.
    - 그리하여 1971년 이전 까지 미국 7보병사단과 미국 2 보병사단의 2개 사단만 남아 있었다.
    - 1971년 2월 6일, 최규하 외무장관과 포터 주한 미국 대사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후 3월 미국7보병사단 20,000여 명을 철수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C%A3%BC%ED%95%9C_%EB%AF%B8%EA%B5%B0#1953.EB.85.84_.7E_1971.EB.85.84_2.EC.B0.A8_.EC.B2.A0.EC.88.98


    2만명 철수. 남은건 미국 2보병사단뿐. 

    2 보병 사단(2nd Infantry Divison, 2ID또는 2nd ID)은 미국 육군의 조직 중 하나로 조선인민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중략

    대략 15,000명의 병사가 있다. 미 보병 2사단은 다른 육군 부대와는 달리 일부는 카투사로 불리는 한국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투사는 1950년 대한민국의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27,000명의 카투사가 미군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일했다.
    http://ko.wikipedia.org/wiki/%EB%AF%B8%EA%B5%AD_2_%EB%B3%B4%EB%B3%91%EC%82%AC%EB%8B%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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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지금 이정희처럼, 국론 뒤흔들며 치안을 어지럽히는 시위, 선동이 심해지자

    국가 위기상황을 선포하고 유신개헌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92.9% 투표율에 91.5% 찬성으로 통과되었습니다.

    다음 년도에 유신 개헌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73.1%였습니다.

     

    즉, 전 국민적으로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위기의식이 확산되어있던 시기에 필요한 조치였던 겁니다.

     

    그에 반해 우리랑 똑같은 처지였던 자유월남은 선동세력에 그대로 무너지면서

    미군이 전쟁 억지력으로 남기고간 공군장비탓에 세계 4위의 국방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미군 철수 후 불과 1년만에 사회주의 월맹에 패망하지요.

     

     

     

    우리나라는 당시 월남과 같이 야권 정치인의 정부 흔들기와 반정부적 정략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였으며,

    만일 베트남과 같이 미국이 완전히 철수했다면 언제라도 북한이 처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1972년의 유신헌법 제정 국민투표는 92.9%의 투표율에 91.5%의 찬성률을 보였고,

    1975년 2월12일에 실시된 유신헌법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도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라며 유신헌법에 정당성을 입증했습니다.

     

    유신 헌법 자체가 명백히 방첩활동을 위한 개헌이라는건 명백합니다.

    유신 헌법의 핵심은 국회 해산. 독재체제 들어가면서 정당활동 중단으로 선동세력의 영향력 제거입니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초법적권한이 주어지는 이유는 단연 국가수호에 있습니다.

    국가 위기상황일 시 대처가 느린 의회정치가 아닌 단일 리더로 국가를 안전히 방위하기 위함이지,

    그런거 아니면 대통령을 왜 뽑습니까? 정당한 사유의 개헌이었고 이후 독재체제에선 여러 문제가 발생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유신개헌의 정당성가지고 좌파들이 태클 걸 상황은 못됩니다.

     

    대한민국 국가체제를 수호하기 위해서 한 행위였고, 당대 국민 대다수가 높은 지지율로 통과시킨 법률개정을

    전쟁 겪어보지도 않은 놈들이 감내놔라 배내놔라 하는게 정상입니까?

     

    체제가 붕괴되는데 민주주의 타령하고 있을까요?

    유신헌법 개정으로 방첩할지 국가보안법 개정으로 방첩할지는 당대 정부와 국민이 선택할 일이지

    그걸가지고 유신헌법을 선택했다고 개지랄 하는 것들이 지금의 좌파새끼들입니다.

     

    좌파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과거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한 판단따윈 개나 주나봅니다.

    과거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좌파들이 그것을 부정할 자격이 있습니까?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1. 빨갱이 새끼들은 유신헌법이 박정희 개인 영리를 위한 독재체재 마련의 기반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당시 시대배경을 완전히 무시한 악랄한 농간입니다.

     

    2. 유신 개헌은 닉슨 독트린에 의해 주한미군의 2/3가량이 철수하면서 발생한 전쟁억지력 저하에 따라 당대 정부 및 국민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결정한 일입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92.9% 투표율에 91.5%의 찬성을 할 정도로 당시 정국 상황에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3.유신 헌법은 당대 정부와 국민 대다수가 높은 지지속에 선택했고,  유신헌법이든 국가보안법 개정이든, 그 방법은 당대에 결정한 것입니다.

    그걸 부정하는 좌파들은 과거 민주적으로 결정된 국민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며 좌파들은 이것을 부정할 자격이 없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92.9% 투표율에 91.5%의 찬성을 할 정도로 당시 정국 상황에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강제적으로 찬성하게 만들었느니, 반대한 사람들 쥐도새도 모르게 죽였다거나 두드려 팼다는 미친소리는 그냥 무시하겠습니다.

    투표안한 약 7% 국민과 반대했던 8.5% 중에 박정희한테 투표 안했거나 반대했다고 피본 사람이 있으면 제보해주세요.

     

     

     

    독재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고대 국가의 왕정 체제는 '독재' 입니다.

    세종대왕보고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 있습니까?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고요?

    박정희 시절 간첩들이 유언비어 퍼뜨리고 혹세무민해서 한반도 공산화 하려고 발악을 해대는데 그럼 가만히 놔둘까요?

    베트남처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자유 베트남이 왜 거지같은 군사력의 베트콩에게 점령 당했는데요?

     

    민주주의는 만민의 정치적 평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현재 인류가 이룩한 가장 '이상'에 가까운 정치체계이지만,

    우민화 정책, 대민영합주의, 중우정치라는 거대한 덫이 있어 항상 경계해야 하기도 하는 체제입니다.

     

    모 아니면 도의 '독재'는 견제수단이 없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니 지양하긴 해야겠지만

    박정희가 독재를 한 것이 서민들하고 무슨 상관 이지요?

    60~70년대 사셨던 일반 국민들 중엔 박정희 정권땜에 피해본 사람이 없는데요?

    박정희가 암흑의 정치를 폈으면 왜 우리 할머니와 아버지는 박정희를 존경하고 좋아합니까?

     

    근로자 착취했다고 하시는 분들은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근로자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오세요.

     

    그리고 박정희 시절 경제발전은 박정희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 덕분이라고 하시는 분들은

    왜 지금 박근혜 지지하는 어르신들보고 세뇌당한 늙은이라고 합니까?

     

    박정희가 독재한 것은 그게 농민 서민 등 일반국민들에게 무슨 피해를 줬는지 궁금하군요.

    아무리 찾아봐도 당시를 살던 사람들 중에 비판하는 사람들은 정치인하고 빨갱이 족속밖에 없는데요?

     

    솔직해집시다.

    요즘도 이석기 같은 '간첩'이 나오는 중인데도 이석기를 국가에서 '간첩'으로 만들어 뒤집어 씌웠다고 하는 세상입니다.

    진짜 이석기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정의로운 사람인데 박근혜가 방해된다고 간첩 누명을 씌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여기까지 읽진 않았을테지요.

     

     

     

    이제 박정희 독재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냉정하게 한소리 하자면, 박정희 18년동안 억울하게 죽은 사람보다

    노무현 5년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박정희의 독재로 피본 사람들 물론 있습니다.
    순수한 목적으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 들 중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만 했던 아픔의 희생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선동한 사람들은
    지금도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고 애쓰는 쓰레기 종북 세력들이며
    애초에 그들이 했던 민주화 운동은
    민주화 운동을 빙자해 국가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한 더러운 목적의 운동입니다.
    박정희는 그들을 때려잡아 대한민국의 평화를 유지시켰습니다.
    박정희가 때려잡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는 종북 세력들입니다.

    특히 박정희를 깔 때 인혁당 사건을 들먹이면서 박정희를 무슨 죄없는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 악마로 뒤집어씌우곤 합니다.

    박정희 인혁당 사건으로 까는 사람들 중에서
    노무현이 탈북자 22명 강제북송 시킨거 까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알고나 있겠냐만...
    하긴 알고있으면 존경할 리도 없겠지요.

    그런 인간쓰레기 노무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정작 빨갱이 때려잡다 불똥튄 사건인 인혁당가지고 죽일듯이 깐다는거지요.
    인혁당 사건은 빨갱이들을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법 사형을 내린 사건이며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 무죄 판결이 난 사건입니다.
    사법 사형을 때려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고 불똥이 튀어 일부 죄없는 분들이 고초를 겪은건 사실이나
    과연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만행을 저지른 노무현은 무슨 잣대로 평가하실지 궁금합니다.



    박정희를 까기 전에 김대중, 노무현을 존경하시는 분들, 잠시 김대중과 노무현의 만행에 대해 가르쳐드릴까 합니다.
    제가 말한 것중에 거짓이 있다면 신고해주세요.



    노무현은 빨갱이 박헌영의 아내인 주세죽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개 뻘짓을 벌였습니다.

    혈맹 미국의 동맹 관계를 악화시키고 북한의 종노릇을 자처하며 스스로 북핵을 비호하고 변호했습니다.



    2004년 11월, LA 방문시 발언

    " 북한 핵 주장 일리있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2004년 11월 15일  남미순방시

     북한은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면 핵 개발을 포기할 것이며 누구를 공격하거나 테러를 위해 핵개발을 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5년 1월, 연두 기자회견

    " 6자회담이 열릴 수 있는 조건은 성숙됐다고 생각한다. " 이 말을 한지 한 달 뒤, 북한이 핵 보유 선언 하였다.

     

    2006년 5월 9일, 몽골 방문 당시

    "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

     

    2006년 5월 19일, 중소기업인 초청 간담회

    " 북핵문제는 그것데로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다. "

     

    2006년 9월 7일, 핀란드 방문시

    "

    2006년 9월 28일, MBC 100분 토론

    (북한의 핵실험 가능성 질문에) "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 중이다."

    그러나 닷새 뒤인 10월 3일 북한 " 핵실험 하겠다." 성명 발표하였다.

