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1_군인이나 경찰, 관리가 모집에 나선 경우에도 취업 사기가 상당했지만, 강제로 트럭에 태우거나 경찰서로 끌고 가는 등 협박 및 폭력에 의한 강제 동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러한 폭력적인 강제 동원은 민간인의 모집 형식으로는 동원이 어려워진 일제 말기로 갈수록 더욱 심해졌고, 이들이 동원한 여성들은 대개 군인이 관리자로 있던 위안소로 간 경향이 있다. 이외에도 생존자들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여자 근로정신대가 되었다가 군 위안소로 끌려간 경우뿐 아니라 공출, 봉사대, 근로대 등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로 동원되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한편, 모집 주체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 여성들은 기차나 트럭, 배 등을 이용한 장거리 이동이 시작되었을 때 군인에게 인계되어 그들의 감시 하에 목적지로 수송되었다. 수송 수단도 군에서 제공했으며, 여성들을 한 위안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길 때도 군에서 수송했다. 이때 여성들의 저항을 막기 위해 고문이나 폭행이 가해진 것은 물론, 강간을 당한 여성들도 많다. 또한 여성들이 국경을 넘는 이동은 제약들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일본 외무성과 내무성, 조선총독부는 모집업자와 여성들의 출입국과 도항(渡航 :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넘)에는 편의를 봐주는 방식으로도 동원에 협조하였다.
일본은 외신의 눈을 많이 신경 썼고 조선 여성 고용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누구든 강하게 처벌하였다. (실제 처벌 내용있음)
강제 동원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살아갈 수 있는 근간을 없앤 수준이라 사실상 자발 아닌 자발인 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