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주로 이데올로기적인 근대 정치사상의 특정 조류를 가리킨다. 사회심리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어떤 심리적 태도 또는 성향(性向)을 가리키기도 한다.
양자는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H.세실은 인간의 특정적 심리태도를 의미하는 보수주의를 '자연적 보수주의'라 하여 그것을 소문자(小文字)로 썼고, 특정의 사상적 조류를 의미할 때는 '정치적 보수주의'라 하며 대문자(大文字)를 사용하였다.
K.만하임도 심리적 보수주의를 '전통주의'라 하였으며, 사상적인 것을 '보수주의'라 불렀다. 실제로 정치적 진보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보수적 행동을 취한다거나, 정치적 보수주의자가 사생활 영역에서는 진보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즉, 어떤 개인의 심리적 태도는 반드시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보수주의
미지의 것을 두려워하고 변화를 싫어하여 자기가 익숙한 것에 집착하는 점에서, 변화를 좋아하고 낡은 것을 버리고 싶어하는 진보주의와 대립된다. 즉, 한쪽은 현상을 고집하는 데 반하여 다른 한쪽은 현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심리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모든 개인이 많든 적든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대개 기계적인 반사행동으로 나타나며, 그러한 행동형식은 미리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어느 고장에 철도가 신설된다고 할 때 그 고장의 보수적인 사람들이 나타낼 심리적 반응은 거의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심리적 태도로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서로 대립되는 것이지만, 상호간의 작용에 의하여 사회생활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심리적 태도는 여러 농도로 존재하고 있어 반동주의와 급진주의의 양극 사이에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스펙트럼의 빛과 같이 제각기의 뉘앙스를 가지고 끼여들어 있다. 반동주의·급진주의는 모두 현상의 과격한 변화를 바라는 심리적 태도이지만 전자는 '뒤쪽을 바라보는 변화'를, 후자는 '앞쪽을 바라보는 변화'를 바라고 있다. 보수주의가 반동주의에 접근하는 것은, 미지의 것보다는 익숙한 것으로 향하려는 '뒤쪽을 바라보는 변화'를 택하는 경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심리적 보수주의가 현상을 고집하려는 것은 안정을 바라기 때문이며, 그것은 A.B.울프가 말하였듯이 '안전제일주의'를 본질로 하는 것이다. 예컨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것과 같다.
인간은 관례에 따라서 행동하기 위하여 안전을 구하려 하고, 그 안전을 그의 생활환경의 현상유지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적 태도로서의 보수주의는 합리적인 태도라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현상에 대한 감상적인 애착 또는 현상에 대한 어떤 종류의 가치감정에 동기가 있고, 그 감정은 습관에 의하여 형성되며 공포심에 의하여 자극되는 것이다. 이 습관과 공포심은 보수주의의 두 가지 심리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어떤 개인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이 그를 만족시키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며, 심리적 태도로서의 소수주의는 인간의 생활환경에 대한 조정(調整)과 적응(適應)의 과정에서 생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특정적인 교육이나 연령의 영향에 따라서 강화된다. 특히 노령(老齡)이 육체의 쇠약에 따라 비융통성·환멸감과 같은 심리적 변화를 초래하여 보수주의적 태도를 강화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데올로기적 보수주의
근대 정치사상의 특정 조류로서의 보수주의는 앞에서 말한 심리적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생겼다. 즉, 역사의 어떤 단계에서 각자가 가진 보수주의적인 심리적 태도가 표면에 떠올라, 특정한 사상적 조류를 응집(凝集)시키는 중심이 되어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가 생긴 것이다. 각자의 보수주의적 심리태도는 각각 특정된 개인적 또는 계급적 이익과 무관하게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이익이 동기가 되어 부상한다. 그것은 '소유의 안전을 바라는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가 생긴 다른 이유는, 인간의 또 하나의 심리적 태도인 진보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진보주의의 성립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즉, 진보주의라는 사상적 조류가 성립되자, 그때까지 잠들어 있던 각자의 심리적 태도가 능동적인 것이 되어 의식적으로 그런 사상적 조류에 반대하는 운동으로서 보수주의가 성립되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각각 '질서의 당'과 '진보의 당'으로 나뉘어 대립되나, 그 관계는 역사적 제반조건에 따라 제각기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근대 시민계급의 대두와 사회구조의 변화를 전제로 하여, 1789년 프랑스혁명 발전과정에서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계급이 당시의 진보주의인 자유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역군으로서 등장한 데 대하여 귀족계급이 보수주의라는 개념으로 총괄되는 사상적 조류를 낳았던 것이다. 귀족계급은 그들의 사회적 토대인 토지소유의 영향하에 이미 심리적 태도에 있어서 보수주의의 보고(寶庫)였다고 할 수 있으나 그 토대에 동요를 느끼게 되자 '능동적인 공포심'에 쫓겨서 의식적으로 시민계급의 진보주의에 대하여 보수주의를 취하였다. 그러나 보수주의가 '1789년의 이념'에 비하여 하나의 사상적 조류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19세기 초의 왕정복고시대이다. 그 무렵 보수주의라는 말이 비로소 정치적 용어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1818년 왕당주의운동(王黨主義運動)의 기관지가 《르 콩세르바퇴르(Le Conservateur)》라고 명명되면서부터 보수주의라는 말이 정치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곧 유럽 전체에 퍼졌고, 그것이 '1789년의 이념'에 대항하는 반혁명적 운동의 구호가 되었다. 