     

    2006.12.07 호주방문당시 시드니동포 간담회

    “북한에 핵무기가 있다고 할지라도 한국의 군사력은 충분히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우월적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설사 핵무기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기지는 못한다”며

    “더욱이 정복은 불가능하며, 정복은 커녕 지배는 전혀 더 불가능하다."


    노무현은 북한이 주장하는 연방제통일,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를 그대로 이행시키려고 했습니다.
    문재인 역시 공약에서 저 3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탈북자 정성산씨가 북한에서 고초를 겪다 탈출해서 남한에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고 했습니다.
    근데 노무현은 정성산씨가 북한 실상 알리는거 못하게 살해 협박했습니다.


    노무현이 저런 인간쓰레기입니다.
    정성산씨는 노무현 시절 북한을 비판하는 뮤지컬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도 아니고 살해 협박을 받았습니다.
    이명박 정부부터 살해 협박이 없어졌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오히려 작품 제작을 독려했습니다.

    노무현은 전두환 정권 때 일어났던 칼기 폭파사건을 남한정부의 자작극이라 뒤집어 씌웠으며 범인 김현희도 살해 협박했습니다.






    우리나라 통일을 방해하고 병신같은 정책으로 6천만명 아사시킨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했습니다.
    뇌물시계를 받고 논두렁에 버렸습니다.
    온갖 청렴한 척 하다가 자기도 뇌물 받았다는 겁니다.



    권양숙 씨가 박연차씨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아이들을 위하여 미국에서 집을 사는 데’ 썼다고 노 전 대통령에게 실토했다는데
    이 이상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박연차가 노무현에게 준거지 70억 가까운 돈을 뭐하러 권양숙에게 줍니까?
    권양숙이 70억 받고 노무현은 모르게 입 딱 씻었다고요?

    가장 말도 안되는 개소리가 "뇌물은 권양숙이 받았지 노무현은 죄 없다"고 하는겁니다.
    노무현은 지 살자고 마누라 팔아먹은 아주 악독한 놈입니다.

    계속 마누라 팔아먹으려다가 검찰 수사과정에서 지가 받은 사실이 밝혀지니까 자살한겁니다.
    어려울 때 견디는 정치인이 진짜 정치인이라면서 떳떳하면 끝까지 수사를 받고 무죄를 입증했어야지 왜 자살합니까?

    자꾸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자살로 내몰았다고 생구라를 까는데
    그걸로 왜 노무현이 자살해야 합니까?
    죄있다고 그렇게 부르면 수사 다 받아서 무죄 입증하면 역풍 일어나는데 왜 자살했냐 이말입니다.
    타살설 음모론 얘기는 무시합니다.

    음모론 대로 누가 노무현을 죽였다고 해도 노무현이 죽으면 좋아할 사람들은 친노 세력 밖에 없습니다.
    지지율 5% 찍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할 정도로 욕만 먹던 대통령이 자살로 죽으니까 친노 세력들의 시체팔이로 이용되고
    갑자기 노무현을 죽인 세력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이라며 한나라당에 뒤집어 씌우는 쓰레기집단 하는 짓거리 안보입니까?

    노무현이 박연차 키워줘고 보답받은 전형적인 정경유착 비리인데
    아내가 그런게 맞다면 권약숙은 뇌물 받은 범죄자이면서 감옥도 안 들어가고 아직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네요.
    남편이 자살했으니 불쌍하니까 뇌물받은거 봐줘야 합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노무현은 등록금 부동산 값 폭등시켜서 서민 피눈물 나게 만들었습니다.
    김정일이랑 대화할때 김정일은 시종일관 반말인데 노무현은 시종일관 김정일한테 존댓말을 쓰며 굽신거리고
    좌우지간 김위원장 존경합니다. 이딴 말이나 지껄였습니다.
    김정일이 NLL 포기한다고 하니 "예 좋습니다" 발언은 유명합니다.

    방명록에 인민은 위대하다고까지 쓰고 북한체제를 존중까지 했네요.
    아직도 대한민국헌법에는 북한땅은 무장단체한테 점거당한 우리가 빨리 회복해야할 땅이라고 적어놨는데
    대통령이란 새끼가 북한의 체제를 존중해줍니다.

    박정희정권시절에 죽은 사람보다 노무현정권시절 죽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노무현 때 신변비관으로 자살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물론 노무현때 분신자살한 사람도 더 많습니다.
    박근혜 정권때 누가 분신자살했다고 박근혜 욕했지요? 문재인도 그사람 분향소 갔다왔더군요.
    문재인이 노무현 정권때 분신자살한 사람들의 분향소엔 과연 갔다왔을까요?

    외국인 지문날인 폐지한 것도 노무현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지문이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그 지문을 확인하기 위한 지문날인을 노무현이 폐지시켜 버렸습니다.
    거짓말 같지요?

    자국민은 지문 날인 전부 받는데
    노무현은 외국인이 '외국인 차별, 인권침해의 여지가 있다'는 참 신기한 논리로
    2003년 노무현과 강금실(전 법무부장관)이 외국인 지문 날인을 폐지했습니다.
    외국인 범죄율은 그 후로 급등했고요.

    2012년 1월 1일부터 이명박이 다시금 지문날인 시작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지문 날인을 하지 않아
    국내 외국인 중 절반밖에 지문이 등록되어 있지 않고(경기일보 2013년 7월 30일자 인터넷판),
    그동안 외국인 인권단체나 다문화 지원센터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문날인 부활해도
    외국인 범죄율을 줄이는데는 효과가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요.

    노무현은 탈북자 22명을 강제북송시켰습니다.
    과연 이 짓거리를 빨갱이잡기 위해 했었던 인혁당 사건에 견줄 수 있을까요?
    명백한 탈북자였음에도 강제북송 시켰습니다. 그후 22명이 어떻게 됬을지는 안봐도 비디오지요.
    떠밀려내려왔니 탈북이 아니니 개소리 하기 이전에 고기잡이배는 어린이 안 태웁니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세운 정부가 북한주민 그들이 북으로 돌아가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으로 돌려보냈다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인권을 그렇게 생각해왔다는 정부로써는 너무 무관심한 대처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연휴중에 넘어온 북한주민들의 신원과 경위를 충분한 조사를 통해 분명히 밝혀서 판문점에서 보도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돌려보내왔던 관행을 무시하고
    쫓기듯이 북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당시 표류했다고 해서 북한이 넘기라고 했었는데 남측 사람들 면담할땐 귀순한다고 하다가 북한에서 지들도 면담하겠다고 우겨서 면담 시켜줬더니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번복해서 보내준 사건입니다.
    당연히 북한이 협박했을 것이고 노무현은 북한 심기 건드릴까봐 그냥 보내줬을테지요.

    귀순자로 보도되다가 갑자기 번복해서 돌아갔던 사람들입니다.
    남한테 내려왔던 북한 미녀응원단도 남쪽물을 먹었단 이유만으로 수용소로 보내진 곳이 북한입니다.

    가장 역겨운 행위는 북한에 수조원을 갖다바치고 그것을 정당화 했으며
    625전쟁 당시 국군이 피땀흘려 지켰던 서해 NLL을 북한에 상납하려 했다는 겁니다.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려 온  노무현·김정일 NLL대화록 폐기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나왔을때 결과는 간단했습니다.
    “노무현 前대통령 지시에 의한 의도적 삭제·파쇄”


    도데테 얼마나 김정일한테 굽신거렸길래 대화록 초본을 삭제를 했을까요?
    삭제된 대화록은 없애도 되는게 아닙니다.
    문서번호가 찍혀 있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보존돼야 할 문건입니다.
    연산군도 건드리지 않았던 기록물을 한나라의 대통령이란 놈이 폐기를 시켜버렸습니다.



    이번엔 김대중의 만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다 죽어가던 북한을 살린 햇볕정책

    북한은 전통적으로 소련과 중국이라는 두 국가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하면서 양쪽에서 듬뿍 지원을 받아서 국가를 꾸려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 소련이 망하면서 밥줄은 중국 하나로 줄어들었고,  

    그동안 북한의 양다리를 못마당하게 보던 중국이 지원을 줄이면서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최소 300만명 이상이 아사했습니다. 2000만명 사는 곳에서 3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것은 국가의 시스템을 상실했다는 뜻입니다.(사실상 국가가 아닌 범죄조직)

    그렇게 멸망 직전의 북한에 다리를 놓아준 것이 김대중의 햇볓정책이며, 이로서 북한은 중국 Vs. 대한민국과 미국이라는 양대 세력 사이에서  

    양다리외교를 재개하면서 신나게 뜯어먹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요.

     

    악질좌파들은 김영삼의 대북지원에 대해서 날조해서 말하는데, 김영삼은 북한에 직접 돈을 준게 아니라 KEDO라는 국제적인 기구에 돈을 줘서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도록 한 겁니다. 김영삼이 준 돈으로 북한이 얻은건 건설 자재들하고 짓다가 만 시멘트 건물 뿐입니다.

     

    2. 국민연금 의무가입

    좌파들은 노태우가 국민연금을 실시했다고 짖어대는데, 노태우때의 국민연금은 자유가입이었습니다. 그걸 의무가입으로 만든게 김대중입니다.

    김대중은 의무가입 실시에 따른 국민들의 저항을 줄여보고자 적게내고 많이받는 식으로 만듬으로서 이후세대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지요.

     

    3. 의약분업

    의사도 죽고, 환자도 죽어나고, 약사만 노가 난 의약분업은 김대중이 실시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약사가 '식후 30분에 드세요' 이거 한마디 하는데 님들 주머니에서 수천원씩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4. 대한민국 공산화

    전교조 합법화, 각종 빨갱이 단체들 합법화, 시민단체 육성 등 빨갱이가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국정원의 대공인력들 수백명 해고, 북한의 우리 정부원들의 정보 북한에 알려줘서 30년간 만든 대북 휴민트를 붕괴시켰지요.

     

    5. 교육멸망

    이적단체인 전교조 합법화, 이해찬세대 이 두개로 대표되는 교육삽질의 시작입니다. 

    대학 등록금이 대폭 오르기 시작합니다.

