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2시쯤 서울 신림9동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고시생 류모(45)씨가 6.6㎡(2평) 크기의 쪽방 방바닥에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입주자들의 불평을 들은 고시원 주인(75)이 50개 쪽방 문을 일일이 두드리다가 류씨의 방에서만 인기척이 없자 비상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간 것이다. 경찰은 "부패 정도로 미뤄 숨진 지 열흘쯤 된 것 같다"고 했다.
류씨가 숨진 방안은 천장의 형광등이 새하얗게 켜진 채였다. 책상 위엔 사법고시와 법무사 시험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류씨는 2007년 12월부터 한 달에 15만원을 내고 이 방에 머물러 왔다.
전북 김제 출신인 류씨는 서울의 한 중위권 대학 법대에 합격한 직후부터 25년째 고시 공부를 해왔다. 사시 1차만 세 번 합격하고 2차에 번번이 낙방하자 1년 전 법무사 시험으로 길을 돌렸다. 류씨는 지난달 19일 초·중·고·대학 동창인 고향친구와 만나 "연령 제한이 풀린 공무원 시험을 보면 어떨까 한다"고도 했다고 한다.
동료 고시생들은 류씨를 "술·담배를 안 하는 사람, 여자친구가 없는 사람, 말이 없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기억했다. 그는 학원이나 독서실에 다니지 않고 방에서 혼자 지냈다고 한다.
류씨는 4남2녀 중 다섯째다. 부모가 작고한 뒤에는 형과 누나들이 고시생 동생의 생활비를 댔다. 중·고등학교 시절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류씨를 위해 동창생들이 후원금을 걷어주기도 했다. 류씨 본인도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벌었다.
고시원 주인은 "한 번도 월세가 밀린 적이 없다"고 기억했다. 류씨가 가족과 연락한 것은 숨지기 한 달쯤 전 셋째 형과 통화하면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류씨의 방에서는 자살을 암시하는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외상도 없다. 경찰은 8일 밤 검사 지휘를 받아 류씨의 시신을 부검하고 사인(死因)을 밝힐 계획이다. 유족은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빈소를 지키던 셋째 형(50)은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25년을 그 좁디좁은 방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허망해요, 허망해. 똑똑한 그 애는 뭐든 잘 했을 텐데. 사시가 뭐라고, 그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입력 : 2009.01.1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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