영국에서 토리당을 보수당이라 칭하게 된 것은 1835년의 일이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를 사상사적(思想史的)으로 보면 프랑스혁명 이후의 역사적 단계에서 성립된 특정의 사상 조류이고, 그 세력은 봉건귀족계급이었다는 점을 특색으로 들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귀족계급의 사회적 기초가 붕괴됨과 동시에 보수주의의 역사적 의의도 상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근대에 있어서 보수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찾는 뜻에서는 타탕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 후의 사정은 달라졌다. 특히 1848년 이후로 종전의 진보주의인 자유주의 또는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대두에 따라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또 19세기 후반부터는 시민계급을 세력으로 하는 새로운 보수주의가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를 단순히 귀족계급의 사상적 조류라고 한정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근대에 보수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최초로 정식화한 사람은 E.버크이고, 그 후 보수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버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버크의 저서 《프랑스혁명의 고찰》(1790)을 비롯하여 《새로운 휘그주의자의 옛 휘그주의자에 대한 어필:Appeal from the New to the Old Whigs》 등 일련의 저서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적 민주주의운동에 대한 '능동적인 공포심'에 쫓긴 결과로 쓰여진 것이다. 그것들은 '1789년의 이념'에 대한 가장 힘찬 저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 최초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었다. 보수주의는 원래 어떤 특정적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나온 것이므로, 그 본래의 모습은 방어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구조의 현상유지를 위하여 현체제에 대한 도전에 방어의 태세를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가 이데올로기라는 면에서 문제되는 것은, 현제도가 어떠한 제도이건 그 제도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점에 있다. 보수주의가 현제도를 방어하려는 이유는 조상들이 걸어온 길을 벗어날 경우에는 안전이 위협을 받기 때문인 것이었고, '안전' 그 자체는 특정인이나 계급의 이익과 결부된 것이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의 '현제도 방어'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조정과 적응 과정에 불과한 것이고, 여기에서 F.J.C.헌쇼가 지적한 바와 같이 보수주의적인 소극성과 그 강령(綱領)의 불확실성이 나타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가 일관된 사상체계를 가지지 못하고 무체계성(無體系性)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K.만하임에 의하면, 보수주의의 무체계성은 사고(思考)형식의 문제이다. 즉, 근대의 사회구조 변화에 대하여 진보주의자는 그것을 긍정하여 현존 제도의 전체적인 개조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고형식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체계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는 변화를 부정하고 현제도에서 만족을 느끼며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사고방식은 구체적일 뿐 체계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개개의 구체적인 사실만을 문제로 삼아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개개의 사실로 바꾸어 놓을 뿐이므로 그들에게는 '유토피아'가 없다. 그러한 뜻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S.P.헌팅턴이 말한 바와 같이 '제도지향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보수주의의 내용을 간단히 정식화(定式化)할 수는 없지만, 형식적으로 보면 세 가지 원리, 즉 ① 현재에 대한 변화를 부정하는 '보존의 원리' ② 과거의 것을 현대에 이용하려는 '역행의 원리' ③ 현재의 것에서 유기적으로 생기는 '진보의 원리'를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민계급 세력에 의한 보수주의가 재생한 것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보수주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보수주의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보수주의는 종래에 주로 역사적 기원에 착안하여 귀족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시민계급의 진보주의(자유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는 그러한 대립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헌쇼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에는 시민계급의 보수주의와 노동자계급의 진보주의(사회주의)가 대립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수주의 문제도 그러한 견지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대립의 변화는 과거에 시민계급세력이던 자유주의가 새로운 역사적 상황하에서 보수주의로 이행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헌팅턴은 보수주의를 '위치(位置) 이데올로기'라 하여, 그것이 어떤 사회집단(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하여 가진 특수한 관계의 존재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라 생각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의 기능은 그 성격이나 사고형식과 더불어 좀더 규명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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