     

    6. 지역감정 만듬

    좌빨들이 정치적으로 지역감정을 만든건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했다고 구라치는데 실제로는 1967년부터 신민당이 만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1987년 선거에서 4자 필승론을 외치면서 민주세력의 뒤통수를 치면서 독자출마하여 현재의 지역구도를 만들었다는 큰 죄를 저지릅니다.

    지역감정에 대해선 밑에서 추가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7. 빨갱이 보상법

    민주화운동 보상법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빨갱이들의 명예회복을 하고 국고를 쓰레기들에게 부어버립니다.

    광주사태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주어지던 적절한 보상에 반발하여,  

    광주민주화운동 보상법을 개정하여 두당 억대까지 보상하게 했습니다. 

    625전쟁 참가한 군인들보다 더한 혜택을 받고 있지요.

     

    8. 매국 

    친일 : 일왕을 천황으로 공식화하고, 전범 히로히토의 무덤에 참배하였으며, 독도 수역을 일본과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친중 : 이어도 수역을 중국과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9. 빅딜

    대표적인 것이 규모가 큰 우랑 기업인 LG 반도체를 상대적으로 작고 부실한 현대전자에게 넘겨준 빅딜로서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나라를 말아먹을뻔 했습니다. 

     

    10. 부패

    본인은 군사정권에게 수십억 받아서 신당창당해서 잘먹고 잘 살았으며 

    자식들인 홍삼트리오는 신나게 돈 받아 처먹다가 감방에 감으로서 임기 1년전부터 레임덕 상황에 빠집니다.


    친일행위는 위에서 설명했으니 넘어갑니다.



    이제 동일한 잣대로 박정희를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정희 시절 살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박정희 시대를 마치 지옥의 암흑기마냥 묘사하곤 합니다.
    그런데 제 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때 살기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도 않고 그 시절을 겪은마냥 행세하며
    박정희를 욕하는 새끼들은 욕할 자격이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죽은 사람들입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사실상 별로 없는거 같은데요?



    가끔 정신나간 좌파들은

    경제발전 안했더라도 차라리 좀 가난하게 살면서 민주주의국가로 가는게 낫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세계의 총 사망자 중 1/3이 빈곤 때문에 사망하며

    12억 이상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갑니다.

     

     

     

    극단적으로 보이십니까?

    625 전쟁 직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습니다.(당시 세계 2위, 1위는 인도)

     

     

     

    옛날엔 모든 국민들이 잘먹고 잘살기만 해도 왕이 성군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이 굶어죽을 걱정을 하고 있나요?

     

    박정희는 한반도를 반만년간의 만성적인 굶주림에서 해방시켜줬으며

    한국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대국으로 만들어준 영웅입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조차 당시 전국의 인구가 69만이었는데도

    특수한 계층을 제외하고는 의식주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조차 굶어죽은 백성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4. 영웅으로 칭송받는 위인들

     

    호세 데 산 마르틴

     

    스페인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 출신. 칠레와 페루의 해방자이자 페루의 초대 대통령.
    아빠가 스페인 군인인데다, 스페인으로 이민가서 귀족 학교에서 유학함.
    1791년부터 1811년까지 무려 20년간 스페인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여러 전쟁에 참전해 스페인에서 훈장까지 받음.
    1812년에 군에서 제대한 후에 남아메리카 독립군이 돼서 스페인군을 물리치고 칠레와 페루를 독립시킴.

     

     

     


    시몬 볼리바르


    스페인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출신.
    '남아메리카의 조지 워싱턴', '해방자(El Libertador)'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베네수엘라의 해방자이자 초대 대통령.
    아빠가 존나 부자인 카카오 농장 대지주였던 '기득권', '상위 1%' 집안 아들로 태어남.
    14살 때 스페인군 사관학교에 들어가서(이 시대엔 어느 나라나 중딩 나이에도 사관학교 입학 가능)
    스페인군 준위가 됨(원사 위에 존나 높은 그 준위 말고, 소위보다도 아래인 쩌리 개념이었던 준위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을 배우고, 남아메리카로 돌아온 뒤 독립운동가가 됨.
    독립전쟁에서 무슨 盧로호처럼 두 번 연속으로 스페인군한테 운지당하고도 근성으로 세 번째 전쟁에서 독립 성공해서
    남아메리카 북쪽에 그랑콜롬비아 공화국을 세움.
    대통령이 된 후 독재까지 해가면서 공화국 분열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결국 분리주의자들 때문에 다 쪼개져 나가고
    병걸려서 '혁명을 위한 우리의 싸움은 바다에서 쟁기질을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으앙 주금.

     

     

     

    모한다스 간디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출신.
    인도 독립운동가, '인도의 아버지', '마하트마(위대한 영혼)'
    아빠가 인도 식민지 지방 장관이었던 존나 '매국노(?)' + '상위 1%' 집안 출신.
    런던대학교로 유학가서 법학을 공부함.
    남아프리카에 이민가 살면서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하다가 1900년에 보어 전쟁이 터지자
    영국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인도인 자원자들을 모아 의무병 부대를 만들어서

    자원입대해 영국 정부에게 훈장을 받음.
    1906년에 남아프리카 줄루족과 영국이 전쟁을 벌이자 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함.

    레알 군대 두번감.
    1차 대전 때는 인도인들한테 영국군으로 참전하라는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벌임.
     

    '사티아그라하(비폭력 무저항)'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침.
    독립 후에는 인도의 분열을 막으려다 미친 힌두교 광신도 사이코한테 암살당함.

     

     

     

     

     

     

     

     

    (  )는 사업에 실패하여 몇십 년간 빚에 시달린 무능한 인간이었다.


    (  )는 공식석상에서 "나는 흑인을 유권자나 배심원으로 삼으려 한 적도 없고,

     

    흑인에게 공직을 부여할 생각도,  백인과 결혼을 허용할 생각도 없다."라는

    무지막지한 망언을 했다. 

     

    (  )는 내전 중에 자신을 비판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사설을 실은 신문회사 수백 개를 폐간시키고
    언론인들을 체포하거나 폭도들을 선동해 두들겨패게 만들었다.

    (  )는 인신보호영장의 정지를 선언하여 전쟁이나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법적 절차 없이 깜빵에 쳐넣을 수 있게 만들었다.

     

     


    (  )의 정체는...

     

     

     

     

     

     


     

     

    미국 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
    노예 해방을 선언한 대통령,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

     

    유신독재의 원조 링컨 기념관 out!!! 독재자 후빨하는 양키들 노예근성 좀 보소 ㅉㅉ

     

    미국의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순위에 항상 나오는 링컨은 독재자였습니다.

    300여개의 언론사를 문 닫게 했으며 대법원장에게 권력으로 압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이 그를 판단 할 때는 '시대성'이라는 것을 판단합니다.

    그가 살아 있는 시대에 왜 그러한 판단을 했는지 시대성을 고려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은 시대성을 판단 하지 않고 단지 그 결과 만을 판단하고 봅니다.

    이건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는 하등한 판단일 것을 생각 하지 못합니다.

     

     

     

     

     

     

     

     

     

     

    (  )는 자기가 죽을 때까지 15년간이나 대통령을 해먹은 종신집권 독재자이다.

     

     


    (  )는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터번을 쓰는 전통을 버리고

     

     

    서양식 모자를 쓸 것을 강요했으며
    이에 항의시위를 벌인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수백 명을 사형에 처했다.

     

     


    (  )는 자신이 암살을 당할 뻔한 사건을 구실로 삼아 반대파 정적 수십 명을 체포했으며
    이 중 3명만이 암살을 기도한 증거가 발견됐음에도 마구 사형과 징역형을 때렸다.

     

    이 때 사형수들은 자기가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로 끌려가 교수형을 당했다.

     


    (  )는 쿠르드족 같은 소수민족들에게 일제시대 내선일체 정책급 탄압을 가했다.

     

     


    (  )는 세계의 모든 언어의 기원이 우리나라 말이라고 우기는 "태양언어 이론"을 스스로 만들어환빠스러운 역사왜곡을 국가 차원으로 저질렀다.

     

     


    (  )의 정체는...

     

     

     

     

     

     

     

     

     

     

     

     

     


     

     

    아타튀르크(터키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터키 초대 대통령. 1차 세계대전의 명장,

     

     

    전쟁 후 연합군의 점령계획과 그리스의 침략을 무찌른 구국 영웅.
    개슬람 막장 신정국가였던 터키를 남녀가 평등한 근대국가로 다시 세운 근대화의 아버지.

     

     

    터키에서는 독재자 아타튀르크 out!!! 했다간 구속이라면서요? 진짜 미친 나란듯;;;

     

     

     

     

     

     

    (  )는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아편전쟁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원수의 나라 영국에서 유학을 하였다. 

     


    (  )는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청일전쟁 때 중국과 싸웠던 원수의 나라 일본으로 망명했으며
    망명 시절 그와 친구가 된 일본 정치가 이누가와 츠요시는 훗날 일본 수상이 된다.

     

     


    (  )가 조직한 중국혁명동맹회에는 일본 극우파 인사들이 여럿 가입하였다. 

     

     


    (  )는 일본의 제도와 문물을 차용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식민지도 아니었던 당시 중국에서 일본식 이름인 '나카야마 쇼우'를 자랑스럽게 썼다.

     

     


    (  )는 아내와 이혼하고 26살 연하인 친구의 딸과 재혼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였다.

     

     


    (  )의 정체는...

     

     

     

     

     

     

     

     

     

     

     

     


     

     

    '중국의 아버지' 쑨원
    중국과 대만에서 모두 국부로 추앙하는 혁명가.

     

     

    추가적으로 보시려면 이곳을 참조해 주세요.

     

    좌좀들의 기준에서 봤을때 개새끼가 되는 위인들

    http://blog.naver.com/teraness/60185386931

     

    핀란드의 독재자 케코넨

    http://blog.naver.com/teraness/60204852083

     

     

     

    좌파들이 박정희를 친일했다고 까면 위의 반박 자료를 보여주시고,

    독재했다고 까면 그보다 더 했던 사람들을 보여주세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 10위권의 대국으로 만드는데

    30명 정도의 희생밖에 안 만들었다는건 진짜 대단한 겁니다.

