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 고등학교 시절 고1 담탱이는 젊고 잘 생겨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그 뒷짐지고 엄숙한 표정을 지으면 어린애가 쎈척하는 우스꽝스러움이 있으면서도 여자애들은 뒤에서 간지난다고 지들끼리 깔깔거리기 일쑤였다. 젊꼰 스타일인데다 진지한 말투로 잔소리하는거 좋아해서 남자애들은 별로 좋아 하지 않았고 가끔 자습시간에 들어오면 애들이 아이쉬 하면서 책 바로 펴고 공부하는척 하곤 했다.
그날 오후에는 전교 선생님들이 무슨 연수인가 젊은 교사들 위주로 어디 밖에서 일이 있어 담탱이도 거기 포함이었다. 담탱이 담당 과학시간은 당연히 자율자습시간이 되었고 애들은 드뎌 담탱이가 없다고 좋아하면서 막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밖에선 소나기가 쏟아지며 가끔 우르릉 꽝 번개가 치면 애들도 덩달아 난리법석 치곤 했다. 그러다 한 20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방문이 쾅 열려서, 애들은 순식간에 데꿀멍에 조용히 일제히 문쪽을 바라보았다. 보니 담탱이가 서있었는데 우산을 안 갖고 왔는지 온몸이 젖어있었다. 애들은 속으로 욕하면서 공부하는척 하기 시작했고 담탱이는 무표정에 가까운 똥씹은 표정으로 교탁 옆 의자에 앉아서 출석부를 펼치더니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 잔소리쟁이 담탱이가 분명 교실이 시끄러운걸 봤음에도 아무 얘기 안했다는거. 게다가 앉아서는 출석부만 한장한장 펼치는데 수업도 아닌데 뭘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서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고 그제야 애들은 책 집어던지고 아이쉬 뭐하는거야 오늘 간다고 하지 않았어 등등 와 하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또다시 쾅하고 문이 열리더니 담탱이가 아까와 똑같은 패턴으로 들어와 앉아서는 출석부를 펼치는게 아닌가? 애들은 갑자기 책을 펼쳐들고 보는척 했지만 아마 속으론 다 같은 생각일터. 담탱이가 돌았나?
두번째까진 이상이라고 하겠지만 세번째부턴 슬슬 공포라고 해야겠다. 담탱이는 로봇마냥 1) 밖으로나가기 -> 2) 잠깐 대기 뒤 방문을 쾅 열고 들어오기 -> 3) 의자에 앉아 출석부를 한장 한장 펼치기 라는 프로세스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 기괴한 표정이며 흠뻑 젖은 옷이며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아무도 말조차 못 걸고 책 보는척 하면서 무슨 일인고 하는 생각에 잠겨있던 찰나 어느새 밖으로 나간 담탱이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 수학시간, 넉살 좋고 드립 잘 치는 수학선생님한테 반장이 어제 행사는 왜 취소됐냐고 물었는데 수학쌤은 의아한 표정으로 취소 안됐는데? 하자 반장이 그럼 담탱이는 왜 안 갔냐고 하자 수학쌤은 담탱이도 있었는데? 대답해 교실 안은 갑분 알포인트가 되었다. 고1 끝날때까지 아무도 담탱이 한테 감히 그 일에 관해 물어보는 용자는 없었고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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