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강원도 인제군의 어느 중학교에 근무할 때다.
그 학교는 중고 병설로 선생님들이 50분정도 계셨다.
4월 어느 날 숙직을 하게 되었다.
그 때는 선생님 한분과 기사님 한분 둘이서 숙직을 했다.
그 학교에 부임하여 처음으로 하는 숙직이라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함께 당직을 하시는 최기사님은 숙직실에서 텔레비젼을 보시고,
나는 교무실에 앉아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었다.
밤이 꽤 깊었는듯 싶은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라고 한 것도 같고
"어머니!"
라고 한것도 같다.
그 순간 정신이 펄쩍 들었다.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까닭없이 공포감이 치솟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정말 그런 소리가 들렸는지 내가 잠깐 졸다가
환청을 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무튼 그 순간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불현듯 온 몸이 떨리면서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나는 군대에서 작전과 상황병으로 근무했었다.
밤을 새우는 것은 다반사였지만 한번도 공포감을 느낀 적이 없었다.
또, 당시에는 신앙심이 강했던 편이고
이런 저런 이유로 담력이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그 순간엔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무서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급히 교무실의 불을 끄고 숙직실로 갔다.
잠이 많으신 최기사님은 텔레비전을 켠 채로 코를 골면서 주무시고 있었다.
최기사님을 보니 두려운 마음이 진정되며 공포감이 사라졌다.
시계를 보니 자정 가까이 되어 있었다.
그 날 밤은 무사히 잤다.
집에 가서 식사를 하고 출근하니 웬지 분위기가 어수선한 듯했다.
선생님들한테 물어보았다.
"엊저녁에 고등학교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병설학교의 고3 학생이 방위병인 형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는 동생이 안쓰러워서 형이 잠깐 머리좀 시켜준다고 했다던가.
운전을 하던 형은 약간 취한 상태였고
트럭을 피하다가 산비탈을 들이받아서
동생은 그 자리에서 세상을 떠났고,
형은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이 졌다는 것이다.
"몇 시에 그랬대요?"
"아마 자정 무렵인가봐요"
그 말을 들으면서 엊저녁의 일이 떠올랐다.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나는 순간 가장 생각나는 것이 무엇일까.
부모님이 계시는 집과 자신이 다니던 학교가 아니었을까.
어린 그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 끔찍한 순간에 말이다.
그 해에 중학교에 새로 부임했던 나는 고등학생인 그 학생과는 아무런 면식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유일하게 학교에 있던 내게 그 학생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던걸까.
그들 형제는 그 날로 학교가 마주보이는 야산에 묻혔다.
나는 생과 사에 대해서 무언가 모를 숙연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덤을 찾아가 그들의 명복을 비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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