     

    박정희가 죄없는 사람 혹시 수천 수만명 죽인걸로 알고 계셨나요?

    그것 역시 좌파 세력의 농간입니다.

     

    이순신의 부하들은 해전에서 전사한 수보다 이순신에게 죽은 숫자가 더 많을 정도로

    이순신은 군법이 엄격했습니다.

     

    위에는 북한이 호시탐탐 남한을 노리고 있고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있는데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저절로 무너졌을 겁니다.

     

     

     

     

     

     

     

     

     

    “박정희 위인이라더라” 야당 총재에게 말했더니

     

     

    2009-05-25장경순(전 국회부의장ㆍ제18대 농림부장관)
    ▲1972년 9월 14일 남북한적십자사 대표단의 현충사 방문을 안내하는 노산 이은상(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 국가기록원

    노산(鷺山) 이은상 선생은 생전에 나하고 각별한 사이였다. 우리는 서로를 좋아해서, 내가 그 분을 자주 찾아뵙거나 그 분이 우리 집에 놀러오기도 했다.

    또 한번은 노산선생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국회도서관장을 역임한 강주진 박사와 함께 병문안을 갔는데, 병석에서 일어나 앉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 이 양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인물 중에 위인을 꼽는다면 꼭 세 분이 있소. 한 분은 세종대왕, 한 분은 이순신 장군, 그리고 또 한 분은 박정희요.”(대통령이라는 직함도 빼고)

     

    그 느닷없는 말에 나하고 강 박사는 조금 어이가 없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노산선생은 그 세 분이 어째서 우리 민족의 추앙을 받아 마땅한 위인이며 그 실제의 타당성은 어떤지에 대한 나름의 평가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세종이 어째서 성군이고 위인인가. 한글을 창제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어째서 성웅이고 위인인가. 왜적을 물리쳐 나라와 백성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종과 이순신을 합친 것보다도 더 월등한 업적을 쌓은 위인이 바로 박정희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훌륭한 업적이지만, 그를 성군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성군이라면 정치를 아주 잘했다는 최대의 찬사인데, 세종이 과연 그런 칭찬이 합당할 만한 정치업적을 쌓았는지 의문이다. 정치를 잘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백성들이 모두 등 따숩고 배부르게 해주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당시 전국의 인구가 불과 250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계층이 아니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한 실정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 때에 굶어죽은 백성들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오니 성군이란 칭찬이 무색하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박정희는 1961년에 혁명정부를 세우고 불과 20년만에 우리 국민의 숙원이던 보릿고개 극복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경제개발계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세계 각국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놀라며 칭찬할 만큼 우리 국민을 잘 살도록 만들어놓았다. 박정희는 다른 방면으로도 특출한 업적을 많이 쌓았지만, 이 경제문제 하나만으로도 세종보다 월등 위인 소리 들어 마땅하지 않은가.

     

    이순신은 임금으로부터 버림받아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면서 스스로 거북선 만들고 각종 무기도 개발해 왜적과 23번 싸워 23번 모두 승리한 업적을 세웠기에 성웅이고 위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어떤가. 1961년 집권 당시 우리나라는 북한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훨씬 열세였다. 그렇던 것이, 이제는 김일성이 감히 싸울 생각을 못할 정도로 남과 북의 처지가 백팔십도 바뀌었다. 전쟁에서는 피 흘리지 않고 이기는 면승(免勝)을 제일로 꼽으니만큼, 그런 면에서 박정희가 이순신보다 월등한 업적을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정희를 세종과 이순신을 합친 정도의 위인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노산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보다도 논지의 정연함과 탁월한 지식에 탄복하고 말았다. 나뿐 아니라 같이 문병을 간 강주진 박사도 마찬가지로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 나서 나는 여기저기서 노산선생의 이야기를 이따금 했다.


    한번은 이민우 신민당 총재한테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듣고 있던 이 총재가 발끈해서 그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냐고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무안해져서 말했다. 
    “그거야 총재님 생각이지요. 저 역시 백 프로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노산선생이 하신 말씀을 옮긴 것뿐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그런데, 이튿날 이민우 총재가 일부러 내 방에 찾아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젯저녁 집에 가서 곰곰 생각해 보니까 장 부의장 말씀이 백번 옳습디다. 지금 야당합네 하며 목소리 높이는 젊은 친구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노선에 서 있소이다만, 이 친구들 정치하는 거 보니까 우리 야당 하는 사람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어요. 노산선생이 바로 평가했어요. 박 대통령은 위인 반열에 올라 손색이 없는 분이오. 어제 괜히 싫은 소리 한 거 사과하리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깜짝 놀라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하, 우리 야당에도 이런 인물이 있구나. 정치인으로서 마음의 자세가 참으로 훌륭하구나. 사람은 누구나, 특히 정치합네 하는 위치에 있으면 한 번 꺼낸 주장은 설령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끝까지 뻗대며 고집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기가 틀렸다 싶으니까 곧바로 정정하고 사과하지 않은가.


    나는 그 순간부터 이민우 총재라는 인물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그 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헌정회장으로서 장례식에 참석해 그 일화를 곁들인 조사(弔辭)를 읽었다.

     

    내가 아는 정치인으로서 솔직담백하게 자기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을 줄 아는 단 두 사람, 그 한 분이 장택상씨였고, 또 한 사람이 바로 이민우씨였다. ◎

     

    시조시인 이은상

    노산 이은상 - 시조시인

     

    연세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1977년 대한민국 건국포장

    1973년 5.16민족상

    1969년 한글공로상 

    1981.01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1980.12 광복회 고문 

     

     

     

     

     

     

     

    좌파들 중에는 박정희가 여대생 끼고 술잔치 하며 여대생 따먹었다고 음해하는 악질도 있습니다.

     

    박정희 여대생끼고 술마셨니 뭐니 이딴 시덥잖은 걸로 까는 좌파들 중에서

    김대중의 혼외자식 건으로 김대중 까는 사람 또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도덕성 밥 말아 먹은 김대중을 찍어준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시덥잖은걸로 까면서 정작 박정희를 초월할 정도로 악행을 저지른 김대중과 노무현에 대해서는 입을 꼬매버립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래 잘 부르는 여대생 불러 술따라 마신건 사실이나 여대생을 따먹었니 뭐니 하는건 전부 음해입니다.

     

    우리들은 이미 연예인들이 정치인들 술자리, 사업가들 술자리에 관행적으로 소개받으며 다녔던 때가 있었다는

    여성 연예인 브로커 들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술좌석에 불려 나가기를 자주 하는 연예인이 있고 거절하는 연예인들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가 정말 싫은데 강제로 끌려 나갔다면, 게다가 강간까지 당하였다고 친다면,

    그녀들이 지금 이 시대에 오기까지 일절 발설을 한 번 안 하고 지나왔을까요?

    특히나 박정희의 과거사 들추기에 혈안이 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

     

    그녀들은 시장에서 사용되는 여자들 이고  박 대통령은 그 어느 곳의 시장엔가 사용되는 여자를 궁정동 시장에 불러다 사용한 것에 불과합니다.

    여대생이랑 술마셨으니까 존나 개새끼다?

    여대생 따먹은 것도 아니고 술따라 마시게 한 것보단, 혼외자식 싸지른게 더 악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스리갈 시바스리갈 거리는데 그 시바스리갈 5만원도 안 하는 서민 양주입니다.

     

    술자리에서 여자애들이 술따라 주고 그런건 7~80년대 대부분의 술집에선 어찌보면 당연시 해온 풍습아닌 풍습이였고
    지금처럼 여성 인권 어쩌구 하는게 없었으니 술집에서도 고위직오면 이쁘고 젊은것들 보내는게 당연시 된 겁니다.
     

    그당시에는 나이 많은 고위층 인사라면 좀 편한 자리인 요정에서 만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러면 편한자리에 술상을 민간인마냥 지네들이 술 주고받거니 할까요?
    당연히 따라주는 사람이 있지... 그걸 따라준게 거기서 일하는 여대생인 겁니다.

     

    7~80년대 요정정치는 그냥 퇴폐적인 관습중 하나입니다.
    김영삼도 그랬고 대중이도 그랬고 저땐 그게 정치의 한 형태였지요.

    진짜 꼴통좌파들만 물고늘어지지 약간이라도 제정신인 좌파라면 언급조차 안합니다.

    왜냐면 그땐 그게 관습적인 정치의 한형태였고 지들도 다 그랬으니까요.

    좌좀 병신들이 하도 꼬투리 잡을게 없어서 잡고다니는겁니다.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줄도 모르고요.

     

    근데 박정희는 여대생을 따먹은 적이 없지만,

    김영삼, 김대중은 따먹은 적이 있는데다 혼외자식까지 있네요?

     

     

     

    “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경제적으로 나라의 발전을 많이 이루고 국민을 위했던 분입니다.

    사건 현장에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괜찮아’라고 한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의연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었어요.”

     

    -궁정동 여인 신재순-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487974&cloc=olink|article|default

     

     

     

    술 담배 안하고 채식하고 평생 한여자만 바라봤던 지도자랑

    술 담배 여자를 무척 좋아하고 매번 연설 때마다 말썽을 피웠던 인물이랑 누가 더 위대해 보이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입니다.

     

    히틀러는 술담배 안하고 채식광이고 한여자만 바라봤으며

    처칠은 술담배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연설 때마다 말썽을 피웠습니다.

     

    처칠은 화학무기 사용 자제협약을 무시하고서라도 독가스를 독일 전역에 살포해야된다고 연설까지 한 인물입니다.

    똑같이 단편적인 면만 봤을 때 처칠은 무척 사생활도 문란하고 인륜적으로도 옳지 않은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처칠은 위대한 위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구는 만주 일대를 폭격해야한다고 주장한 인물입니다.

    좌좀들 입장에서 김구는 몸소 행동하는 과격파 '극우'인데 암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들 편인줄 압니다.

