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새벽, 뒷골에서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뜨듯한 감정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느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시작이 게으름 피우는 달빛인지, 혹은 출근을 준비하는 햇빛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때에, 풀벌레가 바쁜 소리를 내는 그 새벽에, 몸을 휘감는 감정을 대충 감수성이라고 부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면의 장막을 걷어내는데 알게 모르게 아주 큰 공헌을 하고 있다.

내면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감수성이고, 그 장막을 현실과 이상의 경계라고 한다면 내면은 이상이자 하나의 소극장이다. 그리고 삶은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무대 위에 올라간 등장인물들…여러 장치들, 플롯. 모두가 이상이다. 그렇기에 삶은 이상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무대의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된다면 그때부터 인생이라 부를 서사가 시작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인생은 촌극이다. 허술하고 재미없는 연극에 박수를 쳐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수는 둘째 치고 거들더라도 본다면 나름 선방했다고 하겠다. 네러티브는커녕 대사조차 없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작가조차 모르는데 관객이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아니, 무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존재조차 모른다면,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인생을 산다는 건 내안의 무대를 채워가는 일이다. 그러면 조명이라도 달아보도록 하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무대를 채워간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하고 싶은 말은 그 의미와 점차 멀어지고 하고 싶었던 것은 의문만 가득 남은 채 시들어간다. 그런 연극의 표를 사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혹은 본인도 똑같은 무대를 꾸미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문장이 없듯 완벽한 인생도 없다. 같은 말로 완벽한 연극도 없다. 제아무리 감수성이 풍만한 인간이 죽을힘을 다해 장막을 걷어내도 휑한 무대는 청소조차 돼있지 않는데, 그곳에서 맥주라도 한 캔 까먹는다면 모를까 과연 연극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연극을, 오늘 열어볼 계획이 있음에 있다. 어쨌든 촌극은 촌극이다. 조금 더 나아진다 한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밤하늘이 완전한 검은색은 아니듯, 어쩌면 행여 박수갈채를 받을 날이 오리라 믿으며 무대를 닦고 광내는 사람은 그나마 촌극을 끝낼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신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챘으면 한다.

다음 막이 올랐다고 치자, 내 무대에 대사도 생기고 네러티브도 생겼다. 아주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관객이 없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의 무대는 이상에 있고 관객은 현실에서 온다. 아무리 이상의 무대를 위해 노력해도 결국 현실에 있는 관객의 눈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방안에 틀어박혀서 꿈만 꾸는 사람을 몽상가라 부른다. 요새는 그 의미가 바뀌었는지, 방안이 아닌 밖에서 또 사회에서도 몽상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상을 결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아주 훌륭한 이상주의자들이며 몽상가들이다. 또 다른 말로 현실적이지 않는 사람, 대충 철이 아직 들지 않은 사람 정도가 되겠다. 결론은 이상과 현실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두 갈래의 문이 아니다. 그것은 두 개의 컵에 담긴 물이며, 곧 둘은 섞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안 되는 일 투성이며 할 수 없는 것밖에 없다. 조금씩 커가며 아주 작은 것을 할 수 있게 되고, 안 되는 일을 되게 만들 수 있다. 발전의 차이지만, 그 이전에 노력의 차이이며 인지의 차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