     

     

     

     

     

    5. 가난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가난을 겪어봐야 안다.

     

     

     

     

     

    지금 경제발전으로 인해 개나소나 집집마다 컴퓨터 있고 핸드폰 있고 자동차 가진 나라가 되었는데
    자기가 그때당시 산업화의 세대도 아니면서,
    지금 편하게 누릴 거 다 누리면서 박정희 욕하는 새끼들 솔직히 말해서 그냥 병신같습니다.
    모르고 욕하는 것이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소위 못사는 가난한 국가는
    별거 아닌 자연 재해에 수천 수만명이 죽으며
    별거 아닌 질병에 역시 수천 수만명이 죽습니다.

    치안?
    막장입니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는 사실상 치안이 엉망입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절대 민주주의니 복지니 그딴거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인도 여행을 왜 자제하라고 하는지 아나요?
    그곳은 치안이 엉망이고 범죄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제 친할머니는 625전쟁 당시 부산에서 살고 계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처에 깔렸기 때문에 항상 도둑들이 들끓었다고 합니다.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민주주의?

    명심하세요.

    박정희 아니었으면 아프리카같은 빈민국과 동급인 나라였을 겁니다.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상위 1%만 가졌을 겁니다.
    컴퓨터는 꿈도 못꾸고 지금쯤 다들 밭갈고 있었을 겁니다.
    걸핏하면 별거 아닌 질병에 수천 수만명이 죽었을 겁니다.
    살인 약탈 방화 이런게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개나소나 스마트폰 가지고 다닐 일은 없었을 거란 말입니다.




    의식주가 인간 생활의 기본인데 그걸 해결해준 사람한테,
    배고플 때 굶지 않게 해준 사람한테 몇가지의 결점으로
    (결점도 찾아보니 전부 날조에다 진짜 결점이라곤 별로 없네)
    엄청나게 큰 업적을 깎아내리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독재로 수십명 죽은것은 분명 과오입니다.

    하지만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날조로 거짓선동을 일삼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습니다.


     

     







    박근혜 투표 당시 박근혜를 뽑아준 사람들 대부분은 5,60대의 어르신들이었습니다.

    박정희가 독재로 국민들을 괴롭혔다면 과연 어르신들이 박근혜를 뽑아줬을까요? 

     

    아, 어르신들이 존나게 무식해서 국민들을 괴롭힌 박정희 딸 박근혜한테 그렇게 투표를 많이 했구나 ㅎㅎ


    좌파 벌레새끼들한테 박근혜 뽑은 어르신들은 그저 못배우고 세뇌당한 빨리 뒤져야 할 늙은이일 뿐입니다.





    http://blog.naver.com/teraness/60178414730 - 좌파들이 생각하는 어르신 (혐오주의)

     

     

     

     

     

     

     

     

     I would remind you that extremism in the defense of liberty is no vice.

     

    And let me remind you also that moderation in the pursuit of justice is no virtue.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극단적 행위는 악이 아닙니다.

     

    또한 정의를 추구하는 데 온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Barry Goldwater

     

     

     

     

     

    삼대가 선교를 했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우리 조상들은한국을 많이 도왔지만 저는

     거꾸로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저에게 도움을

    주신 분이 여기 앉아계십니다.

     

    5·16혁명과 박정희 대통령의정책 때문에 .하나님께 제일 감사하고,

    대한민국을 잘살게 한 박정희대통령에게 철이 들고 난 후에야 감사함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전라도에서 그 당시에는 김대중 선생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좀 난센스 같지만 제가 노대통령 취임 5일 만에 이북전문가로 비밀리에 만났습니다.

    이제는 얘기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확인시켜드리는 일입니다.

     

    노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야 이북에 대해서 이해를 하실까?’

    엄청 고민을 하고 노대통령께 말씀드렸습니다.

     

     “이북의 상황은집안에 정신박약아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상황이 골치 아픕니다. 그러니까 10년, 20년 갈 수 있는 아주 단단한 정책을 펴셔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정책을 펴시면안 됩니다.

    냉정한 이성으로 정책을 펴십시오.” 이렇게 제가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제 얘기를 딱 10분 듣고 질문을 . 하는 거예요. “우리가 잘하면

    그이들도 우리에게 잘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하면 핵도 포기하고···”

     

     

    그 사람들 핵 포기 안 합니다. 절대로 포기 안 합니다.

    숨어서 몰래라도 핵을 만듭니다.” 했습니다.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그.들한테 잘해 주면

    그들도 우리한테 잘할거라는 그런 오해, 그런 잘못된 생각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분 얼굴이 벌겋게변하고 누구를 부르더니

    담배를 갖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저는 혹시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어렸을 때 박정희 대통령께서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새마을 사업을 일으키면서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 그 생각과 그 사상이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개성에서 평양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

    안내원이 “남조선이 우리보다 좀 앞선 것을 얘기해보라우!”

    그러더라고요. ‘좋다. 무엇이든 물어봐라, 다 이야기해주마.’ 이런 심정을 가지고

    이 사람한테 40분을 강의를 했어요.

    “첫째, 우리가 잘사는 까닭은 박정희 때문이다. 박정희 다음은 당신 정주영 알지 않느냐?

    정주영만 있는 게 아니었고 거기 이병철도 있었다. 박태준도 있었다. 여러 사람이 박정희로부터 특명을 받고

    특혜를 받고 엄청난 공장들을 세우고 국가를 발전시켰다.

    나는 전라도에서 컸기 때문에 사실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너무 너무 너무 잘 몰랐다.

    박정희가 위대한 사람이었다. 중국이 오늘날 잘살게 된 것도

    박정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저렇게 잘산다.

     

    중국도, 싱가포르 이광요도 박정희사상을 배운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위대한 사람이다.

    뭐 인권문제 가지고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기본 생계가

    보장되어야 인권도 논할 수 있는거다. 남조선에서 보릿고개를 없애 준

    사람,그게 박정희다.”

     

    “두 번째, 잘살게 된 까닭은 남쪽에 있는 근로자들 때문이다.

    구로공단에서 16시간씩일했다. .잘 살려면

    돈을 모아야 된다. .. 그래서 돈을모으기 위해서 16시간씩 공장을돌리고 심지어 여자들이 머리카락까지 팔았다.

    뼈를 깎는아픔을 겪었다.

     

    세 번째, 남조선이 잘사는 이유는 한국의 여성들 때문이다.

    근면·절약정신. 당신 한국 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아냐?”

    그건 공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여자들이근면·절약 정신교육.

    이런 걸 우선시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다.”

     

    세 번째 여자들! 우리 어머님들 때문에 잘산다.”

    그렇게 얘기했더니 이 양반이뭐 좀 시큰둥해요.

     

    “줄 잘 섰디뭐?” 갑자기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거 무슨 얘기요?” 했더니 “남조선 아이들은 미국 뒤에 줄섰고,

    우리는 소비에트 러시아 뒤에 줄 서가지고 이렇게 돼버렸다.”

    중국 얘기는 하지도 안합디다.

    그래서 내가 그 보고 질문을 했어요.

    “그러면 필리핀은 미국 뒤에 백 년 전에 줄을 섰는데 왜 이렇게 못살죠?”

    (웃음)

     

    한국 사람들에게 아부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말합니다.

    미국에 이민가면 한국 사람들이 1년이면 80% 이상이 새 차를 사요.

    5년이면 80% 이상이 새 집을 마련해요. 미국 사람들은 30년이 돼도 그걸 못해요.대단한 일입니다.

     

    제가 ..좋은 얘기 많이 했죠? 나쁜 얘기 좀 해도 되겠죠?

     

    지금 한국 사람들이 보수와 진보,좌와 우, 모든 사람들이 소모를 하고 있어요.

    성숙하면 타협을 해야 돼요...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돼요.

     

     

     

    링컨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보다 백 배 더 독재했습니다.

     

    신문사 300개문닫았어요. 주의회를 재판도 안하고 연금을 시켰어요.

    대법원장 불러 가지고 “당신 까불면 감옥에 넣어 버리겠다!” 했어요.

     

    남북이 나눠지고 전쟁이 날 것 같으니까 링컨조차도 그런 극단의 처방을 냈어요.

    미국 사람들은 사람의 업적을 평가할 때 '시대성'을 감안한 평가를 하는데,

    대한민국은 당시의 '시대성'은 배제하고서 오늘의 잣대로 옛날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박정희 대통령은 기념관이 없어요. 이거 바뀌어야 됩니다.

    미국사람들은 링컨이 잘못한 부분은 땅속에 묻어 버렸어요. 미국 방문해 보셨죠?

    워싱턴 링컨기념관에 가보면 링컨이 예수님 다음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되어 있어요. 아쉽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업적을 냈을 때, 이순신장군 어떻게 했어요? 왕이 감옥에 넣어 버렸어요.

     

     

    그렇죠? 사촌이 땅을 사면 유태인들은 잔치를 벌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세력이 그만큼커졌기 때문에 배 아프기는커녕 잔치를 벌여야 될 일이에요.

    남 잘 된 것을 축복해 주고축하해 주고 그런 문화로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세브란스에서 공부 잘 못하고 해서 꼴등하다시피 했는데 미국에 가서는 세브란스에서교육받은 덕분에 

    제가 중간이 아니라 우수한 쪽에 들어갔어요. 그게 세브란스 교육이에요.

    나가서 힘을 겨뤄보니까 까짓것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박정희 어른이 기초를 닦은 대한민국의 희망을 얘기하겠습니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면 재미없으니까 마지막으로 여러분한테 이북에 대해 얘기하겠습니다.

    이북 사람들이 선택을 잘못해 가지고 이북이 어떻게 저렇게 망가졌는지…. 전쟁 전에는 평양이 서울보다 더 잘 살았다고 그래요.

    전기도 남아돌아가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해서 이렇게 됐는지…. 김일성이 이렇게 나왔어요.

     

    “머슴과 지주를 없애겠다.” .첫째 희망은 조선사업입니다. LNG선을 영하70도, 그 액체 LNG를 보관할 수 있는 조선소기술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최고입니다.

     1 위예요. 특허가 있어서 흉내도 못 내요. 극비입니다. 그런 것입니다.

     

    포항제철에서 박태준의 후배들이 지금 철을 만들어내는데 전세계적으로 거치는 코크스(Cokes)라는 그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철을 만듭니다.

    아무리 철 값이 떨어져도 생산능력있고 수익이 남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IT산업. 전 세계에서 고속인터넷이 제일 완벽하게 깔린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이게 제 마지막 비판이자 칭찬입니다.

    삼성전자가 지난 5년 동안에 소니(Sony)를 앞섰는데 최대 10년을 앞섰답니다

     

    삼성, 대단한 기업입니다. 누가 만들었죠? 

    기아자동차가 미국의 최악 불황일 때 최악의 지난 1년 동안 미국자동차 시장점유율을 6% 올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

     

    그사회는 머슴과 지주가 당원하고 인민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97%가 소위 인민입니다.

     

    3%가소위 그 사람들이 없애겠다는 지주 쪽에 들어갑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통일이 아쉬운 것은 하나밖에 없어요. 

    이산가족! 지금 나이들이 많아요.

    이산가족들이 그 유일한 인맥이에요.

     

    (중략)

     

    소중한 이 국가를 잘 지켜야 합니다. 귀국해서 나중에에 연희동 공중목욕탕에 갔는데 아주 불이 훤하더라고요. 갑자기 청진 생각이 나는 거예요.

    찬물도 퀄퀄 나오고 더운물도퀄퀄 나오고…. 제가 벽을 보고 혼자서 울기 시작했어요. 너무 너무 고마워서, 

    마음껏 목욕하는 거 한 번도 고맙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그냥 눈물이나는 거예요. 아버지 장례식 때도 안 울었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소중한 메시지는 박정희 대통령이 깔아놓은 바탕에 대단한 국가를세우고, 우리가 가진 것이 엄청 많아요. 

    우리 다 재벌 같이 삽니다.

     

    여러분들이 손자손녀,여러분 자녀한테 다 얘기해야 됩니다. 

    여행갈 수 있는 것, 자기차 운전 할 수 있는 것,친구 만날 수 있는 것, 가서 통닭하고 생맥주 마실 수 있다는 것, 따뜻한 방에서 자는 것,

    여름에는 다 에어컨 켜고 지내는 것, 여러분 소중한 것이 많습니다.

    이 국가를 잘 지켜야 합니다. 이 나라를 우리가 잘 지켜나가야 됩니다.

     

     

    인요한 (John Linton | 존 린튼 | John Alderman Linton) 교수

    소속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소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박사 수상 2005년 국민훈장 목련장

    경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항공우주의학협회 이사

     

     

     

     

    6. 박정희가 지역감정을 일으켰다?

     

    박정희 때문에 전라도가 소외되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골이 깊어졌다는 개미친 쓰레기 새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특히 특정 정당에다 몰표 찍는 전라도 사람들이 박정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홀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투표율로 이딴 쓰레기같은 거짓말을 파훼해 드리겠습니다.

     

     

     

     

     

    (자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국회의원선거상황(제1~11대)』)

    58년 제1대 국회의원선거 부터 5.18 광주사태(참고 : 광주사태는 1980. 5. 18에 발생)직후인 81년 제 11대 국회의원 선거를 포함,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까진 지역 지지율로는 어느정당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하는지  알수가 없을 정도로, 특히 영호남의 분열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라도 사람들이 박정희를 엄청나게 지지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북…민정당 38% 민한당 22%
    전남…민정당 31% 민한당 22%
    경북…민정당 38% 민한당 19%
    경남…민정당 34% 민한당 15%
    부산…민정당 31% 민한당 27%

     

    5.18광주 사태 직후인 81년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을 보면
    좌파 쓰레기들의 5.18 광주사태 때문에 전라도 몰표가 생겼다는 주장이 완전한 허구라는 사실을 명백히 알수가 있습니다.

    그들 말대로라면 전두환은 이당시 전라도민을 학살한 악마여야 하는데,
    오히려 영남지역보다 호남지역이 전두환의 정당인 민정당 지지율이 높은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85년 12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36.8% 신민당 26.4% 민한당 18.8% 국민당 11.8%
    전남... 민정당 35.7% 신민당 25.3% 민한당 18.0% 국민당 10.2%
    경북... 민정당 27.8% 신민당 23.5% 민한당 2.9% 국민당 10.4%
    경남... 민정당 31.1% 신민당 26.7% 민한당 2.4% 국민당 10.8%
    대구... 민정당 28.3% 신민당 29.7% 민한당 18.5% 국민당 15.6%
    부산... 민정당 27.9% 신민당 36.9% 민한당 23.6% 국민당 10.4%

    광주사태후 5년이 지난 제12대 국회의원선거의 정당별 득표율입니다.
    호남지역의 민정당(전두환 정당)지지는 여전합니다, 오히려 영남지역 득표율이 감소했습니다.

    1985년까지도 특정지역정당 몰표는 커녕 지역감정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대체 지역감정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요?

    88년 13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민정당 28.7% 민주당 1.3% 평민당 61.4% 공화당 2.4%
    전남... 민정당 22.8% 민주당 0.7% 평민당 67.9% 공화당 1.2%
    경북... 민정당 50.9% 민주당 24.5% 평민당 0.9% 공화당 15.9%
    경남... 민정당 40.2% 민주당 36.9% 평민당 1.0% 공화당 10.3%
    대구... 민정당 48.1% 민주당 28.3% 평민당 0.6% 공화당 13.1%
    부산... 민정당 32.1% 민주당 54.2% 평민당 1.9% 공화당 6.8%

    1987년, 김대중이 민주당을 깨고 나가서 평민당을 창당하고 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 언제도 볼 수 없었던 김영삼의 민주당이 호남에서 1% 내외의 지지율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김영삼은 결국 민자당을 창당했습니다.
    전남북은 평민당에 65% 내외의 몰표를, 대구경북은 민정당에 50% 내외의 몰표를,
    부산경남은 민정당과 민주당에 비슷한 몰표를 주는 극한적인 지역 대립의 단초가 드디어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전라도 사람들의 억울한 역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근데 김대중이 87년 대선에서 4자 필승론이니 뭐니 하면서 지역 분할 구도를 그리기 시작한 게 과연 지역감정이나 오늘날의 병적인 투표성향과 무관할까요?
    당시 김대중은 경북은 노태우가, 경남은 김영삼이 갈라 먹고 충청은 김종필이 차지한 뒤 자신은 전남과 전북에서 압승하고
    수도권에서 고정지지층과 호남표의 단결로 필승할 수 있다는 4자필승론을 내세우고 경선을 거부한 채 당을 깨뜨리고 나갔습니다.
    김대중은 자신의 나이를 언급하며 김영삼에게 대선 주자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김영삼은 레이건도 70이 넘어 대통령을 했다며 이를 거절했고
    결국 총재 김영삼에 비해 열세였던 김대중은 당을 깨버리고 평민당을 창당했습니다.

    4자필승론은 그럴 듯한 이론이긴 했습니다. 영남의 분열은 지금도 통하는 선거전략이니까요.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돌아가지 못했으니 김대중은 김영삼에 이은 3위로 대선을 마쳤고
    이 때 생긴 지역 몰표현상은 두고두고 그에게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진정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역감정, 지역몰표 탓에 피해만 보고 산 억울한 인물인가요?
     김대중이 충청도였으면 영남과 충청이, 김대중이 강원도 출신이었으면 아마도 영남과 강원 사이에 지역감정이 생겼을 거라는 건 저만의 생각입니까?

    누군가가 지역차별을 강변하면서 자기 지역에서 우리들의 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외쳤다면
    충청, 강원 그 어디라도 지역감정의 불은 붙어 버렸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피해자가 아니라 이 땅에 지역감정을 깊고 깊게 뿌리박히게 한 인간 쓰레기였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전라도 사람들 가장 불쌍한게 자신들을 이용만 해먹은 쓰레기 김대중을 왜 그렇게 찬양해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글 보는 사람중에 전라도 사람들 특히 잘 들으십시오.
    이게 진실입니다.
    제가 거짓말을 친다고 생각하신다면 선거관리 위원회나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지역 투표율 찾아보세요.

    김대중은 사리사욕을 위해 동향 사람들인 당신들을 이용만 해먹고 우리나라를 반으로 갈라놓아 지역감정의 골을 파놓은 인간쓰레기입니다.

    김대중이 이간질하기 전엔 호남의 박정희 지지율은 실제로 높았습니다.
    왜? 라기보단 그 당시에 박정희 깔만한게 없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야 독재다 뭐다 하면서 평가할수도 있지만
    그당시에 대한민국은 정치인들이 허구헌날 싸움질만해대는 무정부상태에 가까웠으니 잘 살게 해주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렇다고 전라도가 압도적으로 높았던건 아니고 고만고만한데 좀 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김대중 이전엔 지지율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나오다가 김대중의 이간질 이후로 동서가 갈려버렸습니다.




    김대중의 이간질 이후부터 노태우가 전라도에 선거유세 하러 갔을때 전라도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과연 저게 정상적인 반응입니까?



    김대중이 지역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선동을 했다는 증거들




    기사 내용

     "이번에 정권교체 못하면 지금은 어느정권에서도 버림받는 호남이지만 끝내는 이나라 전체와 세계에서 버림받는 호남이 될것"

     

    위의 기사들을 보면 호남이 차별받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 주장 대로 호남은 차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일까요?

    과연 경남지방의 발전은 지역감정에 의한 차별적인 처사였을까요?

    아래 자료를 봅시다.





     


    연도별 수입 수출 현황(출처: http://www.kita.net/ 위의 6개 나라는 2012년 현재 수출 수입 상위 6개국으로 선정)

    위의 자료를 보면 70년대 우리나라와 가장 많은 무역을 했던 나라들은 압도적으로 일본과 미국임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는 우리나라 무역1위인 국가이지만 저당시에는 우리나라와의 무역이 없었습니다.

    이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하기 이전이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경부고속도로등에 투자하는 것은 차별적 정책이었을까요? 

    아니면 국가의 최대 발전을 위한 - 국익을 위한 결단인것일까요?

    이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같은 답을 할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해서 아예 호남쪽은  투자를 해주지 안했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효율성 때문에 영남권보다 투자가 덜할 수 밖에 없었으나,

    박정희는 호남지역을 위해 국책사업으로 여수 공업도시를 대표로, 굵직한 사업들을 많이 투자해주었습니다.

     

     

     

    광주 내연 준공(1962. 11. 15)
    - 제2비료(호남비료) 나주공장 준공(1962. 12. 28, 현 L/G화학 나주공장)
    - 동진강지역종합개발공사 착공(1963. 3. 15, 준공 : 1972. 12. 31, 김제 부안)
    - 전남지구 6천여 정보 간척공사 기공(1965. 5. 18) (2천만평)
    - 군산화력발전소 기공(1965. 12. 1, 준공 : 1968. 10. 31)
    - 광주공업단지 착공(1966. 12. 16)
    - 여수 제2정유공장 기공(1967. 2. 20, 준공 : 1969. 6. 3)
    - 전주 제1공업단지 기공(1967. 3. 22)
    - 최대의 공군 광주기지 준공(1967. 5. 25)
    - 전남 고흥 간척사업 완공(1969. 7. 15)
    - 호남 야산개발단지 준공(1969. 10. 6)
    - 호남고속도로 착공(1970. 4. 15, 개통 : 1973. 11. 14)
    - 남해고속도로 착공(1972. 1. 10, 개통 : 1973. 11. 14)
    - 군산항 개발 확정(1972. 11. 24)
    - 전주, 이리, 광주, 목포 지방공업개발 장려 지구로 지정(1973. 5. 4)
    - 호남종합화학기지 내 에틸렌계열공장 4개, 프로필렌계열 2개, 기타 7개 총 13개 공장건설계획 확정(1973. 8. 2)
    - 이리 수출자유지역 착공(1973. 10. 17, 준공 : 1974. 12)
    - 여수화력 2호기 준공(1977. 6. 30)
    - 여수 제7비료공장(남해화학) 준공(1977. 8. 4, 기공 : 1973. 10)
    - 호남선 복선 준공(1978. 3. 30, 대전~이리)

    이렇게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감정을 박정희 대통령의 탓으로 돌리려는 자들은 그냥 세뇌당한 병신들입니다.
    비록 미국 일본등, 주요 수출 국가를 공략하기위해 영남에 투자를 더할수밖에 없었으나
    박정희는 결코 호남지역을 등한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은 불과 20여년 전까지만해도, 지역감정이라고는 찾아볼수없는,
    단합된 국가 정신으로 산업화를 이뤄낼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팽배해 있는 이 망국적 지역감정은 누가 만들어 낸것인가? - 에 대한 질문은
    이 글을 읽은 자라면 누구나 같은 답을 내릴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7. 박정희를 음해하는 자칭 진보세력들의 실체

     

    악질좌파들의 놀이터로 전락한 다음에서

    '짝' 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적이 있는 전라도 출신의 치과의사가 다음 아고라에 이런 글을 올려놨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4573100

     

    이 사람은 다음에서 박정희를 너무 비정상적으로 인간쓰레기 급으로 매도하는것이 어이가 없어서 나름 반박을 합니다.

    물론 지식인으로써 양심고백하는 수준으로 논리정연한 글입니다.

     

    하지만 댓글은 쓰레기장입니다.

    가만히 읽어보면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사람은 없고 , 친일파,독재자,각종 인신공격만 해댑니다.

    하다못해 진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저 글에 반박을 할려고 공부를 엄청 했겠지요.

     

    이것이 오늘날 자칭 진보라 지껄이는 좌파세력의 현실입니다.

     

     

     

     역사는 인정하고 반성하는데서 부터 시작되는건데 당시 기득권층이자 의사결정권자인 양반 및 이씨 왕조가 상위 5%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근대화 포기하고 쇄국정책으로 결국 남의 손 빌려서 강제 근대화 당한 주제에 이조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그저 일본만 물어뜯기 바쁘니 일본한테 역사왜곡 운운한 자격도 없는 것들이 대한민국입니다.


    임진왜란때 이미 서양식 조총에 당해놓고 여전히 활이나 땡기는 수준이었습니다.
    미개하고 한심한 놈들 자부심 느낄 수 있는 조국 만들어준 이승만과 박정희같은 선각자한테 오히려 친일 혐의 뒤집어 씌워

    있지도 않은 허상으로 까대는 새끼들 보면 진심 소름 돋습니다.

    일본은 약과고 진심 우리나라만큼 역사 지좆대로 해석해서 선동이나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는 한심한 족속은 전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 이제 박정희를 음해하는 세력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소름 끼치는 사실은,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날조하는 놈들 까고보면 친일파에다 종북세력들입니다.

     

    김대중 시절부터 이적단체였던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난 이후

    교육계는 완전히 좌파들에게 장악당해 학생들에게 좌편향적인 정치관을 심어줬습니다.

     

    최근 교학사가 그동안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은 새 교과서를 발행하자

    전 좌파 학자와 관계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새 책의 몇가지 오류를 골라내 교학사를 살해 협박했고

    참고서 등 다른 책의 불매 협박에 겁먹은 교학사는 한때 발행을 접으려고까지 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은 자기 나라의 건국에 자부심을 갖고 건국 과정을 미화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비록 건국 과정에 어떤 논란거리가 있었더라도 그것을 덮고 상처를 아물리며 후손에게 나라 세움의 뿌듯함을 물려주는 것이 민족의 자긍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독 이 나라의 반체제적 좌파들은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 '이승만과 박정희는 친일파' '김일성은 독립투사'라는 식으로

    대한민국 건국에 먹칠을 해대는 것일까요?

    저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건국과 건설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합시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요?

    건국을 다시 하자는 걸까요?

    아니면 대한민국을 통째로 누구에게 갖다 바치기라도 하겠다는 걸까요?

    그것도 아니면 대한민국을 없애거나 역사에서 지워버리기라도 하자는 걸까요?

     

    박정희와 이승만을 음해하는 세력들은 반 대한민국 세력입니다.

    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체제를 반대하는 것으로, 얼핏 북한 체제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종북보다 한 차원 높은 고등 수법입니다.

    대한민국을 잘 고쳐서 업그레이드하자는 것이 아니고 너희는 애당초 태어나기를 잘못 태어난 존재이므로

    망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반(反)대한민국 세력의 근본 시각입니다.

     

    악질 좌파 쓰레기들이 이 글을 정독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좌파들이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승만과 박정희를 폄훼하는 절대적인 목적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제대로 된 반박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하면 친일파가 아니라는 자료를 보여주는것 보다는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부터 알아야 합니다.

     

    먼저 친일빨갱이 집단인 민족문제연구소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혼란을 주고 국가전복시킬 목적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우파들은 모두 친일파니 빨갱이니 덮어씌우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세력인지, 왜 박정희 같은 사람을 친일파로 날조하는지 알고 싶으시면

    이곳을 참조해 주세요.

    http://blog.naver.com/teraness/60179798290

     

    민족문제연구소는 '백년전쟁'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거짓 선동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주장하는 프레이저 보고서, 에 대한 반박문도 올립니다.

    http://blog.naver.com/teraness/60187167435 (빡침주의)

     

    보고 욱 하실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새누리당을 싫어하는 이유 중에 친일파가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뽑은 새누리당이 싫은 이유.

     

     


     

    1. 독단적이고 비민주적이라서 45.06%

    2. 부자만 챙겨서 38.06%

    3. 걸핏하면 종북 타령해서 29.98%

    4. 친일파가 많아서 29.08%

    5. 돈과 성장만 외쳐대서 22.98%

    6. 대통령이 싫어서 17.24%

    7. 뺀질대고 얄미워서 10.77%

    8. 인물이 없어서 9.87%

    9. 부모님이 싫어해서 3.23%

    10. 영남이라서 1.44%

     

     

     

     

     

    반면, 민주당이 싫은 이유는?

     

     

     

     1. 친북 이미지라서 36.12%

    2. 일 안하고 툭하면 촛불집회해서 35.44%

    3.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있어서 32.51%

    4. 경제는 뒷전이라서 25.73%

    5. 인물이 없어서 23.7%

    6. 힘이 없어서 9.71%

    7. 호남이라서 6.55%

    8. 부모님이 싫어해서 5.87%

    (부모님이 너무 좋아해서 반발심에 싫어한다가 11위)

    9. 애국심이 부족해서 5.64%

    10. 촌스럽고 없어 보여서 2.03%

     

     

     

     

    과연 새누리당이 친일파 집단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친일파 집단은 오늘날 민주당의 원조인 한민당입니다.

     

     

     

     

     해방직후 잠시 주춤했던 친일 지주출신 보수주의자들(한민당세력)은 미군정 및 이승만과 결합하면서 사회의 주류로 급부상했다.

    이들은 곧바로 반공과 친미를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으로 무장한 뒤 정치권력을 비롯한 사회전반의 권력을 획득했다.

    이들 권력의 이념으로 기능했던 반공 보수주의는 김구 등 민족주의 우파세력마저 말살해 나갔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0022225&viewType=pc

     

    1945년 건국 직후 호남지역은 한민당의 정치적 근거지였다.

    한민당은 잘 알다시피 보수·우파 내지 지주계급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따라서 호남이 진보 진영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영남 특히 대구·경북(TK)이 보수·우파 세력의 근거지로 인식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어울리지 않는 분류법인 셈이다.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7082901033837115002&mobile=false

     

    신민당의 뿌리는 해방 직후 토착 부르주아와 지주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국민주당(한민당)이다.

    신민당은 제6대 대통령 선거에 이어, 김대중을 후보로 내세워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8&aid=0000218956&viewType=pc

     

    마지막으로 김대중이 증언하는 한민당이 민주당을 계승했다는 자료다.

    DJ는 '민주당은 한민당 이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자랑스런 전통 속에서 일관되게

    시장경제와 남북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해온 50년의 역사와 정통성을 지켜온 당'이라고 깊은 애정을 표시하면서

    자신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39689

     

     

     

     새누리당을 친일파당이라고 까는 새끼들의 친일파 후손, 친일파 목록


    1.정동영 (민주당)
    부친 정진철: 전라도 출신. 일제때 전북 순창 구리면 면장 출신이자 금융조합 간부(서기).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정진철 면장은 당시 순창 근처에서 가장 좋은 명문 '남원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제국주의 조선 착취 최일선 기관인 '금융조합'의 서기를 5년이상 하면서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다하여 소작농민을 괴롭힌 놈이다. 
    http://dfgdg.egloos.com/3054387

    2.유시민 
    부친 유태우: 일제시대 훈도(교사) 경력. 역사훈도
    백부 유석우: 일제시대 친일파 면장 
    http://dfgdg.egloos.com/3053483

    3.김희선 (민주당)
    부친 김일련(가나이 에에찌): 일본특무경찰로 간도 독립군 체포,고문 전문.
    김희선 본인의 자료 조작으로 독립군 김학규 장군의 딸인 것처럼 조작하였으나,
    이후 김학규 장군의 친자녀들과 장군의 동지들에 의해 김희선의 친부는
    간도 만주독립군 체포를 위해 이주한 일제특무경찰 김일련으로 밝혀짐.
    김일련(가나이 에이이치)은 만주유하경찰서 특무 간부로서, 독립군을 탄압했던 기록이 무수하고,
    극악친일파들만이 복역하던 형무소에서 김희선이한테 편지를 보낸 놈.
    김희선이는 그걸 조작해서 환부역조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칭 독립군의 손녀를 가장하고
    오로지 그거 하나 팔아먹으면서 오늘날에 이른 철면피.
    김희선은 친일인명대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친일파 후손 주제에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으며 자기 친일파 애비 이름은 빼버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47&aid=0000067330
    독립군 사칭한 민주당 김희선 의원의 아버지 김일련이 일본 경찰이었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확산시킨
    미 워싱턴 밴쿠버 거주 교포 이배영씨는 김일련이 만주에서 경찰을 했고,
    김일련의 부인이 남편의 경찰 근무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하더라.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말했다. 

    4.김근태 (민주당)
    부친이 일제 조선총독부 교육청 소속 엘리트 소학교 훈도(교사) 출신.

    5.조기숙 (열린우리당/이화여대 교수)
    조부 조병갑: 동학운동의 근원 전남 고부 미곡일본방출사건의 장본인. 전남 고부군수 조병갑
    부친 조중완: 일본 총독부 소속 신문기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1&aid=0000167969

    6.이미경 (민주당)
    부친 이봉권: 일본군 헌병. 위안부 차출하여 황군에 바친 훌륭한 분.
    이봉권이는 그야말로 일본군의 핵심 사찰요원으로 당시에 조선인은 꿈도 못 꾸던 황군 헌병.

    7.신기남 (열린우리당)
    부친 신상묵: 시게미쓰 구미오. 헌병오장.

    8.김대중 (도요다 다이쥬)
    일본인 해운회사 근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김대중 맞습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친일파 끝차대빵

    9.홍영표 (민주통합당)
     

     

     

    군면제자 제일 많고, 친일파 제일 많고, 허구언날 여당 반대만 하면서

    여당보고 군면제자 많다니, 친일파 있다니 자신들의 온갖 오물은 남한테 뒤집어 씌우고

    반란집단 북한 쉴드치는 쓰레기들 제일 많은 당이 민주당입니다.

     

    예전에 친일파문제로 친일빨갱이 집단인 민족문제연구소하고 손잡고 일 벌여보다가

    개망신 당했지요.

     

    그때, 민주당 김희선, 신기남은 제대로 개쪽을 당했습니다.

     

    특히, 김희선은 독립투사의 후손이라고 거짓말 하다가, 이재오 아버지 잡아갔던 일본군헌병인거 탄로가 났습니다.

     

    신기남은 자기 아버지가 일본군 헌병인가로 친일파 인데,

    아직 국회의원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정보위 위원장인가 하던데, 친일파 후손이 국회위원장도 하네요?

     

    한국의 진짜 문제는 친일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빨갱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웃긴건 빨갱이 새끼들이 친일 문제를 들고 나오는데
    그새끼들 대다수가 친일파 후손들이라는 거지요.

    그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마치 악마들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집단들 같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 공격할 목적으로

    친일파 청산법 만들다 지들만 친일파 자손 무더기로 나와서 개처발린 사건.

     http://blog.naver.com/teraness/60176672956

     

     

     

     




     

     

     

     

    일반 사이트에서 민주당 군 면제자 글 올렸다고 일베충으로 낙인찍혀서 공격하는 좌파들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하거나 노인들 비하하는 좌파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민주당 비판하면 일베충, 새누리당 알바가 되는 현실.

     

     

     

    민주당에 민주투사니 뭐니 옛날 정부에서 일부로 죄를 뒤집어 씌워서 저래 많은거라니

    실제로는 새누리당이 더 많은데 감춰져 있다니

    진짜 기도 안 차는 개같은 변명은 정중히 거절합니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201

     

    실상은 시위와 집회 법률 위반자보다 국가보안법 위반 경력을 가진자들이 훨씬 많습니다.(두 가지 모두 위반한 이 포함)

    거기다가 특수강도 상해까지 민주화운동으로 보고 있네요?

    그런데도 군면제자와 전과자를 민주화운동으로 둔갑하며 실드치는 놈들이 좌파들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YWlQyCoZvA

    [386의 고백] 80년대 우리의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친일인명 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 초기 멤버였으며 그의 아버지는 일본 보국대 출신 친일파입니다.

    한국에서 김일성 만세, 공산주의가 허용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발언한 적이 있으며

    천안함 사건을 이명박 정부 탓이라 뒤집어 씌웠습니다. 

     

     

     

     

     

     경향신문 1980.1.1 기사내용 요약

     

    1. 김대중 선거참관인 사망하자 민주당에서 보낸 조의금 30만원중에 18만원 훔침 

     

    2. 민주당 선전부장할때 학원공작구실로 조달한 3700만원 중에 770만원 빼돌림 

     

    3. 목포해운회사 잇을때 선원봉급 + 배 판돈 = 1억5천만원 먹고 도주 

     

    4. 당공천 해준다고 거짓말 한 뒤 4450만원 갈취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박정희가 친일파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여러분이 직접 내려 주세요.

     

     

     

     

    참고 링크

    http://blog.naver.com/sangmin5886/162206186 (초기 박정희 친일파 반박자료)

    http://bhee639.blog.me/90188656127 (박정희 제자들과 지인들의 증언) 

     

    마음껏 퍼가셔도 됩니다.

     

    민족의 영웅 박정희, 이승만을 친일파라 뒤집어 씌우고

    진짜 친일파 후손 집단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좌파님들의 재반박 환영합니다.


    원글

    http://blog.naver.com/teraness/60177284236

                                                                                 
    옛날에 좌좀들이 박정희 친일파라고 개소리 하길래 하나하나 반박해주다가 내용이 너무 많아서 한데 모아봤습니다.       
    신고
    • 댓글이 5 개 달렸습니다.
    • 11년 전
      박정희 혈서는 조작?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131940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한 적이 없다?!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VbvQ&articleno=606


      대법원 최종판결 '박정희, 독립군 토벌 참여했다'

      http://m.bbs2.agora.media.daum.net/gaia/do/mobile/kin/read?bbsId=K150&articleId=832557



      법원,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등재 인정

      "2009년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기도 전에 이 사전에 친일파로 등재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 등은 친일 행적을 하지 않았다며 법원에 5건의 판매·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참고 문헌을 통해 구체적 (친일) 사실을 적시하고 있고, 학문적 의견을 개진한 것”이라며 이를 기각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15009009
    • 11년 전
      @Dexter이 글을 쓴지 2년이 다되가는데 반박하는 사람들은 자꾸 이미 반박된 걸 계속 가져오네요.
      피곤합니다.

      혈서 조작 링크 이미 반박됬습니다.
      나이 핑계로 나이 속이고 갔다고 언급되어있는데
      박정희는 대구사범시절 재학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습니다.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위의 제한연령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었으므로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특설부대 근무설은 여러 책에 언급됐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죄가 인정되지 않는다" 며 무죄를 선고했다.

      기사내용 좀 제대로 읽으세요. 제발...

      토벌했다는걸 인정하는게 아니라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유죄가 인정안되서 무죄판결 내렸을 뿐입니다.
      님 논리대로라면 지만원이 518사태 폭동이라고 해서 고소당했는데 무죄로 풀려났으니 518 폭동 맞다 그죠?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는 빨갱이들이 모여서 만든 '사립' 단체입니다.
      http://blog.naver.com/teraness/60179798290

      노무현이 좌파 사학자들 시켜서 만든 '공립' 규명의에서 친일파 입증 못했습니다.
    • 11년 전
      @Dexter내가 그동안 수많은 날조선동 반박해봤지만

      내가 반박해놓은 글 제대로 읽는새끼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지금 너가 반박이랍시고 올린 링크자료 전부 내가 보고 반박한 글을 올린거야.

      너 이글 정독 안했지?
    • 11년 전
      긴 글 쓴거 잘 읽어봤다만 괜히 좌좀이겠니
      진정한 진보들은 이 글을 읽어볼지 몰라도 대가리 빈 좌좀새끼들이 이걸 읽겠니
      수고했으
    • 11년 전
      @엽게에이글쓴지 약 2년 다되간 글이고 약 2년동안 추가적으로 개소리 지껄이는거 반박하면서 하나씩 덧붙인 글이다.

      원글에서 수많은 좌좀들의 댓글이 있지만 납득할만한 재반박을 해준적은 단 하나도 없다.

      나 종북이라고 낙인찍는 새끼들도 있더라.

      앞으로도 이 글 재반박 하는 좌좀새끼 영원히 없을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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